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3


1. 스가랴가 받은 환상은 시리즈물 같다. 첫 번째 환상(1:7-17)은 ‘열방의 징계와 예루살렘의 회복’이라면 두 번째 환상(1:8-21: 열방의 징계2)과 세 번째 환상(2:1-13: 예루살렘의 회복2)은 첫 번째 환상을 좀 더 세부적으로 설명하는 셈이다. 네 번째 환상은 앞의 세 가지 환상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가?

    제사장을 정결케함(=제사장의 회복): 예루살렘의 회복의 핵심은 성전의 회복인데 회복된 성전이 제 역할을 하려면 반드시 정결한 제사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사장의 회복’이라고 제목을 붙여도 좋겠다.

2.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당시의 제사장이다. 제사장을 상대로 사단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

    대적하는 일: 뭔가를 세우기 위함보다는 허물기 위함이요, 격려하기보다는 좌절시키는 말을 하고, 좋은 말보다는 못된 말을 하는 것이 그의 본성이다(욥 1:9-11, 벧전 5:8, 계 12:10). 더러운 옷을 입었기에 더럽다고 말하는 것도 사단의 일이다. 하나님은 더러운 옷을 벗기고 정결한 옷으로 갈아입히신다.

3. 예루살렘을 왜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로 표현할까?

    징계를 받았으나 회복시키실 것에 대한 상징: 이스라엘이 징계를 당하긴 하여도 완전히 재가 되어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암 4:11). 좋은 조각가의 손에 들리면 다시 멋진 작품으로 태어날 수 있다.

4. 대제사장이 더러운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을 비유하는 걸까?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비유다(4): 그 더러움을 제하여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더러움을 제하여 버린다. 죄지은 인생을 깨끗하게 하시는 것도 사실은 무조건적인 은혜다.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신 독생자 그 분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은혜다.

5. 관을 씌우는 일은 선지자가 나설 자리가 아닌데 나선 것 아냐?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하실 일인데 함부로 참견하고 말이야? 선지자가 왜 그랬을까?

    다급함 때문 아닐까? 대제사장이 정결케되지 않는다면 성전회복도 소용없다. 온전한 대제사장이 세워져야 한다는 다급함 때문에 나서지 않아도 될 일에 나선 것 아닐까? 관은 제사장의 복장 중에 반드시 필요한 모자다.

6.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셨으면(4-5) 만사가 끝난 것 아닌가?

    깨끗케 하신 후에 율례를 지키라고 하신다(7): 회개하고 용서 받았으면 제대로 된 자녀가 되어야 한다. 회개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셨으니 구원받은 자답게 살아야 한다. 거듭났으면 성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

7. 제사장도 여호와의 도를 준행하며 율례를 지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지극히 당연하다: 실제로는 백성들만 그렇게 지켜야 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법을 주관, 혹은 집행하는 특권을 가진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나님의 법을 다루는 제사장이 먼저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

8.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며 율례를 지키면(7) 무슨 특권을 누리게 되는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됨: 세 가지, ‘집을 다스리는 것’, ‘뜰을 지키는 것’, ‘여기(하나님 앞에) 섰는 자들 중에 왕래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유일하게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

9. 대제사장과 그 동료들(제사장들)이 예표의 사람이라면 무엇에 대한 예표일까?

    ‘순’이라는 하나님의 종이 오게 될 것에 대한 예표(사 11:1, 렘 23:5의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진짜 종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10. 대제사장 앞에 웬 돌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돌, 땅의 죄악을 제하게 하는 돌, 일곱 눈이 있는 돌(9), 온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돌(10)이다. 무슨 돌일까?

    오실 메시야에 대한 상징이다: 예수님을 가리켜 건축자들의 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라고 하셨다(마 21:42, 행 4:11). 메시야를 가리켜 ‘순’이라고도 하고 ‘돌’이라고도 하는 것은 그 분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이 돌의 특징도 눈여겨 볼 일이다. 예수님은 한 시도 하나님의 뜻을 잊은 적이 없다(=말씀이 새겨진 돌). 그렇게 해서 믿는 모든 자의 죄악을 사하셨다. 전지하신(=일곱 눈을 가진 돌) 하나님이셨다.

11. 이스라엘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는 그 날이 어떤 날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날: 여호와의 종, 순, 돌이라고 표현되는 메시아의 사역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날을 가리킨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는 모습은 온 성도의 교제가 회복된 모습이다. 가장 이상적인 평화로운 모습을 묘사하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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