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0편


1. 다윗이 말하는 내 주는 누구인가?

    이 땅에 오실 메시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지만 실제로는 ‘주의 오른 쪽에 계신 주’시다(5). 훗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묻는다(마 22:41-44 막 12:35-36 눅 20:41-43).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이면서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는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다윗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도? 성경이 말하고 있어도 내 생각에 불가능한 일이라면 성경이 그런 뜻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선입견 때문에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결국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2. 하나님의 오른 편에는 누가 앉을 수 있을까?

    제2인자만이 앉을 수 있는 곳이다. 삼위 하나님 중에서 2위 성자만의 자리다.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권위로 만물을 다스리는 자리다.

3. 2절의 ‘주’는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1절의 ‘주’를 가리키는 2인칭대명사(you)다. 시온은 다윗이 점령한 여부스인들의 성읍이었지만 훗날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서 성전이 건립된 후에는 여호와의 거처가 된 곳이다(암 1:2, 시 9:11). 바로 여기서부터 우리 주님께서 원수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여호와에게서 받으실 것이다. 은근히 다윗왕조를 통해서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암시하는 셈이다.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상세하게 예언하는 바람에 이 시편은 비교적 짧은 것에 반해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마 22:42-45, 26:64, 막 12:35-37, 14:62, 16:19, 눅 20:41-44, 22:69, 행 2:33-36, 고전 15:25, 엡 1:20, 골 3:1, 히 1:3, 13, 7:17, 10:12, 13, 12:2).

4. 2절과 3절은 어떤 점에서 대비되는가?

    2절이 원수에 대한 완전한 정복을 말한다면 3절은 구속받은 백성들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것이다. 권능의 날이란 원수들에게는 정복당하는 날이 되고 주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다.

5. 새벽이슬 같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해가 뜨면 금방 마르는 게 새벽이슬인데?

    새벽에 이슬이 온 땅을 덮는다는 의미에서 보면 풍성하다는 의미가 적합해 보인다(신 32:2, 미 5:7). 그런 의미에서 표준새번역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새벽 이슬이 맺히듯이, 젊은이들이 임금님께로 모여들 것입니다.’ 즐겁게 헌신하는 주의 백성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6. 여호와께서 언제 맹세하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4)?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알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7.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제사장이라면 멜기세덱이 제사장이었던가?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창 14:18). 그 외에 다른 것은 알 수 없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히브리 기자는 멜기세덱을 예수님의 그림자로 보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했다(히 7:3).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제사장’이란 레위 지파가 아닌 제사장이라는 의미다. 혈통이나 율법에 따른 일시적인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채하셔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 셈이다(히 7:27). 낙하산 인사? ‘낙하산’이라기보다는 ‘영입’이다.

8. 이 시편에서 초림과 재림이 구분이 되는가?

    2-4절은 초림, 5-7절은 재림이다. 초림 때는 겉보기에는 실패한 듯 싶어도 모든 권세를 주의 백성들에게 주어 수많은 백성들이 주께 돌아오는 길을 여셨다. 그러나 주의 권능의 날에는 온전히 심판하실 것이다.

9.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는가? 하나님이 이렇게 잔인하신가?

    크기를 다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배신한 댓가다(계 14:20): 끝도 없이 인내하시던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것은 역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10. 심판의 날에 왕들을 치고 대적들의 시체가 넘쳐난다더니 갑자기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머리를 드시는가?’

    5-6절이 전투장면이라면 7절은 적을 추격하는 도중에 물을 마시고 원기를 되찾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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