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7


1.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백성들을 책망하던 다리오 왕 사년은 어떤 일이 진행되던 때인지 찾아보자(학 1:1, 15, 슥 1:1, 스 6:15).

    성전공사중: 선지자가 처음 하나님의 계시를 본 때는 다리오 왕 2년이었고(1:1), 그 해에 성전공사가 재개되었다(학 1:15). 다리오 왕 6년에 완공된다(스 6:15). 그러면 지금은 성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렇게 수고하고 있는데?

2. 벧엘 사람들이 제사장과 선지자들 찾아와서 물은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벧엘은 북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중심지였고, 찾아온 사람들의 이름은 바벨론식 이름이다. 이로보건데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기에 제사장과 선지자를 찾아온 모양이다. 잘한 일인데? 바른 대답을 말씀하시지는 않고 그냥 야단만 치신다. 도대체 어떤 태도로 금식을 했느냐는 것이다.

3. 칠십년, 즉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왜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을까(5, 왕하 25:8-9, 렘 41:1-3)? 포로 생활이 시작되는 초기에 무슨 슬픈 일이 있었을까?

    오월에 금식한 이유는 예루살렘의 멸망(왕하 25:8-9)을 슬퍼함이고, 칠월 금식은 그다랴의 암살(렘 41:1-3)을 애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지금도 계속 해야 하는 것인지 묻는 셈이다.

4. 이스라엘이 금식하고 애통했는데 그것이 어떻게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신 게(6) 될까? 절기에 따른 금식이 어떻게 자기를 위한 금식일 수 있는가?

    금식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랑이나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형식적인 종교행위가 아닌 말씀에 대한 순종이 우선이다(사 58:6). 마음을 먼저 드려야 한다. 인격적인 예배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서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벧엘사람들의 질문에 이스라엘 전체(5)를 책망하시는 셈이다.

5. 선지자의 말을 청종할 때에는 예루살렘과 사면에 사람이 많았단다(7). 지금은?

    왕래하는 사람이 없다(14). 사람이 없는 것이 황무함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짐승이 많아도 사람이 없으면 황무한 것이다(사 23:13).

6. 이스라엘은 지형을 몇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남방은 네게브라 불리는 사막지대고 평원은 세펠라라고 부르는데 평지다. 그러면 예루살렘과 사면 읍은 무엇이라고 불릴까?

    산지

7. 공의로운 재판, 인애와 긍휼,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말 것은 한 두 번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신 10:18, 사 1:17, 렘 5:28, 암 2:6-8... ). 금식은 하는데 이건 왜 안될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11). 이원론적 사고, 변질(촛점이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내 것을 희생하지 않으려하는 것이 주원인 아닐까?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럴 수 있는 것은 이원론적 사고가 주원인이고 이스라엘이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변질 아닐까? 이웃을 돌아보려면 내 돈이 들어가야 하는 탓인가? 아무래도 이런 분들께는 야고보서를 읽혀야 할까 보다.

8. 이스라엘이 얼마나 말을 듣지 않았을까?

    고의적이다: ‘등으로 향하며’라는 말은 등을 돌리는 정도를 넘어 소가 끌려가지 않으려거나, 멍에를 메지 않으려고 뻗대는 정도의 의미다. 목이 곧은(신 9:6, 느 9:29), 암소처럼 완강하다(호 4:16)는 표현과 비슷한 의미다. 그러면서 귀를 틀어막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순종하지 않았다. 어려운 형편에 처해서 어쩔 수 없이 불순종한 것이 아니다.

9. 아름다운 땅이 왜 황무하게 되었는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원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찾아두신 가장 아름다운 땅이었다(겔 20:6).

10. 금식의 여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다음 장에 나올까?

    나온다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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