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3 1. 폴리갑(폴리카르푸스)의 순교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폴리갑이 화형을 당하기 전에 '단 한번 만이라도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은 86년 동안(유아세례 이후를 뜻할 수도 있음) 단 한번도 나를 부인한 적이 없는 데 내가 어떻게 주를 부인하겠으며 이 나이에 살면 얼마를 더 살며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부인하겠습니까?' 그러면서 화형을 당했습니다. 물론 이 기록(폴리갑의 순교기)도 후대의 첨가나 수정이 가해진듯 하지만 이런 폴리갑이 안식일 문제로 순교했다구요? 그렇다면 폴리갑을 처형한 장본인은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로마의 감독이라는 말인데요? 모르는 사람이 궁금님의 글을 읽으면 꼭 그렇게 오해할 수 밖에 없도록 쓰셨는데, 설마 그런 의도로 쓰신 것은 아니겠지요?
[답변]
죄송합니다. 그렇게 오해하셨다면 더 더욱 죄송합니다.
그러나 폴리캅이 안식일 준수자였던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소위 세칭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A.D. 153년경에 황제에게 그리스도교 박해 중지 호소문 (1 Apologia)를 바쳐야 할 만큼 시국이 매우 험악했던 때에 로마에까지 노구의 몸을 이끌고 불꽃튀는 쟁논을 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2. 궁금님께서 안식일 문제라고 예를 든 것은 폴리카르푸스(폴리갑)가 교황 아니케투스를 설득하려다가 실패한, 님의 말대로 '부활절 일요일 논쟁'(쿠아르토데키마니즘)입니다. 그것은 부활절을 어느 시기에 지키느냐의 문제이었지 정확하게 말하면 안식일에 대한 논쟁은 아닙니다. 그 부활절논쟁은 2세기에 시작되어 8세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더구나 이것을 주장한 분파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하지도 않았으니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지키는 문제와 그렇게 심각하게 연관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 연도와 날짜를 자세하게 기록함으로 기정사실인 것처럼 소개하셨지만 그 연도와 날짜는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모두가 동의하지도 않은 것이며, 대략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것을 그렇게 단정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위일 수도 있으므로 주의하셔야합니다.
[답변]
1. 사람들을 기만할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연도와 날짜에 관하여 많은 논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저로서는 잘 알수 없사오나 분명히 연대와 날짜가 쓰여진 책자를 보았기 때문에 글을 올렸습니다. 부족한 소견이었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2. 앞에서도 글 올렸습니다만 당시 로마의 상황에서 폴리캅은 두가지 견해에 대해서는 성서에 크게 위배되므로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즉 유월절 만찬식을 Nisan월 14일 대신에 "부활절 일요일"로
제7일 안식일 대신에 매주 일요일에로 예배의식을 변경하려는 기미를 강력히 반대했던 것입니다.
3. 또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로마의 반유대인 정책으로 미운 털이 박힌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는 것은 제7일안식일이었을 것입니다.
즉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유대인들이엇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서 유대인 취급을 받게 되고 사형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고 일요일로 예배일을 변경하려고 햇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당시의 상황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읍니다.
4.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요일 예배로의 기미를 폴리캅이 반대했던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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