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8편


1. 우선 57:7-11과 60:5-12을 본 시편과 비교해보자.

    두 개의 시편에서 일부를 가져와서 하나의 시로 합친 것이다(1-5=57:7-11, 6-13=60:5-12). 조금만 수정했는데 구성이나 연결이 자연스럽다. 아마 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 익명의 시인이 다윗이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승리한 것을 기억하며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려는 의도로 이런 편집을 한 것으로 보인다.

2. 잠자던 비파와 수금과 새벽을 깨우면 어떻게 되는가?

    새벽부터 시끄럽지(?): 가장 소중한 첫 시간부터 마음을 다 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절의 ‘마음’이 둘인데 서로 다른 단어다. 찬양의 주체인 두 번 째 ‘마음’은 ‘카보드’로 영광, 중요함을 뜻한다.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의미다.

3. 김진홍 목사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쓴 책의 제목을 본문에서 따왔다. 그 책의 제목이 무엇인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절망이나 다름없는 현실을 헤쳐 나가는 자전적 체험을 담은 책이다. 필독을 권한다.

4. 왜 ‘만민 중에서’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찬양하는가?(4-5)

    온 세상의 모든 것을 대표해서 감사하고 찬양하는 셈이다. 가정에서 찬양하면 가정을 대표하는 것이고 나라 중에서 찬양하면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다.

5. 하나님께서 찬양받으실 이유는 무엇인가?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 때문: 찬양해야 할 이유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

6. 왜 하필이면 오른손으로 구원하라 하시는가?

    오른손(야민)은 능력을 의미한다(출 15:6, 12, 신 33:2, 시 17:7): 라헬이 아들을 낳고 베노니(벤오니-슬픔의 아들)라고 불렀을 때 야곱은 ‘벤 야민’이라고 고쳐 불렀다. ‘오른 손의 아들’이란 의미다(창 35:18).

7. 세겜은 요단 서편, 숙곳은 요단 동편에 있다. 왜 세겜을 나누고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는 걸까?

    세겜은 가나안 전쟁 초기에 온 이스라엘이 모여서 말씀을 선포하고 언약을 새롭게 한 곳이다. 나누고 측량하는 것을 땅을 분배하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면 여호수아 시대의 승리를 기원하는 셈이다.

8. 한 마디로 이 세상이 하나님에게는 무엇인가(8-9)?

    놀이터: 어린 아이가 마음껏 뛰놀다가 입고 있던 것과 가지고 놀던 것을 다 벗어 던지고 씻으러 간 모양새다. 세상의 왕들이 제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하나님의 놀이터에서 살고 있는 짐승이나 곤충일 뿐이다. 결국 이 모든 지역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이다.

9. 길르앗은 요단 동편이고 므낫세는 요단 동편과 서편의 양쪽에 있다. 가나안 정복 전쟁 때 차지한 땅이다. 400여 년 전의 일이고 그 동안 이스라엘이 이 모든 지역을 제대로 간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다윗은 이 모든 지역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지역을 회복케 해주실 것을 내다보고 있다.

10. 이 모든 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어디인가?

    유다: 갑옷 중에서는 머리의 투구(=에브라임)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왕권을 상징하는 유다(=규)가 가장 중요한 지역일 것이다.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유다지파다. 처음에는 유다 지파의 왕이었다.

11. 모압과 에돔은 위의 다른 지역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얻은 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이 아니다. 그래서 목욕통, 신발을 두는 곳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두 곳은 공히 하인이나 종들이 다루는 곳이라서 모압과 에돔이 이스라엘의 종 노릇을 할 것이라는 예언으로 본다. 이런 문맥을 따르면 블레셋의 외침은 ‘재난 가운데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한다.

12. 블레셋은 쉽게 유다에 굴복하지 않았다. 다윗 시대에 잠시 유다의 영향권 내에 들어온 적은 있어도 거의 대부분 적대적인 세력으로 존재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위에서 무엇이라고 외치실까?

    승리하고 외치는 말을 의미한다. 가령,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블레셋마저 정복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13. 왜 에돔으로 인도할 자를 찾는가?

    견고한 성읍과 에돔을 같은 의미로 본다면 점령해야 할 대상이다. 대적으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대적을 치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다. 소바와 아람 지역을 정벌한 사건에서 요압이 돌아와 에돔의 염곡에서 싸웠는데(삼하 8:13-14, 대상 18:12-13), 에돔과의 전쟁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14. ‘누가 나를...?’ 두 번이나 반복하는 것은(10) 오직 하나님만이 승리를 주실 분이라는 확신하는 것이다. 12-13절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11절은 어떤 의미일까?

    정말 버리실 겁니까?: ‘그럴 리가 없지요?’ 하는 말이다. (대부분의 역본들은 11절도 두 개의 의문문으로 번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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