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님이 반가와서.. 형제님, 안녕하세요?
이름이 ‘교인’이지만, '교인’님 하려니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해서 형제님이라 호칭하겠습니다. 물론 자매님 일 수도 있지만… 어제는 참 반가웠습니다. 댓글을 달아주셔서 또 이렇게 주안에서 교제를 이룰 수 있어 참 신이 났습니다. 전에는 이런 적이 별로 없었기에.. 형제님의 답글에 기분까지 들뜨곤 하였습니다. 어제 글 서두에서는 형제님이 누굴까 꼭 알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사이버상에서 익명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저는 단지, 평소 댓 글에 인색한 우리들인데, 형제님은 좋은 댓글로 상대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괜히 그랬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형제님의 포근한 마음이 담긴 댓글을 자주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형제님, 얘기를 하다가 보니까 ‘진리’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얘기가 나왔는데,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물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리와 믿음은 기독교의 가장 원초적이고 중요한 핵심 사항입니다. 이는 그 안에 복음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이러한 신앙의 기초를 잘 모르거나 그 내용이 잘 정립되지 않은 분들을 종종 대하게 됩니다 (형제님을 두고 하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믿음과 진리의 관계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진리는 발견되었고, 그 진리를 이미 소유되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 그 믿음으로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일치의 계념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을 "예수님을 소유했다" 라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잘 아시죠? 보화를 발견하였을 때는 그 보화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전 재산을 팔아 보화가 있는 그 밭을 산것입니다. 보화를 사는 행위는 믿음이고 그 결과는 소유입니다. 보화를 소유한 원인은 보화를 발견하고, 그 보화의 가치를 알고, 그 보화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뤘다 라고 말 할 수 있는데, 제가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보화를 얻게 되는 내편에서의 과정보다, 나와 상관 없이 그 보화가 그 밭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없었던 보화를 내가 만들어 취한 것이 아니고, 나와 상관없이 그 보화가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화를 얻게 된 것은 나의 믿음이라는 방편이 필요로 하였지만 그 이전에 나로하여금 보화를 얻어질 수 있도록 준비되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사실을 은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은혜는 나와 상관없이 이미 존재한 것이고, 나에게 베풀어진 것입니다. 단지 내가 그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인것입니다. 그 보화는 여기서 ‘천국’을 말하는데, ‘그리스도’ 또는 ‘진리’라고도 생각합니다. 이 보화를 얻기 위해 내가 노력하고 내가 수고하고 나의 평생에 이러한 과정을 되풀이 한다면 과연 얻어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보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내게 베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의지하고는 상관없습니다. 내가 이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받아드리는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행위이고, 그 하나님의 행위에 내가 반응하는 것이 믿음이라 말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뜻에서 앞서 말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리를 소유한 것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형제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진리되신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다” 는 말씀, 옳으신 말씀이고 저도 평소에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보화를 소유한 사람들인데 그 가치를 모르고 아무런 감정없이 그냥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얻은 보화를 생각하고 그 보화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기쁨은 더 해 질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음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노력이 중요하고 이와 같이 소유된 보화를 얼마나 그 가치를 아느냐에 따라 삶의 기쁨을 느끼는 정도도 다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잘 모르고 사는 것과 하나님을 깊이 있게 알아 가며 살아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안다라는 말은 하나님과 지속적이고도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면서 참된 기쁨을 누리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 행복합니다. 형제님과 저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풍성한 은혜가 있어지길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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