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8편


1.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2. 하나님을 인자하시다(=헤세드)고 할 때 일반적인 의미 외에 성경만의 독특한 의미가 있을까? 선하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3.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

4.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5. 고통 가운데서 기도했더니 넓은 곳에 세우셨단다(5). 넓은 곳은 춥지 않을까?

6. 인류의 역사는 어쩌면 자유를 찾아 헤맨 역사라 할 수 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외침도 그리 오래 된 말이 아니다. 어쩌면 이제야 겨우 자유라는 것을 제대로 맛을 보나 싶었더니 과도한 자유를 반납하려는 경향마저 보인다. 너무 큰 자유는 부담스러운가보다. 어떻게 찾은 자유인데 이럴까?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지 본문은 근거로 생각해보자?

7. 시인의 고통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의 고통이었던 모양이다(10). 시인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다는 말이다. 뭇 나라가 벌떼처럼 에워쌌다가 가시덤불의 불 같이 사그라진 것을 체험한 왕이 누구인가?

8. 대적이 벌떼같이 덤빈다고 하더니 갑자기 ‘너’라니(13)?

9. 하나님은 오른손잡이일까(15-16)?

10.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은 삶의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자신을 다시 살게 도와준 분에 대한 감사를 잊을 수 없다. 시인은 그런 감격으로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가?

11. 의인이 들어가는 의의 문이란(19-20) 어디에 있는 것인가?

12. 본문의 ‘건축자’는 원문상 복수다. 돌을 버린 것이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다. 전문가들의 일치된 생각으로 버렸으니 정말 쓸모없는 돌인데 이것이 어떻게 요긴한 돌이 될 수 있는가?

13. 건축자가 버린 돌은 일차적으로 시인을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구를 가리킬까?

14. 복음송 ‘이 날은 이 날은 주의 지으신 주의 날일세’는 본문을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본문과 차이가 좀 있을까?

15.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더니(22-24), 갑자기 ‘이제 구원하소서?’ 뭔가 이상하다!

1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누구인가?

17.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체험한 사람이 무엇이라고 찬송할지 본문에서 찾아보자.

18.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매라’는 것은(27)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제사제도를 설명하는 레위기에 이런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내용을 모른 채 번역을 하면 전혀 다른 뜻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새번역은 ‘나뭇가지로 축제의 단을 장식하고 제단의 뿔도 꾸며라’로 번역했다(NIV도 비슷함). 번역을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핵심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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