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2


1. 수치를 모르는 백성이라(1)? 말은 부드러워도 내용상 엄청난 모독이다. 이 말이 어떻게 그렇게 모욕적인 말인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하는 셈이다. 대부분의 욕은 인간을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험한 말로 고함을 질러야 무서운 게 아니라 이런 표현 자체가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일까? 3절의 ‘세상의’라는 표현을 참고하면 굳이 이스라엘을 가리키기보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민족을 향한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반면에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겸손한 자(3) 일 수밖에 없다.

2. 수치를 모르는 백성이 모여서 뭘 하려고?

    여호와를 찾으라는 말이다: ‘모일지어다’로 번역된 말은 짚이나 그루터기를 찾아서 긁어모으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하나님을 찾으면 분노의 날에 피할 길이 생긴다.

3. 광음이 겨같이? 광음이 더 빠른데? 왜 빛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겨에 비유했을까?

    광음은 세월(날)을 뜻하는 말이다(죄송!!!):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겨가 불에 타듯이 빠르게 임하기 전에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이다.

4. 부인은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데 믿지 않는 남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천국 갈 때는 마누라 치맛자락 꼭 잡고 가면 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굳이 본문의 표현을 빌려서 그렇게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면?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회개도 그 날이 이르기 전에 해야 하는 것이다. 순식간에 임하는 심판의 날에는 회개할 기회조차 없다.

5. 함께 심판을 당하는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이 가진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두 블레셋의 도시다: 4-7절은 블레셋에 대한 심판이다. 블레셋은 ‘가드’까지 포함해서 5개 도시의 연합체였다. 여기서 가드만 제외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유다왕 웃시야가 가드성을 무너뜨린 것으로 보아(대하 26:6) 아마 그 이후 재건되지 못했던 것 같다(암 6:2).

6. ‘해변이 초장이 되고 목자의 움과 양떼의 우리가 있을 것(6)’이란 말은 블레셋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철저히 파괴될 것이란 뜻이다. 이 말이 어떻게 파괴를 의미하는지 간단히 설명해보자.

    사람이 많이 살던 도시가 풀만 우거진 들판이 되어버렸으니: 여기서 말하는 해변이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문명을 이루어 살던 곳을 가리킨다. 거기에 ‘목자의 움(막)과 양떼의 우리가 있을 것’이란 말은 ‘거민이 없게 되었다’(5)는 뜻이다.

7. 하나님의 심판에 예외는 없다. 유다도 이방 열국도 다 심판을 당한다. 그래도 자기 백성 유다는 좀 다르지 않을까?

    끝내 돌이키지 않으면 심판은 동일하지만 유다에는 남은 자(7)가 있어서 회복된다.

8. 둘째 아들이 잘못하여 아버지께 매를 맞는데 맏이가 ‘아버지, 힘드실텐데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래서 형이 동생을 때렸다. 본문에서 그런 형을 찾아보자.

    모압과 암몬(8): 이 두 족속은 오랫동안 기회만 있으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발락(민 22-24장), 에글론(삿 3:12-30)이 대표적인 경우지만 그 외에도 다른 나라와 연합하여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삼상 12:9, 왕하 3:5-27, 삿 10:6-11, 삼하 10:1-11, ...).

9. 나중에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무엇을 차지하는가?

    블레셋의 성읍(7)과 모압과 암몬의 소유(9c): 이방 열국은 심판으로 완전히 멸절하겠지만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것은 살아남는 자의 것이다.

10. 모압과 암몬이 장차 소돔과 고모라 같을 것이라는 선언(9)은 참으로 잔인하다. 잊어버리고 싶은 악몽을 되새기는 일이며 다 나아가는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꼴이다. 왜 그런가?

    모압과 암몬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겨우 살아남은 롯과 그 딸들에게서 태어난 민족이기 때문이다. 겨우 살아남아 온갖 치욕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원위치라니?

11. 열국에 대한 멸망을 선언하고 있는 데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자. 본문에 참고할 만한 근거가 없는 나라는 평소실력을 동원해서 해보자.

    1) 동쪽에 있는 나라: 모압과 암몬
    2) 서쪽에 있는 나라: 블레셋, 그렛(그레데): 지중해 해변
    3) 남쪽에 있는 나라: 구스 (구스인은 흑인을 가리키고 지금의 이디오피아)
    4) 북쪽에 있는 나라: 앗수르(니느웨는 수도)
    5) 그 중에 당대 최강이며 도무지 망할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나라: 앗수르

12. 이렇게 사방의 모든 열국을 치는 이유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한 것이겠지만(10, 8, 15)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사람이 여호와를 경배하도록 하기 위해서(11): 열국을 친다는 것은 그들의 신을 친다는 의미다. 그렇게 함으로 진정한 신은 하나님 뿐이심을 보여주겠다는 선언이다.

13.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표현이 아주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무엇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찾아보자.

    사람이 많은 도시 → 각양짐승(야생동물)이 우글거림
    완벽한 관개 시설로 물 걱정이 없던 도시 → 사막처럼 메마름
    사람이 살던 집 → 당아와 고슴도치가 사는 집

14. 니느웨가 멸망을 당한 이유가 본문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교만: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15).

15. 선민사상에 젖어있는 유대인들이 듣기에 기분 나쁜 표현을 둘 찾아보자.

    1) 세상의 겸손한 자들아(3): 유대인 외에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는 것.
    2) 이방의 모든 해변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11): 여호와께 경배를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고 자기 처소에서? 그것도 해변의 모든 사람들이? 해변으로 번역된 단어는 ‘섬’으로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세상의 끝에 있는 백성들까지 가세한 보편적인 일이 될 것이다.

16. 아이들끼리 놀다가도 ‘셋 셀 때까지 항복해라. 하나, 둘, 둘 반, 둘하고 반의 반.’ 이렇게 항복을 요구하면 체면을 봐서라도 항복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싸움이 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실지라도 심판자체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가능하면 심판을 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이런 심경이 어디에 나타나 있는가?

    2절: 네 번이나 반복되는 ~하기 전에

17. 요나가 니느웨 성에 보냄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함이었다. 스바냐가 소리 소리 지른 이유는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니느웨는 하나님의 계획이 달라질 수 있었지만 스바냐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계획은 변동이 없다. 다만 개별적으로 피할 수 있을 가능성만 말한다.

18. 스바냐의 이름 뜻은 ‘여호와에게서 숨김을 받는다’ 이다. 어디에 자신의 이름을 은근슬쩍 건드리는가?

    2:3: 이름의 뜻을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여호와의 분노에서 가리워진다’는 뜻이다. 스바냐의 메시지는 심판의 날에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후욕(詬辱): 꾸짖고 욕함
    나의 끼친 백성: 남은(나머지) 내 백성 (용례: 후세에 공적을 끼치다)
    당아(塘鵝): 먹지 못하는 부정한 새의 하나 (올빼미 종류)
    치소(嗤笑): 빈정거리며 웃음
    쇠진(衰盡): 쇠하여 없어짐, 송두리채 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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