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시 한편은 남겨야 되지 않을까?


미지의 세계
그리로 향하는 아브람의 두려움
하나님에의 의지.

낯설은 물소리 바람소리
어두운 밤 멀리서 울부짖는 짐승들
이들에게서 조차 하나님을 보았으리.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러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 되다.

어찌 하란에만 그리운 얼굴이
성북교회에도
나 이제 작은 아브라함이 되어
작은 복의 근원
믿음의 후예가 되려
길을 떠나려 하오.


1979년 가을, 남한산성 밑에 있는 육군 행정학교 부관부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있었다. 박 대통령 서거 소식도 거기서 들었고 10월에 공휴일이 1,3,5,7,9로 들어 있어서 황금의 징검다리 휴일을 만끽하기도 했다. 우리 동기들은 여기서 11주간의 교육이 끝나면 어디론가 팔려가야(?) 한다. 온갖 소문들로 뒤숭숭하던 때였다. 날마다 이름께나 날리던 기관에서 와서 면접을 하고 갔고 그때마다 이번에는 무슨무슨 기관에서 차출하러 왔었다는 술렁거림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잘 팔려 나가면 군대 3년을 편하게 지낼 수 있고, 잘못 나가면 죽도록 고생할지도 모르는 판이니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헤어지기 전날 밤에 한 친구가 술을 떡이 되도록 퍼마시고 온갖 행패를 다 부렸지만 아무도 욕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 보니까 그 친구는 공수부대로 명령이 났고 모두들 박수를 치며 격려해 주었다. 자신이 그곳으로 차출되지 않은 안도감을 감춘 채. 그렇게 되리란 것을 그 친구는 하루 전에 알고 그렇게 울분을 터뜨렸던 모양이었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온갖 헛소문이 떠돌고 온갖 채널을 다 동원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좋은 부대로 빠져나가려고 다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북새통에 빽도 없고 재주도 없는 나는 어디로 가느냐보다는 어떻게 군대 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게 되던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 거기서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것은 나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배치될 날을 기다리며 심경을 적은 것이 바로 이 글이다. 적어놓고 보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난 그 아브람을 무수한 고난을 겪게 하시면서도 끝내 믿음의 조상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눈물 겨웠다. 엽서에 이 글을 적어서 모든 친구들에게 보냈는데 그 중에 한 장이 판넬이 되어 돌아왔다.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고민이 되고 어려울 때마다 이 글을 쳐다보며 그 때만큼 불안했던 때는 없었음을 기억하고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함을 되새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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