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 교회를 찾다가...


청교도들의 청빈한 삶과 성경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그들의 설교와 가르침에 내심 흥미를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4주간의 영어 연수 기간이긴 하지만 그들의 삶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영국을 찾았다. 도착한 첫 날 교회를 찾을 생각으로 시내(Southampton: 우리나라의 진해라고 생각하면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비슷할 것 같다)를 돌아다녔다. 유학 중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까 Baptist Church(침례교)를 찾으면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는 교회는 없었고 사용하지 않는 교회 건물만 수두룩하니 있었으며 겨우 하나 찾았다 싶었는데 Anglican Church(성공회)였다. Baptist Church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충 가르쳐 주면서 '찾다가 못 찾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는 대답이 정다웠다.

문이 열린 교회가 있는 곳을 아는 사람마저 그리운 판이니 교파가 다르고 교회가 다른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 한마디가 그리웠으니... 아무리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는 탓에 1시간 가까이 헤매고 다니다가 겨우 Baptist Church를 하나 발견했다.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 그곳의 물건을 들여다가 팔아주는 일을 하고 있었으나 교인들이 너무 적어서 효과는 없을 것 같았다. 한때 융성했던 교회의 자존심만 남아서 별 효과도 없이 시늉만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교 내용도 성경 본문과는 거리가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주일 학교는 별도로 운영되지 않고 어른들과 함께 예배 드리다가 아이들을 위한 설교를 먼저 간단히 한 다음 아이들은 퇴장하고 어른들을 위한 설교를 하고 마지막에 아이들이 다시 들어와서 예배를 마치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까지 합쳐서 80여명 정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찬송가는 악보없이 가사만 적혀 있었고 성경책은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의자에 놓여져 있었다. 갖고 다녀도 잘 읽지 않는 성경을 교회에 두고 다닐 정도라면 영국 교회가 교인이 없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다. 잠겨 있거나 불에 그을린 채 방치되어 있는 무수한 교회 건물 앞을 지나면서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중략>

2주째 주말에는 에딘버러로 단체 여행을 하면서 글래스고우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주일을 맞았다. 일행과 떨어져서 혼자 교회를 찾아다니다가 지도에 나와 있는 큰 교회를 간신히 찾았을 때는 이미 예배가 끝난 시간이었다. 빈손인 노인네 몇 분과 신부복을 입은 분이 퇴근하듯이 교회에서 나오고 있었다. 몇몇 관광객들과 함께 기도라도 하고 가야겠다고 들어 갔더니 늙수그레한 노인이 문을 잠궈야 하니까 나가달라는 것이었다. '그래, 이제 잠그면 다음 주일까지 꽁꽁 잠겨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되돌아 나오는데 웬지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었다. 마당의 벤치에 앉아서 기도를 하려는데 자꾸만 눈물이 솟았다. 순식간에 한국 교회도 이런 꼴이 될 수 있다는 안타까움과 그렇게도 융성하던 교회가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님이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못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사랑을 고백하며 끈질기게 따라 다녔지만 짝사랑으로 끝나 버렸던 그 하나님의 실연이 여기 이곳에서 재연되고 있었다. 음란한 아내를 찾아 헤매었던 호세아를 통하여, 수 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끊임없는 구애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끝내 실연의 아픔만 간직한 그 분의 아픔을 느끼며 난 울고 말았다.

제 정신이 아닌 한국 교회가 이런 꼴이 되지 않을까? 흐르는 눈물과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 때문에 자리를 뜰 수가 없어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무심한 관광객들이 스쳐 가면서 사진도 찍고 웃기도 했다. 오늘의 이 안타까움을 결코, 결단코 잊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먼저 떠난 일행을 찾아서 Edinburgh로 갔다. 도중에 발견한 산뜻한 영어 한 마디: Can't is a four-letter-word. 영국에서도 신교가 왕성했다던 에딘버러도 고대의 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라서 수 많은 교회 건물을 볼 수 있었으나 가슴만 아팠을 뿐이다. 관광 안내소가 된 곳, 구경거리가 된 곳, 고대 유적의 발굴지가 된 곳, 심지어 술집이나 극장이 된 곳도 있었다.

마지막 주말에는 모처럼 싸게 프랑스 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이곳까지 와서 제대로 된 교회를 보기 전에 영국을 떠나면 평생에 한이 맺힐 것 같아서 신교도가 가장 많다는 웨일즈 지방의 수도라고 불리는 카디프(Caddiff)엘 갔다. 유학중이던 황진철 강도사를 만났더니 마침 토마스 선교사의 고향 교회가 가까이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면서 같이 찾아보자고 해서 좀 헤매고 다녔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아주 자그마한 교회였다. 그 분이 100여 년 전에 선교의 꿈을 안고 열정을 불태웠을 그 장소에 서서 그 분의 사진을 보면서 이런 열정을 가졌던 영국 교회가 왜 지금 이 모양이 되어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조그마한 시골의 이 작은 교회의 방명록에 한국인들의 서명이 제법 있었다. 나도 한 자 적어 두고 왔다. 'Hoping that UK churches will rise again' 주일날, 신교도가 가장 많다는 웨일즈 지방의 수도 카디프에서 가장 왕성하다고 하는 교회에서도 예배에 참석한 숫자는 채 400명이 되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성경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시기에 이 정도라도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거의 전 국민이 교인이었던 영국 교회가 어떻게 해서 이 모양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황 강도사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 본문을 설교하는 교회가 그래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성경을 배우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 죄악이 얼마나 큰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자유주의 신학이 퍼지면서 성경을 비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구절을 빼내어 버린 그들의 행위가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그 다음 세대에 가서 교회를 떠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우리가 열심히 성경을 가르치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는 교회 문을 닫는 세대가 될 것이다. 영어, 수학 과외시켜 가면서 가르치듯이 성경도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성경책 한 권이 영어, 수학 참고서보다 결코 가볍거나 분량이 적은 것이 아님에도 성경 가르치는 일에 투자하지 않는 어른들이나, 교인들이 아는 것이 거의 없음을 알면서도 밥그릇 걱정에 더 가르치지 않는, 과거 천주교의 수법을 은연중에 되풀이하는 목회자는 진정으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그 교회라도 보고 온 것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약 3시간 걸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어학 연수를 떠났다는 사람이 말 한마디 없이 앉아만 있었다. 파리로 떠난 동료가 부러운 것도 아니고 그 동안 만났던 수많은 여행객이 부러운 것도 아니었다. 한없이 넓고 깨끗한 전원 풍경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영국인이 부러운 것도 아니었다. 교회는 다녀도 성경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는 교인들, 성경을 배워야겠다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서 행사 프로그램만 많은 한국 교회가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열심히 읽기라도 하는 우리 교회는 다행인가? 거기서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야 할 텐데...

이런 판국에 답답한 소식이 들려왔다. 여름 방학동안 떠나 있으면서 우리 아들 또래들 몇 명 모아서 믿을 만한 집사님께 성경과외를 부탁해 두고 왔는데 교회서 모일려고 허락을 구하러 갔다가 야단만 맞았다는 전화를 받고 가슴이 답답하고, 떨리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묻길래 '어떡하긴 뭘 어떡해 교회서 안되면 집에서라도 모여서 하는 거지' 하고 고함을 질러버렸다.

마지만 주간에 그 동안 통화가 안되었던 다른 목사님과 간신히 통화가 되었다. 대화 중에 그래도 캠브리지 근처인가 옥스퍼드 근처에 많은 교인이 모이는 큰 교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다소 위안이 되었다. 무슨 교회냐니까 여긴 무슨 교단이냐 어떤 교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목사님이 어떻게 하느냐 즉, 목사님의 개인 역량에 달렸단다. 확실한 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는 교회와 그런 목사님이 시무하는 곳만 제대로 교회가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교회가 엉망인 이곳에 무얼 배울 게 있다고 공부하러 왔느냐고 물었더니 '미국에서 비자를 안 내주니까 이리로 왔지'라고 대답하신다. 반은 농담인 줄 알면서 나도 농담 삼아 물었다. 왜 미국에서 목사님께 비자를 안 내주느냐? 그 대답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상상에 맡기련다.

(97.7.19∼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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