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3


1. 예루살렘이 죄와 더러움을 씻는 것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죄와 더러움을 씻으려면 무슨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샘을 열어 주셔야 가능한 일이다: 회개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을 가까이 끌어다 주셨기에(마 4:17) 회개가 유효한 것이다. 또, 제물만 있으면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물을 끌고 제단에 가보면 이미 번제가 드려지고 있다. 그 번제물 위에 나의 제물을 올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주시지 않는 한 죄인에게는 길이 없다(레 9:17, 6:12, 출 29:25). 우리는 믿는다고 고백하기만 하면 되지만 그것이 가능하기까지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희생이 먼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2. 조지 오웰이 쓴 1984에 ‘언어조작을 통한 사회통제’에 대한 기초적인 언급이 나온다. 즉 빅브라더의 통치 이념에 어긋나는 모든 단어를 모든 문헌에서 삭제하는 장면이 나온다. 말을 없앤다고 생각마저 달라질까?

    가능하단다: 이름을 불러주면 그 때부터 존재하는 것이다(김춘수의 ‘꽃’).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존재해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참고, 전 6:10). 반면에 이름이 사라지면 존재도 없어진다. 그날에 우상의 이름을 끊는다는 것은 아예 우상은 생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오직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는 세상이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세상!

3. 그날에는 우상이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우상을 어느 정도로 싫어할까?

    부모가 우상을 섬기는 자식을 찌를 정도: 도대체 얼마나 미우면 그럴까? 거짓 예언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하는 세상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4. 선지자가 가짜인지 진짜인지 누가 잘 아는가?

    부모(3):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진짜다. 부부에게서, 자녀들에게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아도 진짜이어야 한다.

5.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을 입다? 사람을 속이는데 왜 털옷을 입을까?

    선지자도 아니면서 털옷을 입고 선지자인척 한다는 말이다: 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띤 것이 안락한 삶과는 거리가 먼 선지자의 복장이었다(마 3:4, 왕하 1:8). 오늘날 잘 다루어진 모피 털옷과는 전혀 다른 거친 옷이다. 왕궁에 사는 사람은 비단과 같은 부드러운 옷을 입는다(마 11:8). 오늘날에도 이런 류의 털옷을 즐겨 입는 자들이 많다. 기도할 때나 설교할 때 거룩한 척하는 말투나 태도도 이런 류이다. 작의적인 눈물이나 표정도!

6. 우상이 완벽하게 제거된 세상에는 더 이상 선지자도 필요 없고, 예언도 필요 없다. 그런 세상에서 예언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존재할 수도 없는 거짓 선지자는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속이는가?

    털옷을 입지 않고, 거짓말을 함: 선지자 행세를 아예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그 날에는 우상도, 우상을 섬기는 거짓 선지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7. 거짓 선지자에게 웬 상처가 있을까?

    우상을 섬기던 시절에 얻은 상처다(왕상 18:28, 레 19:28): 그래서 거짓말로 친구의 집에서 얻은 상처라고 하는 것이다. 두 팔 사이는 몸통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8. ‘내 목자, 내 짝된 자’는 위에서 말한 거짓 선지자일까?

    아니다: 거짓 선지자나 못된 목자를 가리켜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라고 한 적이 없다. ‘짝된 자’라는 말은 나와 교제하는 아주 가까운 자라는 뜻이다. 이렇게 목자를 치면 양떼가 흩어지리라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적용하셨다(마 26:56, 막 14:50). 나아가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배척함으로 결국은 만민 중에 흩어지는 것에 대한 예언이다. 위에 언급한 그 아름다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9.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는 표현(7b)은 긍정적인 의미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일 수도 있다. 흩어지는 양들 가운데서도 작은 무리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은이나 금을 연단하듯이 자기 백성을 정결케 하시는 분이시니까(9, 사 6:13, 벧전 1:7). 그렇게 해서 위에 언급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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