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 성경의 불륜, 반역, 패역을 어떻게 설명할까?
  • 성경에 위인이 없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 이스라엘의 부끄러운 역사 기록을 어떻게 설명할까?
  • 주님의 고난을 왜 그토록 상세하게 남겼을까?

성경의 불륜, 반역, 패역을 어떻게 설명할까?

교회에 다니지는 않으면서도 교양을 쌓기 위해서 혹은 좋은 책이니까 성경을 읽으라고 권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 분들은 성경에 고도의 불륜이 있고 미성년자가 읽으면 안되는 악독한 장면이 있다는 것을 알까 모를까? 어떤 윤리 교과서에도 실을 수 없는 악한 이야기가 성경에는 많이 있다.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않거나 깊이있게 묵상하지 않으면서 다음 이야기만 읽으면 사람 버릴 수도 있으므로 선생님 없이는 읽지 말 것)

  • 유다와 다말(창 38):
  • 다말과 암논(삼하 13):
  • 다윗과 밧세바(삼하 11):
  • 압살롬과 다윗의 처(삼하 16:20-23):
  • 사사기의 어느 레위인의 첩(삿 19):
  • 롯의 딸들(창 19)...:

뿐만 아니라 반 윤리적 교훈도 많이 있다.

죽은 부모의 장례에 관한 이야기(마 8:21,22 눅 9:59-60) ↔ 장례에 관한한 모든 일에 제외되지 않는가?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있는가?
부모 형제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막 10:29, 눅 18:29) ↔ 요즘 같으면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사이비로 몰리기 십상이다.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듯한 교훈(엡 6:5-7, 골 3:22) ↔ 결코 윤리적이지 않다.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는 인권론자들이 보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책이다.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마 5:39, 눅 6:29)? 속옷을 달라거든 겉옷도 주라고(마 5:40) ↔ 1,000원을 달라는 거지에게 10,000원을 주면 어떤 일이 생길까? 감격해서 다시는 안올까? 아니면 소문을 내서 단체로 올까?
아침 일찍 포도원에 온 품꾼이나 오후 늦게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품꾼을 같이 취급한 따위의 이야기(마 20) ↔ 결코 윤리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회적인 질서마저 무너지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이야기이다.

이런 내용이 담긴 윤리 교과서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경 말씀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쓴 책은 돈벌이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악하고 잔인하게 그리지 않는 한 어떻게든지 사람을 미화시킨다. 성경에는 참으로 고상한 인간의 모습도 많이 있으면서도 이렇게 악독하고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들의 참모습은 그러하지만 그런 인간들을 대상으로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기록한 책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주인공은 결코 사람이 아니란 좋은 증거이기도 하다. 부디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알고, 믿고, 그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위대한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성경에 위인이 없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성경이 어떤 책인가를 설명하는 많은 주장들을 대별해 보면 '사람이 쓴 책이다'라는 주장과 '하나님이 쓰신 책이다'라는 주장으로 대별할 수 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는가?

  • 벧후 1:20-21: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을...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사람이 쓴 책은 사람이 위대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각종 위인전은 위대한 인물을 부각시킬 목적으로 단점이나 약점을 잘 기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쓰신 성경은 결코 사람이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다. 과연 그들은 위인인가? 아니라면 왜 우리는 그들을 위인이라고 배웠는가? 박정희, 이순신, 율곡같은 위인들과 다음 인물들의 위대하지 않은 점을 찾아보자.

  • 아브라함:
    창 11:31(고향을 떠난 것: 참고 수 24:2)
    창 12:17(=20:1-7):
    창 16:2(순종?)
    창 17:17-19(순종?):
    창 21:22(하나님만 아니면...):
    창 22 아들을 바친 이야기:
  • 야곱: 생애 자체가 헛점투성이지만 창 31:28-29:
  • 모세: 출앱굽기의 주인공은 모세일까? 하나님일까?
    부정적 발언: 출 3:11, 4:1, 4:10, 4:13, 6:12, 30
    약한 발언: 출 4:18, 5:3
    지도자로 부름받은 광경 4:14

※ 출애굽기는 어설픈 지도자와 형편없는 백성을 가장 위대한 선지자와 위대한 민족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이야기

  • 다윗: 삼하 11
  • 베드로: 막 14:37, 막 14:66:

(교회의 수장으로 신처럼 떠받들어지던 시절에 양아들이 쓴 글) 51: 벗은 몸으로 도망... 누구일까?

  • 바울:행 7:58, 9:1-30(유대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 위대할 것 없는 사람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가신 하나님의 이야기가 바로 성경이다. 위인전의 위인은 사람이 만든 위인이지만 성경의 위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위인이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이런 하나님의 손에 잡혀 위대한 인생을 살기 바란다.

이스라엘의 부끄러운 역사 기록을 어떻게 설명할까?

어느 민족 가릴 것 없이 자기의 역사는 오래된 것, 강한 것, 선한 것으로 미화시키는 법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4,300년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반 만년이라고 하는 것이나, 일본 사람들이 그 옛날 한반도에서 식민지를 경영했다고 우기는 것이나, 백제가 요동성 뿐만 아니라 북경까지도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는 주장 등등.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것일지라도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있으면 침소봉대해서라도 자기들의 조상이 위대했음을 알리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떠할까?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헌한 것은 전혀 없다. 그저 살려달라고 울부짖기만 했을 뿐이다(출 2:23-25).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폭탄을 던지고 목숨을 버린 우리 조상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유대인들이다.

자신들이 훌륭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미리 그렇게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약 400여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예고(창 15:13-14) 하셨다.

애굽(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 비록 200백만이나 되는 대군이라해도 10일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 싸우기만 하면 이기도록 해 주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반항하다가 40년이나 광야를 헤매는 벌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은 사람이 다 죽을 때까지 (민 13:25-14:25).

여호수아에서: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탓이다. 싸우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훌륭한 군인도 무서운 무기도 없이 그냥 미련하게 돌기만 하다니...(수 6장). 이스라엘 사람들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순종하는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한 것이다. 나머지 모든 전쟁도 순종할 때(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믿고 싸우면)는 이겼고 하나님의 말씀을 잊었을 때(무서워서 싸우지 않을 때)는 졌다.

아간의 경우처럼 범죄했을 때(수 7장)와 적군을 두려워해서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을 때

사사기에서: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섬김 → 하나님께서 이민족을 동원해서 고통을 당하게 함(일제시대처럼, 7년 내지 20년 정도) → 고통에 못이겨 하나님께 울부짖음→ 사사를 보내서 구원함(보통 40년 정도 태평함): 꼭 같은 일이 7번 정도 반복되는 것이 사사기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이다. 이런 짓을 한 사람이 했다면 모자란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사사기 뒤쪽에 나오는 참혹하고 혹독한 이야기는 당시의 사회가 얼마나 부도덕하고 불신앙적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요즈음 영화에 붙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정도의 딱지는 붙을 이야기이다. 역사에 기록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이야기가 두 가지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에서:
사울: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의 뜻을 더 따르다 결국 실패로 끝나는 왕이다.
다윗: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잘 따른 왕이다. 비록 크게 실수하지만 회개했을 때 다시 용서 받았다.

열왕기 이후에서:
약 40명의 왕 중에 선하다고 평가받은 왕은 겨우 5명이다.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고 옆길로 빠지다가 결국은 망했다는 기록

결론)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위대한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반역, 약자, 불륜의 역사이다. 특이하지만 모범은 아니며, 어떻게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다 망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즉 성경의 역사는 유대인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록한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주님의 고난을 왜 그토록 상세하게 남겼을까?

예수님의 일생을 출생, 성장, 전도, 고난으로 나누어 보면 그 중에서 가장 상세하게 기록된 부분이 바로 고난이다. 찬송가에도 예언과 탄생에 관한 찬송이 19장, 고난에 15장, 부활에 12장, 재림에 관한 찬송이 8장으로 고난에 관한 찬송이 아주 많은 셈이다. 막 8:31, 9:31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예고 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행위는 자신의 죽음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막 9:9). 막 10:10부터는 죽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죽음을 향하여 스스로 걸어가시면서 얼마나 고초를 겪으셨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가복음의 절반 정도가 예수님의 죽음을 직, 간접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예수님의 생애라는 것이 죽음에 그 의미가 다 담겨있다고 하겠다.

한 사람의 생애를 설명하면서 죽음을 상세하게 설명한 이야기는 많이 있다. 중국의 무협지를 예로 든다면 한결같이 사부님의 억울한 죽음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우여곡절 끝에 원수를 갚음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다.

'금삼의 피'라는 소설이 있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피가 말라붙은 비단 한 조각을 가지고 와서 이것이 바로 돌아가신 왕의 어머님의 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왕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의 모습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참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광해군 아니면 연산군의 이야기인데... 죽음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글 다음에는 당연히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가 이어지는 것이 당연지사이거늘 예수님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사복음서에는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그 후 어디에도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원수를 갚았다는 기록은 없다. 원수를 갚기는커녕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한 의리없는 제자들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자와 숨어있는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아 용기를 주고 성령을 주어서 무슨 일을 하게 했는가? 결단코 원수를 갚으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전하고 기념하고 즐거워했다. 도대체 왜 이런가? 정상적인 사람의 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적은 책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과 위에 적은 사람의 죽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자의에 의한 죽음과 타의에 의한 죽음,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죽음과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죽음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죽으러 오신 분이다. 죽을 때가 되었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그 분은 스스로 죽을 곳으로 찾아갔으며 원수들이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도록 시비를 걸었으며 없는 죄목을 찾기 위하여 온갖 비난과 거짓증거를 쏟아 놓을 때에도 아무런 대답도 않으시던 분이 정작 자신이 불리한 장면에서만 불리한 진술을 함으로써 사형언도를 받았던 것이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가르쳤던 그 분이 자신의 말씀대로 친구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이다. 이래도 성경을 일반적인 영웅의 이야기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것인가? 틀림없는 하나님의 이야기다.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를 추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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