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4


1. 예루살렘 성읍이 또 함락되고 사로잡혀 간다고? 한 차례 바벨론에 잡혀 갔다가 돌아온 쓰라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무슨 끔찍한 얘기인가? 최종적으로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것은 AD 70년 로마에 의한 것이다. 본문이 그 사건에 대한 예언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이 본문에 있다. 그냥 짐작으로 맞추어보자.

    백성의 절반이 성읍에 남는 것(2), 혹은 열국이 아니라 로마가 단독으로 한 일: 로마 장군 디도가 예루살렘을 깨끗하게 멸망시켜 버렸다. 그러다가 AD 135년에 로마의 한 지방 성읍으로(Aelia Capitolina) 다시 재건되어 명맥을 잇게 되었다. 이런 차이점이 있으므로 이 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되어질 일, 즉 종말에 대한 예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2. 재물을 약탈당하는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찾으신다: 보물을 캐기 위해서는 굴을 파고 바위를 폭파시키고, 채로 쳐서 골라낸다. 자기 백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찾기 위함이다(13:7-9). 성도들이 엉뚱한 곳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더더욱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종말에는 그런 의미에서 에스겔의 곡과 마곡의 전쟁(겔 38-39장, 계 20:7-10), 계시록의 아마겟돈 전쟁(계 16:12-16)이 일어나는 것이다. 2절은 전쟁의 일반적인 참혹상이다.

3. 여호와께서 열국을 치시는 날이 어느 날인가?

    남은 백성이 끊쳐지지 않는 날(=자기 백성을 확인하신 날): 예루살렘이 약탈당하는 것은 그냥 두시고 보실 모양이다. 자기 백성이 누구인지 확인(?)하신 다음에 친히 간섭하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누구인지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니 그의 백성들은 어떤 경우에라도 그 분을 믿고 변치 말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이왕 전쟁 날에 싸운 것같이’ 란 말은 과거에 이적적인 방법으로 전쟁에 승리케 하신 것을 가리킨다.

4. 예루살렘이 내려다보이는 감람산 기슭에는 수 없이 많은 무덤이 있다. 좁은 땅에 너무 많은 무덤이 몰려 있어서 관을 묻을 때 세워서 묻었단다. 여기에 웬 무덤이 그렇게 많을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빨리 뛰어가려고: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재림하셔서 동편 문(소위 황금문)으로 입성하실 때 함께 따라 들어가려고(5c) 노리는 사람들이 이 곳을 가장 좋은 명당(?) 자리로 여겼기 때문이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나 지리적으로 한정시켜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 가볍게 여긴 탓이다. 그 날에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던지 동시에 주님을 뵙게 될 것이다. 죽었든지 살았든지, 화장을 했든지 매장을 했든지, 예루살렘에 있든지 한국에 있든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공간을 초월하신 그 분에게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성도는 열국이 몰려와서 재물이 노략을 당할지라도 평안하라는 것이다(1-3)!

5. 하나님께서 감람산에 임하시면 이 산이 쪼개질 것이다. 산을 왜 쪼개시는가? 위엄을 보이시려고?

    자기 백성들에게 도피할 길을 내시기 위해서: 아셀까지 피할 수 있는 길을 내신다는 뜻이다. 계시록에서는 독수리 날개로 태우고, 용이 토해내는 물을 땅이 삼킨다(계 12:13-17). 철저하게 성도를 보호하신다는 상징적인 표현들이다.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6.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그 날에 빛이 없다면 세상이 어두울 것이라는 말인가? (본문이 단순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는지 우주적 종말을 말하는 것인지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진다)

    더 이상 해와 달에 의존한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이 등장할 것이라는 뜻: 낮과 밤, 계절의 변화는 해와 달을 창조한 후에 생긴 일이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자연계가 유지되었지만 그 날이 되면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마 24:29, 계 6:12-14). 해와 달에 의존하지 않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빛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는 나라(=새 예루살렘)가 된다는 뜻이다.

7. 예루살렘에서 물이 솟아나서 흘러넘치는 장면은 에스겔 47장에도 있다. 물이 귀한 곳에서는 꿈같은 얘기다. 예루살렘에서 언제 이렇게 물이 흘러넘친 적이 있는가?

    예수님을 통해서 전해주신 복음이 온 세상을 뒤덮는 것: 장차 임하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비유의 최종판이겠지만(계 21:1-22) 일차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수라고 하신 말씀(요 7:38)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8. 하나님께서 빛, 생수, 왕이 되시면 무슨 일이 생길까?

    예루살렘이 안연한 성읍이 된다(10-11):

9. 예루살렘이 어떻게 안연한 성읍이 되는지 설명을 자세히 보자. 게바는 유다 북쪽 경계이고(왕하 23:8) 림몬은 예루살렘 남쪽인데 전부 산악지대다. 이 땅이 어떻게 된다고?

    평지: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된단다. 아라바는 황무지, 혹은 평원이란 뜻이다. 높이 들려질 예루살렘과 대조를 이룬다. 그러면 예루살렘은 평지 가운데 높이 솟은 지역이다. 요새라는 뜻이다. 그러면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 라는 말은 예루살렘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10.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는 빛, 생수, 왕이 되시지만 대적자들에게는 무엇이 되는가?

    재앙: 질병(12), 자멸(13), 탈취당함(14), 짐승들도 이런 재앙을 당하게 된다(15).

11. 안 믿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은 자기만 하나님이신가?’ 혹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만 사랑하시는가?’ 이러면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들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가?

    말은 맞지만 ‘하나님은 대적자들 가운데서도 남은 자를 찾으신다’는 사실도 추가로 알았으면 좋겠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이다(사 66:23). 회개하고 돌이키면 이 모든 것이 자기의 복이 되도록 길을 열어주셨건만 그 길로 들어오지 않고 불만만 토로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12. 많은 절기 중에 하필이면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실까? 초막절을 지키는 이유와 관련지어보자.

    출애굽에 동참하라는 말이다: 임시로 초막을 짓고 거기 거하는 이유는 광야의 방랑생활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을 향해서 방랑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감사하듯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 행렬에 동참하라는 것이다.

13. 중동지역에서는 비를 내리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징벌에 해당한다(17). 애굽은 왜 다를까?

    애굽은 나일강물로 농사를 짓기 때문: 애굽은 나일강이 창일하지 않으면 농사는 불가능하다. 다른 대부분의 역본은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반면에 개역성경에는 ‘창일함이’ 라는 말이 작은 글씨다. 원문에는 없다는 말이다. 지리적인 정황을 감안해서 번역한 셈이다.

14. 원래 ‘여호와께 성결’이란 표현은 대제사장의 관의 정금판에 새긴 것이다.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봉헌되었다는 뜻으로 쓰던 말을 왜 말 방울에 기록할까?

    말 방울에도 이런 말씀을 기록했다면 어디엔들 기록하지 않았을까? 대제사장만 성결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의 일반적인 삶도 성결하다는 의미이다. 말 방울이 일반적인 삶을 의미한다면 여호와의 전의 솥은 거룩한 삶을 말하고, 제단 앞 주발은 지극히 거룩한 삶을 말한다. 이런 것들이 구별되지 않고 모든 것이 성결하다는 말이다. 그 날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15. 모든 것이 성결한 세상에 가나안 사람은 왜 없을까?

    가나안 사람이란 악인을 가리킨다. 정결하고 성결한 하나님의 나라에 악인은 결코 들어갈 수 없다(사 35:8, 계 21:27, 겔 44:9).

16. 스가랴의 결론에 해당하는 14장은 계시록의 요약판이나 다름없다. 14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고 계시록의 내용으로 요약해보자.

    1-5: 어린 양의 싸움(계 19:1-21): 하나님께서 친히 적그리스도와 싸우신다. 엄청난 재앙이 쏟아지지만 성도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끝내 승리를 거둔다. 계시록의 재앙은 절대로 성도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니다.
    6-11: 새 예루살렘(계 21:10-21): 온갖 아름다운 보석으로 이루어진 성일뿐 아니라 대적도 슬픔도 없다. 비교할 대상도 없는 아름다운 성이다.
    12-15: 적그리스도에 대한 형벌(계 19:17-21): 악한 무리가 아무리 잘 나가는 듯해도 하나님께 대적하는 무리는 결국은 영벌에 처할 수밖에 없다.
    16-21: 단장한 신부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계 21:2): 악이 존재하지 않는 거룩한 세상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가지셨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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