이 수련(修鍊)의 계절에

효자제일교회 전도사:홍 순관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개역, 누가복음 10:38~42]

이 무더운 여름이 가면 곧 선선한 가을이 오겠죠.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도 하고 등화가친의 계절이라고도 합니다. 등화가친의 계절이란 책읽기 좋은 계절이란 뜻입니다. 가을이 되거든 책을 많이 보십시오. 그런데 책읽기 좋은 계절에는 또 뭐하기 좋은 줄 아세요? 놀기도 좋습니다. 책읽기 가장 좋은 계절엔 놀기도 제일 좋습니다. 가을을 책읽기 좋은 계절로 보느냐 또는 놀기 좋은 계절로 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나이가 들었을 때가 놀기 좋습니까? 젊었을 때가 좋습니까? 당연히 젊을 때가 놀기 좋죠. 젊을 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합니까? 잘 놀아야 합니까? 같은 계절을 두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결과에 따른 책임도 물론 본인 몫입니다. 이 더운 여름은 어떤 계절입니까? 이 여름을 가리켜서 무슨 계절이라고 하죠? 잘 모르시네요. 다행입니다. 휴가철 아닙니까? 학교도 방학이고, 직장도 쉬고 휴가를 다녀올 수 있는 좋은 휴가철입니다. 휴가철이라고 하는데 우리 교회는 휴가철이 아니고 수련의 계절입니다. 우리 주보 광고만 해도 유치부, 초등부 여름 성경학교, 중고등부 수련회, 청년부 수련회, 전교인 수련회가 줄줄이 이어져 있습니다. 이 여름을 휴가철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수련의 계절로 보낼지는 우리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어떻게 이 계절을 보낼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수련회가 줄줄이 이어져 있으니 준비하시는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작년 전교인 수련회는 원래 남해로 가기로 하고 답사까지 다녀왔으면서도 영덕 오천 숲으로 변경되지 않았습니까? 장소 정하는 문제만 해도 몇 달을 고민하고 그 먼 곳을 둘러보고도 갈등하다가 결국은 다른 곳으로 정했단 말입니다. 장소 정하는 것, 날짜 정하는 것, 프로그램 짜는 것, 준비물 챙기는 것... 등등 얼마나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7, 80명이니까 간단한 것 같습니까? 오래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실제로 일 맡은 분들은 머리를 싸매어 가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짜증이 날 정도로 일을 많이 맡아서 수고하기도 합니다. 수련회라는 것이 그렇게 많은 수고로 준비되는 일입니다.

우리 초등부가 교회에서 수련회 하기로 하고 샤워장을 임시로라도 만들어 볼까하고 구상했다가 막판에 결국은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이쪽 화장실은 남학생 샤워장으로 쓰고 부엌은 여학생 샤워장으로 쓰기로 했습니다만 그렇게 해서 요즘 아이들이 잘 견딜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고민부터 시작해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수고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또 전교인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오늘 본문을 보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 내용은 간단해서 길게 설명 드릴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 길 가시다가 마리아와 마르다가 사는 집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언니 되는 마르다가 예수님을 모셨던 것 갔습니다. 여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 집에 남자 오빠가 있습니다. 나사로입니다. 이 본문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나사로는 제쳐 둡시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그러자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딱 앉아서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부엌에서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분주합니다. 예수님 한 분 모시려면 따라오는 일행이 제자만 해도 열둘이지 않습니까? 많습니다. 모처럼 귀한 손님들 대접하느라고 정신이 없는 거예요. 손은 모자라고 답답한데 동생이 안 보입니다. 찾아보니까 예수님 앞에 앉아 있는 거예요. 그 동생을 예수님께서 보내 주셔서 자신의 일을 도와주도록 하라고 부탁을 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은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냥 두시는 거죠.

대체로 마리아를 칭찬하고 마르다의 잘못의 원인을 찾는 쪽으로 설명을 잘 합니다만 저는 마르다를 비난하려거나 마르다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누구를 비난하는 본문이라기보다는 예수님께서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셨는지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르다는 자기 오빠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급히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고 늦었지만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누구보다 먼저 동구 밖까지 뛰어 나간 것이나 이 본문에서 하는 모습을 보면 아주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움직임이 적고 언니가 부르면 겨우 나와서 예수님을 만나러 갈 정도로 좀 소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대접하는 일을 마르다가 혼자서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잘 하는 일입니까? 잘 못하는 일입니까? 잘 하는 일입니다.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와서 대접을 하기 위해서 분주한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일단 잘 하는 일입니다.

교회에서도 부지런한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할 일이 항상 많은 사람이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느냐 하면 부지런한 사람은 일이 눈에 보여요. 일이 보이니까 하게 되고 하다 보니까 부지런한 겁니다. 죄송하지만 게으른 사람은 일이 안 보여요. 별로 할 일이 없어요. 똑같은 눈을 가지고 보아도 어떤 사람에게는 일이 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게으름의 원인은 일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고,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보면 우리 주변에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널려 있는지 모릅니다. 마르다는 그런 일들이 잘 보였고 마리아에게는 그런 일들이 잘 안 보였습니다.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었던 탓이겠지요. 예수님의 말씀에 신경을 쓰다보니 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문제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마르다의 마음이 분주한 것입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즐거움으로 감당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일이 너무 많았던지 마음이 대단히 분주했습니다. 마음이 분주하게 되면 짜증이 나게 되고, 짜증이 나면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 원망스러워집니다.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몸과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짜증이 나고 다른 사람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든다면 일을 조금 줄여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고 웬지 짜증이 잦다는 생각이 들면 수입이 좀 줄더라도 일을 조금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일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분주해지면 그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것은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명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평소에 짜증을 잘 내시는 분은 아무 상관없는 얘기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성격 문제이지 열심히 일을 하려다가 생기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은 안 하고 괜히 짜증만 잘 내는 분들은 마리아도 아니고 마르다도 아닙니다. 성격을 고치셔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하려다 보니까 이 사람 저 사람과 부딪히고 짜증도 나고 그러면 ‘아, 내가 맡은 일이 너무 많아서 그렇구나’ 하고 일을 조금 줄여야 하고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일을 조금씩이라도 분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옛날에 어느 집에 온 동네 사람들이 칭찬하는 며느리가 있었답니다. 누가 봐도 칭찬하는 며느리인데 시아버지가 그렇게 구박을 했답니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는 도저히 며느리 같지도 않았고 어른을 섬긴다는 생각조차 없는데 며느리가 어쩌다가 시댁에 오면 시아버지가 애먹이는 일이 없어요. 이웃 사람들이 이상하다 싶어서 “왜 그렇게 잘 하는 맏며느리는 말끝마다 야단이고, 호통을 치면서 저 며느리 같지도 않고 제대로 섬기지도 않는 둘째는 가만히 놔두느냐?”고 했더니 그 시아버지 말이 ‘인간이 인간 같아야 �E지....’ 하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나 교회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차라리 야단 많이 맞고, 이 사람 저 사람 부딪혀서 심정이 상하기도 하거든 감사하십시오. 열심히 하려다 보니까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신자나 어쩌다 한번씩 예배에 참석하는 분들은 목사님께 야단 맞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매일 새벽기도 참석하고 지각도 안 하던 분이 한 번 빠지면 야단을 맞는 겁니다. 그래서 야단을 맞는다면 좋은 현상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다가 마음 상한 일이 자주 생기면 한편으로는 감사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일을 조금 줄이면서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입니다. 아무도 내게 잔소리도 안 하고 말도 안 하고 ‘왔나?’ 소리도 안 하더라? 왜 그럴까요? 문제가 자신에게 있는 겁니다. 구제불능이라고 제껴 두었든지 아니면 성질이 고약해서 건드리면 손해니까 모두가 피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이 집안에 나사로가 있고 마르다, 마리아가 있지만 집안 살림을 꾸려가고 손님을 대접하고 가정을 돌본 것은 마르다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일이 적은 교회가 아닙니다. 작은 교회지만 교회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구석구석에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효자 제일 교회가 은혜스럽고 좋은 교회로 잘 커간다더라. 정말 일도 잘한다 하더라’고 소문이 나면 누가 칭찬을 듣습니까? 일 열심히 한 사람은 사실 칭찬 잘 못 들어요.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난다’ 제일 좋은 답이죠. 그러나 칭찬 많이 듣는 분들은 아무래도 목사님이지요. 장로님들도 어디 나가면 좋은 얘기 많이 듣겠지요. 권사님들도 어디 가서 “제가 효자 제일 교회 권삽니다.” 이러면 좀 힘이 나잖아요. 좋단 말이에요. 그러나 교회가 그렇게 안정되고 아름답게 커나가는 데는 뒤에서 꾸중들어 가며, 이런 저런 싫은 소리 들어가며 열심히 교회를 섬긴 분들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 주님은 아십니다. 다른 사람은 못 알아줄런지 몰라도 우리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자라났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밑거름도 가만히 훑어보면 이름도 없이 교회를 섬겼던 많은 신앙 선배들 때문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위대한 인물 중에는 오히려 교회에 해를 끼친 분들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마르다가 예수님께 그런 부탁을 했다가 꾸중 비슷한 말을 들었지만 이 가정을 꾸려나가고 정말 열심히 일한 사람은 마르다였음을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책망이 아니라 마르다에게 그 열심 위에 하나 더 보충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저는 이해합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집안이 이렇게 바쁜데 그냥 예수님 앞에 앉아서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어느 집이나 할 것 없이 맏이는 맏이답고, 둘째는 둘째다운 법입니다. 너그럽고 책임감 있고 앞장 서서 일하는 것은 대체로 맏이고 둘째는 흔히 하는 말로 ‘염치없는 짓’을 가끔 좀 하지요. 아마 마리아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마리아는 얌체같은 짓을 하기도 하고, 자기 좋은 것만 골라 하며, 좀 소극적이었던 듯 합니다.

예수님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기울이고 있던 마리아를 예수님께서 좋아하셨는데 옛날에 제가 이런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돌아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별 후회는 없습니다. 중고대학교를 거치면서 전국 단위 수련회에 많이 참석했습니다. 7박 8일이나 6박 7일이 기본이지요. 그런 수련회에 거의 빠지지 않고 쫓아 다녔습니다. 대학생이 되니까 일찍 와서 수련회 뒷바라지 좀 해달라고 연락이 옵니다. 일찍 와서 서무부 일을 좀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아도 절대 일찍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왜요?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여드니까 어느 부서건 간에 할 일이 엄청난 겁니다. 오죽하면 공보부의 별명이 골병부였겠습니까?

전설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수양회만 열리면 소위 ‘가리방’이라고 하던 끌판을 둘러매고 참석해서 밤낮으로 끌판과 씨름하면서 수양회 마침과 동시에 책을 한권씩 나눠주던 전문 공보부원들이 있었으니까요. 뒤에서 돌봐줘야 할 일이 태산이지만 애써 모른 채 하면서 수련회 개회 시간에 맞춰 가서는 집회 참석하는 일과 강의를 듣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대학 3학년 때까지 제가 맡았던 감투는 유일한 게 대학부 조장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조 명단에 보면 요즈음 한창 뜨고 있는 송길원 목사님 이름도 들어 있어요. 나중에 이렇게 유명한 목사님이 될 줄은 전혀 몰랐죠. 한사코 다른 일은 하지 않고 틀어박혀서 공부만 했습니다. 집회시간을 하나도 안 빠졌습니다.

종말론 강의시간이었는데 목사님이 열심히 강의하다가 “화장실도 가고 좀 쉴까요?” 했는데 앞에 앉았던 몇몇 친구들이 합세해서 “계속 합시다!” 하고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4시간 연속으로 강의를 들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집회에 악착같이 참석하고, 공부 열심히 하느라고 죄송하지만 다른 일은 전혀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4학년 때에 붙들렸습니다. 빚을 갚는 심정으로 한 해 동안 봉사를 한 셈이지요. 대구에서 전국 SFC수련회 준비위원장을 맡아서 중, 고, 대 세 집회를 준비하고 부대회장을 맡았는데 하루는 대학 1학년들이 수양회 임원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 불러모았죠.

“여러분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수양회 진행이 어렵다. 그러나 여러분 스스로 성장하지 않으면 이렇게 일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 이런 식으로 몇 해 계속 지나면 여러분들은 심각한 갈등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빚이 많아서 전혀 집회에 들어가지 못해도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말씀을 들어야 할 시간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도 잘 해 주도록 부탁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강의와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이런 당부를 했는데 나중에 이 이야기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고 후배들에게 여러 번 인사를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부엌일로 몹시 분주했습니다. 모처럼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일은 많고, 손은 달리고... 그래서 예수님께 특별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얌체같은 제 동생더러 언니 좀 도우라고 그러세요!” 평소에도 동생이 말을 잘 안 들었는지 아니면 오늘만 특별히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나와서 좀 도와달라고 눈짓을 몇번 했는데 본 척도 안 해서 염치불구하고 예수님께 청을 드렸는지도 모릅니다. 부탁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보고 부탁할 것을 부탁해야 합니다. 아무 부탁이나 함부로 해서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먹는 것과 말씀을 증거하시는 것 중에 어느 것을 더 소중히 여기시는 분입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먹는 것보다 말씀 증거하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한 후에 사탄이 제일 먼저 유혹한 것이 시장하신 주님께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4:4). 굶주림 가운데서도 말씀을 기억하고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났을 때도 제자들이 음식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갔던 때입니다. 이 여인에게 말씀을 증거하시다가 여인이 마을로 뛰어간 사이에 돌아온 제자들이 식사를 권했을 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 4:32, 34)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누가 먹을 것을 드렸는가고 서로 돌아보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시장하신 가운데서도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제자들에게 깨우침을 주셨던 분입니다. 자신의 시장함이 문제가 아니었고 음식을 먹는 일보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훨씬 더 급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 말씀에 귀기울이는 동생을 좀 내보내서 자기 일을 도와주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마르다는 어리석지요.

그런 마르다의 부탁에 예수님의 답변은 ‘한마디로 할 일이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한 가지 뿐, 말씀을 듣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르다의 열심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더 중요합니다. 식사 대접하는 일도 중요하고, 예배 중에 애기를 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배드리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말씀에 귀기울이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골똘히 말씀을 묵상하고 있을 때 “전도사님 식사하러 오세요.” 이런 전화는 고맙기보다는 어떻게 정중하게 사양을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전도사가 “누가 밥 안 사나?”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시면 부지런히 그런 전화를 하십시오. 밥먹는 것보다는 성경을 끌어안고 고민하기를 좋아하는 전도사라고 생각이 들면 그런 전화를 자주 하지 마세요. 겉으로는 몰라도 속으로는 미워할 겁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말씀을 듣는 것과 가르치는 일입니다. 유능한 성가대 대장이 다음 해 대원으로 활동할 사람들을 일찌감치 개인 면담을 통해서 약속을 다 받아버렸습니다. 교육부서에서 교사를 맡기려고 찾아보니까 이미 성가대에서 손을 다 써버린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찬양대 지휘를 맡았을 때의 일입니다. 아무리 찬양대에 소중한 사람이라도 교사로 필요해서 요청이 들어오면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고 무조건 보냈습니다. 속으로는 얼마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아무리 요긴한 사람이라도 보낸 것입니다.

다른 은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이 우리에게 그렇게 쉽게 다가온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를 전쟁의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 잔다르크가 화형을 당한 죄목이 무엇입니까? 뜻밖에도 하나님의 계시를 프랑스 말로 받았다는 것이 그녀가 화형에 처해지는 이유입니다. 몇 해 전에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기회가 되면 한번 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게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그 당시에 성경은 라틴어로 쓰여져 있었고 예배도 라틴어로만 드렸습니다. 라틴어만이 성스러운 언어였지 다른 언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인데 “하나님께서 프랑스 말로 네게 계시를 주었단 말이지?” 신성모독이라는 겁니다. 이런 시절에 성경을 일반 성도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독일어로 번역한 루터의 용기를 상상해 보십시오. 목숨을 걸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고 모든 성도들이 읽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과 그것을 막으려는 세력이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 모릅니다.

우리 나라에 선교사들이 오기 전에 이미 우리 나라에는 우리말로 된 성경이 있었습니다. 기적같은 일입니다. 이렇게 문명화된 오늘날에도 한 부족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서 수년씩 혹은 십수년 걸려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선교사보다 성경이 먼저 보급되어 있었다니! 우리 나라는 그런 점에서도 얼마나 복을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보다 100년이나 먼저 들어온 천주교 전래시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고작해야 교리서인 천주실의, 성화, 성물이 들어왔을 뿐입니다. 그나마 한국의 천주교인들이 성경을 개인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오늘 우리 손에 들려주시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을 거쳤는지 아셔야 합니다. 그냥 단돈 몇 만원에 살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을 읽읍시다. 읽기 어려우면 들읍시다. 기회가 되는대로,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배웁시다.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합니다. 좋은 지도자가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이웃 성도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수련회 참석이 이런 훈련을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수련회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수련회가 계속 이어집니다. 학교, 학원보내는 것보다 더 열심을 내서 참석시키시기 바랍니다. 별 것 있겠나 싶어 보여도 이런 데서 은혜받은 사람과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의 차이는 정말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포도를 많이 먹으려면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요즈음이야 풍성하니까 많이 먹기보다는 맛있는 것 고르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70년 대 중반에 대학을 다녔는데 기숙사에서 여러 명이 푼돈을 모아서 시장에 포도를 사먹으려고 자주 갔습니다. 대여섯 명이 둘러앉으면 동작이 빠르지 않으면 돌아오는 게 없어요. 다른 친구들이 날 보고 다음부터는 끼워주지 말자고 하더군요. 친구들 앞에는 먹고 남은 흔적이 있는데 제 앞에는 전혀 없어요. 줄기만 떨어져 있고 씨고, 껍데기고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많이 먹으려면 언제 씨 가려내고 껍질 뱉고 해요? 그냥 좌악 훑어서 그대로 씹고 그냥 삼키는 거지요.

씹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삼키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습니다. 소화도 어렵거니와 무슨 맛으로 먹나요? 제대로 맛을 즐기려면 포도 알맹이의 속살을 씹고 껍데기도 쪽 짜서 단물을 빨아야지요. 씨앗도 씹어서 삼키면 항암제가 들어 있다고 하더군요. 포도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을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마구 읽는 것은 포도를 씹지도 않고 마구 삼키는 것이나 비슷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이 맛 저 맛을 느끼면서 읽어야 제 맛이 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일이 혼자서 쉽지 않으니 수련회를 통하든지 성경공부 시간에 참석하든지 하시면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다독과 정독을 병행하시되 감사함으로 기도하며 읽으시기 바랍니다.

아예 포도 얘기만 하면 시어서 고개를 흔드는 분도 계시더군요. 불행한 겁니다. 과일의 왕이라는 포도를 그렇게 사귀지 못해서야! 혹시 성경마저 그렇게 대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엄청난 불행입니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여러분에게 성경을 전해준 분들을 모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식사 준비로 바쁜 마르다에게 칭찬은커녕 꾸중 비슷한 말을 하셨으니 이날 예수님은 저녁을 얻어자셨을까요? 굶었을까요? 마르다가 삐쳐서 저녁을 포기해버렸을까요? 예수님도 굶으면 배고픈 분이셨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의 진심을 알아듣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간직하면서도 기꺼이 봉사를 다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닮았습니까? 마리아? 마르다? 아니면 혹시, 등장하지도 않는 이웃집 아줌마를 닮았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마리아를 닮았다고 생각하시면 ‘일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리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크고 작은 일이 제대로 돌아가기에는 얼마나 많은 일이 뒤에 있는지 아셔야 합니다.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뒤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들이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여름에 주방 봉사는 얼마나 힘이 듭니까? 성경 학교를 준비하는 일이 얼마나 수고스럽고도 할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휴가철이기도 하지만 교회에서는 오히려 수련의 계절입니다.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도 뒤에서 수고하는 분들에게 관심을 가집시다. 교사들의 수고에 관심을 가지고 도우며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마르다를 닮았다고 생각하시면 ‘말씀에 귀기울이는 마르다’가 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도 아무나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뒤에서 일을 할 수 있음도 분명히 은사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자신이 은혜를 받지 않으면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수련의 계절입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일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한 우리의 양식임을 잊지 맙시다.

어쩌면 옆집 아줌마 같은 성도도 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옆집에 오늘 무슨 손님 왔나? 그래서 마르다의 집에 와서 부엌만 들여다 보고 잔소리만 몇 마디 늘어놓고 가는 거지요. 교회는 온통 성경학교, 수련회로 바쁜데 “무슨 일 났나?” 이런 분이 설마 없으시겠지요?

음식 대접하는 일은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귀기울이는 일은 더욱 잘 하는 일입니다. 휴가철에 휴가 가서 푹 쉬는 일도 필요한 일입니다. 말씀에 빠져서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편안함을 누린다면 더 잘 하는 일입니다. 올 여름에는 말씀에 푹 빠져봅시다. 이 더운 여름철이 휴가철이 될 것인지 수련의 계절이 될 것인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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