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형제라면 누구인가? 12제자 중에 야고보는 두 사람이나 있고, 예수님의 친동생도 야고보인데?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의 형제: 그러면 유다도 예수님의 친동생이다(마 13:55, 막 6:2-3). 그러면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한다. 육신의 형제이었음에도 그 분의 신성을 믿었다는 말이다. 아마 이것만큼 확실하게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증거하는 증거도 없을 것이다. 참고로 세 야고보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1) 예수님의 제자이자 요한과 형제인 야고보(사 복음서 중에 요한복음에서만 이름이 나타나지 않고 세배대의 아들이라고 한다, 아마도 요한의 형이었을 것), 사도 중에서 특별한 사랑을 받은 세 제자 중의 하나이었고(마 17:1), 사도 중의 첫 순교자이었다(행 12:2).
    2) 12 제자 중 다른 야고보에 대해서는 자료가 거의 없다.
    3)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 예수님의 부활 이후 회심하여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야고보서를 썼다.

2. 유다는 어떤 사람들에게 이 글을 썼는가?

    부르심을 입고, 사랑을 얻고, 지키심을 입은 자: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성도들이다. 성도는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사랑하시고, 지키셔야 되는 것이다. 성경이 사람의 노력이나, 고백을 중요시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칭찬하시려는 건덕지일뿐 구원의 근거나 전제조건은 아니다. 아브람이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신앙의 성숙을 이룬 후에(창 12-21장)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고, 칭찬하시며 상급을 약속하셨다(창 22장). 아브라함이 순종을 통해서 의를 이루었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에 대한 칭찬이지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12장), 자녀로 삼은 전제조건은 아니다.

3. ‘있을지어다’와 ‘더욱 많을지어다’는 어떻게 다른가?

    더욱 많을지어다는 이미 있는데 더 많이 있기를 기원하는 말이다. ‘긍정 위의 긍정’이다. 반면에 ‘부정과 대비된 긍정’이나 ‘긍정을 위한 부정’도 좋지 못하다. 가령, 성경공부에 열심내는 성도에게 ‘전도도(긍정을 위한) 하지 않으면서 성경만(부정의 대상) 공부하고 있으면 뭐 하나?’라고 말하는 의도는 전도에 열심을 내라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대신, ‘성경공부 열심히 해서 은혜받고 전도도 해야지’ 이렇게 말하면 ‘긍정 위의 긍정’적인 표현이다. 얼마나 좋은가! ‘인간이 돼야지, 공부만 잘 하면 다냐?’, ‘돈 좀 있다고 ...’, ‘인물 값 한다고 ...’ 등은 흔히 쓰이는 ‘긍정을 위한 부정’의 예이다.

4. 유다는 ‘모든 성도들이 이미 구원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더 필요한 것이 없음’을 은연 중에 강조함으로 이단이 발붙일 틈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 두 가지 의도를 담고 있는 표현을 3절에서 고른다면?

    일반으로(share): 우리 모두가 얻은 구원이라는 뜻이다. 아직 온전하게 구원을 이루지 못하였음으로 다른 교훈을 받아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단번에 주신(once): 믿음의 도는 사도들이 전해준 그 복음이 결정적인 것이다. 또 다른 복음이 필요치 않다는 의미이다.

5. 유다서의 요지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것이다(3).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과 힘써 싸우라’(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재시라’(4)고 권면하는 유다의 말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그의 무슨 전적 때문인가?

    친동생으로 예수를 믿지 않던 그가 예수를 증거하기 때문이다.

6. ‘이단’이라는 말은 끝이 다르다(異端)는 뜻이다. 앞 부분은 보면 다르지 않다. 그래서 같은 종류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다르더라는 말이다. 이런 사람에게 적당한 별명을 본문에서 찾는다면?

    가만히 들어온 사람(4): 도둑, 간첩, 사기꾼, 사냥꾼 등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7.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하여 색욕거리로 바꾸었을까? (참고, 롬 3:7-8, 6:1)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셨으므로 성도는 어떤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온갖 죄를 다 짓는 경우이다. 주로 성적인 죄를 지었던 모양이다.

8. 경건치 아니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 바로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떤 판결을 받을까?

    이 판결? 5-15절에 언급된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들이 받은 심판을 가리킨다. 이런 심판을 받도록 이미 예언되었었다.

9.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더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알고 있겠지만 다시 반복해야 할 일이 많다. 유다가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대적하다가 심판받은 자들: 출애굽 때의 반역자들(5), 하나님을 반역한 천사들(6), 소돔 고모라 백성들(7).

10. 소돔 고모라가 불의 형벌을 받은 이유는 일반적으로 아는 대로 말하면 성적 타락이 극심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문은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두 가지)?

    저희와 같은 모양의 간음: 천사들과 같은 모양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않았다.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했다는 의미이겠지만 추가로, 유다가 많이 인용하고 있는 에녹서에는 타락한 천사들이 땅에 내려와 여인들과 간음했다는 내용이 있다. 아마 이런 장면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다른 색을 따라감: 정상적이지 않은 다른 육체와 성관계를 가진다는 뜻이다. 비정상적인 육욕을 의미한다.

11. 유다서에는 다른 성경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이나 내용이 더러 있다. 성경에서 처음 보는 표현이나 말을 찾아보자.

    큰 날의 심판(6), 천사장 미가엘이 마귀와 다툼(9): 외경을 인용하였기 때문이다. 유다가 이 글을 기록할 당시에는 정경, 위경, 외경이란 개념이 없었다. 단지 당시의 성도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설명했을 뿐이다(예, 요한의 로고스 - 헬라 철학의 개념이다, 바울이 인용한 이교 시인의 시구, 행 17:28). 성경에 없는 상식적인 예화나 일반적인 지식을 가지고 진리를 설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에는 신앙인의 교양서(가령, 신앙인들의 전기나 간증집처럼)로 많이 읽히던 책들이었다. 지금도 정경으로 인정하는 것이 잘못이지, 참고도서나 교훈집처럼 읽을 수는 있다. 그럴 필요성이 없을 뿐이다. 말하자면 당시의 상식적인 내용을 인용한 셈이다.

    큰 날의 심판이란 말은 ‘에녹서’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란다(습 1:14, 욜 2:31에 비슷한 표현이 있지만). 미가엘의 이야기는 ‘모세의 승천기’에 나오는 것란다. 아담의 7세손 에녹(14절)이란 표현도 에녹서에 있단다.

12. 성경의 꿈은 대부분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이다. 그러나 여기 꿈꾸는 사람들의 하는 짓은 무엇인가? 결과적으로 이 꿈의 의미가 무엇인가?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 것들 → 제 정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13. 이 사람들이 천사장 미가엘보다 더 심한 이유가 무엇인가?

    천사장 미가엘도 하지 않은 말을 함부로 하다니: 천사장 미가엘이 마귀와 다툴 때에도 함부로 정죄하지 않고 판결을 하나님께 미루었는데 이 사람들은 함부로 훼방하였다. 싸움도 욕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싸울 때 기껏 욕이라고 하는 게 ‘너, 나빠’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자기 딴에 대단한 욕을 한 셈인데 남이 듣기에는 우습다. 외경 ‘모세의 승천’에 의하면 모세는 살인자이기 때문에 사단이 모세의 시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천사장 미가엘이 싸울 때에도 감히 모욕하거나 욕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판결과 심판을 구하였다고 한다.

14. 이성없는 짐승은 본능에 충실하다. 짐승은 본능에 충실하는 것이 제대로 사는 길이다. 사람이 본능에 충실하면 어떻게 될까?

    짐승이 된다: 그래서 멸망하게 된다(10).

15. 이성 없는 짐승같은 사람의 예로 누구를 들었으며 왜 그런지 간략하게 설명해보자.

    가인(최초의 이단자, 살인자), 발람(물질에 대한 탐욕), 고라(정당한 권위에 도전)

16. 이성 없는 짐승같은 사람을 어디에 비유하였는가?

    애찬의 암초,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 선한 목자),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비를 기대하게 했다가 그냥 사라져버려?), 열매 없는 가을 나무(실망, 허무), 수치의 거품을 내뿜는 거친 바닷물결,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단 12:3, 누군 별과 같이 빛날 건데).

17. 에녹이 당시 사람들에게 예언한 내용은 성경에 없는 말이다. 이런 글을 인용하여 유다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우리 주님이 수만의 천사와 함께 임하시면 불의한 자들을 낱낱이 가려내어 정죄하실 것이다.

18. 거짓 선지자가 어떤 사람인지, 성도는 어떤 사람인지를 가리키는 단어가 본문에 대단히 많은데 그 중에서 거짓 선지자들과 성도들의 특징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조적인 단어는 각각 무엇인가?

    정욕(자기 욕심)과 경건: 거짓 선지자들이 아무리 은혜로운 말을 한다 해도 궁극적인 목표는 정욕이다. 반면에 성도는 경건이 목표이다. 18절에 이 두 단어가 대조되어 있고 경건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답도 있을 수 있다(가령, 성령 없는 자와 성령 있는 자).

19. 유다는 친형님인 예수를 믿지 않았다. 부활하신 후에 메시야로 믿게 되었는데 그 형님을 가리켜 어떤 분이라고 하는가(1-25)?

    그리스도(1), 홀로 하나이신 주재(4), 너희를 보호하시는 분, 거침이 없게 하시는 분, 그 영광 앞에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24),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25).

    영지주의자들은 영은 선하지만 육은 악하다는 영육이원론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었다는 것을 부정함으로 예수의 신인양성을 부인하였다. 더 나아가 육체의 행위는 고등한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함으로 도덕적으로 방종한 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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