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3편


1. 이 시편의 시작과 끝이 무엇인가?

    할렐루야: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난다. 찬양하라는 뜻을 지닌 ‘할렐’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이런 시편을 할렐시라고 부른다(113-118, 136, 146-150). 주로 절기 때 집회에서 많이 불려졌단다. 그렇다면 본 시편에서 할렐이란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올까? 6번이다.

2.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온 세상 모든 사람들(2-3): 1절에서는 여호와의 종들이 찬양의 주체이지만 곧 확장되어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한다.

3. 우리나라 모든 사람에게 중복되지 않는 번호(가령, 주민등록 번호)를 하나씩 부여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지 생각해보자.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을 시인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모든 시공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한다. 2절의 ‘이제부터 영원까지’는 모든 시간을, 3절의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는 모든 공간을 의미하는 셈이다. 주민번호의 앞자리는 시간을, 뒷자리는 남녀와 장소를 의미한다. 그래서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장소에서 동성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같을 수가 없다. 만약 그렇더라도 끝자리 하나 정도는 다를 것이다.

4. 찬양의 대상은 무엇인가?

    여호와의 이름(1, 2, 3): 이름은 그 분의 존재 자체요, 속성과 사역, 인격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5.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근거는 무엇인가?

    높으신 분이 (천지를 살피시려고) 스스로 낮추셨기 때문이다(4-9): 시선만 돌리신 것이 아니라 신분까지 낮추셨다(빌 2:5-8). 세상에 눈높이를 맞추신 것이다.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6. 높으신 임금님에게 가난한 자나 궁핍한 자는 어떤 대상일까?

    무가치한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백성을 잘 돌보아야 좋은 임금님이지? 그건 가난한 우리 생각이고 임금님의 생각이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혹시 관심이 있더라도 그것은 하급관리나 하는 일일 뿐이다. 대기업 사장님의 말단 사원의 고충을 살핀다면 얼마나 좋은 회사일까마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높고 높으신 하나님께서 그러셨다는 것이다.

7. 왜 가난한 자는 먼지 더미에, 궁핍한 자는 거름 더미에 있는가?

    먼지는 무가치함을, 거름은 버려진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그렇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지도자들과 함께 하도록 일으켜 세우셨다(7-8, 삼상 2:8). 어떻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8.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셨다고(9)? 역으로 생각해보면 임신하지 못한 여자는 집에 못 살았는가?

    아이를 낳지 못한 여자는 집에 있어도 가난한 자나 궁핍한 자가 멸시를 당하던 것과 마찬가지이었다(삼상 1장의 한나). 먼지나 거름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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