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8


1.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질투하시나(2)? 철없는 여자도 아니면서?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한 쪽에서는 사랑을 하는데 상대방이 사랑받는 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할 때 생기는 현상이 질투다.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는 그 분이 인간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인간을 한낱 피조물 중의 하나로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인격을 갖춘 존재로, 교제의 대상으로 만드셨고 그렇게 대우하시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하나님의 질투나 분노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온을 위하여’ 이다.

2. 하나님께서 떠나시면 이스라엘도 떠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돌아오시면 이스라엘도 돌아오게 된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이제 할 일은 무엇인가?

    돌아오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 예루살렘이 다시 번영하는 비결이다. 그래야 예루살렘이 진리의 성읍이 되고 성산이 된다(1). 그게 잘 안 돼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시 제대로 길을 가르쳐 주셨다(요 4:24).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3. 훗날 하나님께서 이루실 평화로운 나라의 가장 큰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무엇인가(3-5)?

    하나님의 임재, 장수: 결과적으로 노인들에게 여유로움이 넘쳐나고, 아이들의 장난이 끊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남은 자의 눈에는 꿈같은 일이다(6). ‘남은 자’는 본래 포로에서 귀환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사 10:22, 습 2:7, 학 1:12) 여기서는 신약의 성도들을 가리킨다.

4. 스가랴 선지자 시대에 돌아올 사람은 다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또 온 세상에서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는가?

    결국 이 본문은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불러모아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에 대한 예언이다(계 21:1-7). 9:9절을 참고하라.

5.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학개와 스가랴(9): 결국 지금 당장에 이들이 용기를 내서 해야하는 일은 성전을 완공시키는 일이다. 그 일을 마치도록 독려하면서 동시에 진짜 성전을 세우는 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6. 선지자들의 말을 듣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선지자들의 말을 들었으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손을 견고히 해야 한다(9, 13): ‘기운을 내라’ ‘담대하라’는 뜻이다(삿 7:11).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다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있어야 하나님의 일도 이루어진다.

7. 이스라엘이 일을 해도 삯을 얻지 못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전쟁통: 대적이 끊임없이 쳐들어오는 탓이다. 물론 자연적인 재난이 있을 수 있고, 악한 주인을 만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이 경우에는 시대가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적이 침략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삯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말씀에 순종할 때 주시는 복은 풍성하다(12, 레 26:3-10, 신 28:11-12, 겔 34:25-31).

8. 조상들이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단다. 그런데 왜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푸시는가?

    이유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징계를 내리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징계를 내리시지만 영원하지 않다. 하나님 스스로 노여움을 푸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녀로 삼은 탓이다.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런 관계로 창조하셨고 이 인간을 상대로 하실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징계를 내리셔도 반드시 회복의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조그마한 건수만 있어도 그걸 핑계로 복을 내리신다. 이런 의도를 가지신 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르면 얼마나 큰 복이 있을까?

9. 조상들에게 노를 발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서 은혜를 베풀테니 감사하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다(16-17): 여행길에서 뜻하지 않은 젊은 목사를 만났더니 부목사로 있는 자기 교회를 자랑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입니다.’ 이게 큰 자랑이었다. 나도 동감했다. 상식이 통하기만 해도 좋은 교회라니? 그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예배, 선교, 전도(=하나님을 향한 사랑)에는 열심이면서 이웃을 향한 사랑은 부족한 탓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이웃을 사랑하는 자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적 반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10. 7장의 질문, 즉 벧엘 사람들이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 있다면?

    금식이 변하여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이 될 것(19): 금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과 화평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하는 셈이다.

11. 하나님께서는 어떤 시대를 꿈꾸고 계시는가?

    온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쁨으로 찾는 시대(20-23): 이스라엘이 기억하는 네 개의 절기는 슬픔을 기억하는 날이다. 10월 금식은 예루살렘이 포위된 날을(왕하 25:1), 4월 금식은 예루살렘이 점령된 날(렘 39:2)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런 아픈 기억들을 떨어버리고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을 누리라는 것이다.

12. 이스라엘은 열방에 인기가 많다. 옛날에도 온갖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오더니 장차 또 찾아온단다. 이 방문이 이전과 비교해서 어떻게 다른가?

    이전에는 침략이었지만 장차는 여호와의 은혜를 구하러 온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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