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3


1. 1절의 성읍이 그 자체로는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짐작할 수 있는 근거가 그 다음에 있다. 어느 성읍일까?

    예루살렘: 방백이나 재판장은 그렇다고 쳐도 선지자, 제사장(4)은 이스라엘의 직분이다. 성소와 율법이 있는 곳이니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2. ‘포학하다’는 말은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동족들을 함부로 다루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패역하고 더러운 곳’이라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하나님에 대한 범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는 것이 패역이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

3. 손바닥 두 개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심판도 마찬가지다. 심판이 불가피한 두 가지 측면을 3-5절을 참고해서 말해보자.

    이스라엘의 총체적 부패(대상) ↔ 공의로우신 하나님(주체)

4. 이스라엘의 지도층 전부가 부패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고 누가 가장 죄가 큰지 말해 보자(다수결로, 토론용).

    방백: 사냥감을 노리는 부르짖는 사자다. 백성을 인도해야 할 자들이 잡아먹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말만 국민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들이다.
    재판장: 이튿날까지 남겨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다. 탐욕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울 궁리만 한다.
    선지자: 경솔하고 간사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함부로 내뱉는 경우는 경솔한 것이며 못된 의도로, 고의로 그런다면 간사한 것이다.
    제사장: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성소의 일도 그냥 일상사 일 뿐이다. 그렇게 무신경하게 성소의 일을 하는 것이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성소를 더럽히는 일이다.

5. 지도자들이 이렇게 부패한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침마다 간단없이 공의를 나타내실까?

    아침마다 태양이 떠오르듯이 하나님께서 공의를 나타내시지만 눈이 어두운 지도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정결한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그것을 볼 수 있을만큼 청결하지 못하다. 부끄러움도 모른다. 결국은 심판이라는 특별한 공의를 맛보게 될 것이다.

6. 예루살렘에 대해서 책망을 하다가 갑자기 열국에 대한 심판의 모습을 말씀하시는(6) 이유가 무엇일까?

    열방에 대한 심판에서 뭔가를 깨달으라: 심판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찾으라(7).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거니와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심판을 피할 길이 있다는 뜻이다.

7. 하나님의 간곡한 당부에도 유다는 돌이키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유다를 심판하시려는가?

    나라들을 소집하여(8): 외적을 동원하여 심판하시겠다는 선언이다.

8. 3장을 크게 두 문단으로 나누고 각 문단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1) 첫 문단: 1-8(심판)
    2) 둘째 문단: 9-20(회복)

9. 유다에 대한 심판의 결과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구원의 확장(9): 이제는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저버림으로 복음이 이방인에게 향했던 것처럼!

10.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逆으로, 그렇지 않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음)

    교만하지 않으며(11), 곤고하고 가난하며(12, 산상수훈 팔복의 첫번째),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음(13): 단순히 도덕적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11).

11. 회복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내가 흩은 자의 딸(10), 이스라엘의 남은 자(13), 시온의 딸, 예루살렘 딸(14)

12. 유다야 노래하라, 기쁘게 부르라, 기뻐하며 즐거워하라(14)!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므로(15): 세 가지 찬양에 세 가지 감사다! 찬양과 감사를 짝을 맞추어 반복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만큼 큰 기쁨을 노래하는 것이다.

13. 손을 늘어뜨리는 것은 좌절, 절망의 표시다. 더 이상 시온이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17): 회복도 자기 탓이 아니다. 절망하고 좌절하는 사람은 무능한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책망하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4.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데 어떻게 잠잠히 사랑하실까? 더구나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하면서(17)?

    잠잠히 사랑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안식을 누리신다는 의미다: 입을 다물고 조용히 계신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일을 이루신 만족감을 누리신다는 뜻이다. 너로 인하여 만족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안식은 피로회복을 위해서 가만히 누워계시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누리시는 것을 의미한다.

15. 회복되기 직전의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떠한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며 무거운 짐진 자(18), 저는 자, 쫓겨난 자,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19)

16. 다음 문장은 대체로 옳은 것 같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본문의 내용을 살려서 더 정확한 표현으로 바꾸어 보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극렬한 심판을 받은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돌아올 것이다’

    → 하나님께서 극렬한 심판을 한 후에 이스라엘을 돌이키게 할 것이다(10, 20).

17. 구약의 하나님은 너무나 두렵고, 신약의 하나님은 너무나 자비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피상적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으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구약의 하나님도 신약의 하나님도 같은 분이시다. 본 장에서도 심판을 선언하시는 모습과 회복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너무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점에서 일관성이 있다. 그 근거가 되는 단어를 두 개만 찾으면 무엇인가? 심판하실 때의 (     ) 회복시켰을 때의 (     )!

    심판하실 때의 (질투, 8) 회복시켰을 때의 (기쁨, 17)

18. 여러분에게는 어떤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가? (같은 원리로 어떤 부모?)

    나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전능자: 능력이 있는 분이 그렇게 기쁘다면 그 다음 일은 우리가 걱정하거나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거나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은 저절로 해결될 문제이다.

19.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18)’란 정기적으로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뵙고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못 되어서 안타까워하는 자란 뜻이다. 차비가 없거나 병이 들어서 못 가는 그런 개인적인 문제는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포로로 잡혀가서 성전에 갈 수 없는 자들에게 이스라엘이 망해버렸다(=치욕)는 소식은 정말 무거운 짐이다.

    패역(悖逆): 도리에 어긋나고 불순함
    간단(間斷): 잠간 끊음
    궤휼(詭譎): 야릇하고 간사스럽게 속임
    수욕(羞辱): 부끄럽고 욕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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