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4편


1. 지진,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 빙하기가 닥칠까? 유성이 충돌할까? 그래서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을까?

    다 하나님의 섭리 속의 일이다. 세상이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세밀하게 돌보시고 계시니 하나님을 찬양할 뿐이다. 설령,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섭리일 뿐이다.

2. 본문을 크게 세 대지로 나누어 보자.

    1) 창조주, 2) 창조, 3) 섭리(만물의 보존)

3. 창조의 순서는 (1일)빛, (2일)궁창 아래의 물 (3일)땅, 풀, 채소, 과목 (4일)해, 달, 별 (5일)어류, 새 (6일)땅의 생물, 사람 (7일)안식하심이다. 본문에서 날별로 관련된 표현을 찾아보자.

    (1일) 빛 = (1-2): 빛을 입으심
    (2일) 궁창과 아래의 물 = (2-3): 하늘을 휘장같이, 물과 구름
    (3일) 땅, 풀, 채소, 과목 = (5-18): 땅에 식물을(짐승과 새, 사람을 위하여)
    (4일) 해, 달, 별 = (19-24): 해와 달로 시간(절기, 때, 낮과 밤)을 재도록
    (5일) 어류, 새 = (25-26): 바다 생물
    (6일) 땅의 생물, 사람 = (27-30): 모든 생물을 주관(섭리)
    (7일) 안식하심 = (31-35): 하나님의 즐거워함(=안식)
    대체로 창조의 순서를 따라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4. 고대에는 옷이 곧 신분이다. 하나님의 복장은 어떠한가?

    빛을 입고 하늘을 휘장처럼 두르셨다. 아무리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왕이 있다고 해도 빛을 입고 계신 분 앞에 감히 폼을 잡을 수 있을까? 빛을 어떻게 입으셨을까? 옷처럼 빛을 입으셨다는 말은 빛을 창조하셨고, 빛처럼 영광스러운 분이시라는 것과 그 분 자신이 빛이시라는 것을 다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요일 1:5, 딤전 6:16, 막 9:3).

5. 시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께는 교통수단이 필요 없다. 이런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교통수단(?)이 무엇인가?

    구름은 자가용 차(사 19:1, 단 7:13), 바람은 자가용 비행기(삼하 22:11): 바다에 요트까지 떠야? 서양의 부자들 중에는 자가용 비행기까지 있는 모양이더라! 고대에 이런 상상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였음에 틀림없다.

6. 구름과 바람 날개로 다니시는 분이 왜 물에 누각을 세우실까? 하늘 높은 곳에 세우시지 않고? 물에 누각을 세운다면 요트를 타고 다니셔야 격에 맞는데?

    이 물은 궁창 아래의 물이 아니고 궁창 위의 물을(창 1:7)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하늘 높은 곳에 누각을 세우셨다는 말이다.

7. 본문이 말하는 구름, 바람, 불꽃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사람이 조종할 수 없는 것: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함으로 인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신 분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다.

8. 우리 몸을 크게 구분한다면 근육과 골격이 형태를 만들고 순환계가 몸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그렇게 구분한다면?

    땅(5-9)과 물(10-17): 땅을 고정시키신 후에 물을 통해서 자연만물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 땅이 하드웨어라면 물이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는 셈이다.

9. 지구의 온난화가 심해지면 해수면이 대폭 상승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전부 물에 잠기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셨다(9): 물이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다. 물도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혹시 넘으면 우리에게는 재앙이다. 만약 모든 육지를 평평하게 고른다면 육지는 해면 아래 2700m가 된단다. 지구는 물이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땅과 육지를 분리시켜 두셨다. 이게 흔들리면 우리는 갈 곳이 없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라본다면, 둥근 지구 표면에 이렇게 물이 많은데 어떻게 흘러내리지 않을까? 뉴턴이 만유인력이라고 알려주었지만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10.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셨단다. 주께서 그 물을 꾸짖으셔서 도망가게 하시고 산과 골짜기를 만드셨단다. 정말 그럴까?

    에베레스트 산도, 알프스 산맥도 한 때는 물속에 있었단다. 지구과학에서는 이렇게 높은 산들도 한 때는 바다 밑에서 생긴 퇴적층(수천 미터)이었는데 주름 잡히듯이 밀려올라가서 산맥이 되었단다(습곡산맥). 이런 조산운동을 통해서 높은 산들이 형성되었단다. 성경은 천지창조 때(창 1:9)와 노아 홍수 때에(창 7:19-20) 그랬다고 한다.

11. 하나님의 꾸짖으시는 모습은 우렛소리와 같다. 그 명령을 따르는 물은 어떤가(7-8)?

    천지개벽이다: 거대한 홍수가 들이닥치듯 물이 쏠려 산을 덮고 골짜기를 타고 흐른다고 생각해보라. 8절의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란 표현은 두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물의 흐름을 의미하는 것과 산과 골짜기의 형성이라는 해석이 그것이다. 7-9절의 문맥은 물의 흐름과 위치에 관한 것이다.

12. 하나님께서 누구를(무엇을) 위하여 물을 공급하시는가?

    모든 동식물: 물을 공급하셔서 각종 짐승들과 풀과 채소와 나무를 자라게 하신다. 물이 공급되지 않는 땅이나 개체는 바로 죽음에 이른다. 물은 생명을 가능케 하는 신비로운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기온이 내려가면 부피가 줄게 마련인데 물은 얼면 오히려 부피가 늘어나 강물이 위에서부터 얼게 된다. 그래서 강물이 얼어도 바닥은 얼지 않아서 어류가 살 수 있다. 바닥부터 언다면?

13. 하나님께서 자연만물에 물을 공급하는 방법 2가지는 무엇인가?

    샘을 솟게 하는 것(10)과 비를 내리는 것(13): 물의 순환은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유지시켜준다. 다만,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물의 일반적인 특성을 역행하는 장치(샘과 비)를 두셔서 지속적으로 순환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24)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14. 13-18절은 10-12과 어떤 관계인가?

    확장된 반복이다. 내용이 더 풍성해지고 범위는 넓어지고 확장되는 것이 자연만물을 세심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15. 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이 본문에 있는가?

    음식물이 다르다(14-15): 가축을 위해서는 풀을, 사람을 위한 채소, 포도와 기름과 양식을 주셨다. 짐승에 비해서 사람에게는 즐거움과 윤택함을 더해 주셨다. 아마도 먹는 즐거움(조리, 요리)을 누리는 것은 사람뿐일 것이다.

16.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은 모든 자연만물에 미치고 있다. 짐승들 중에서는 어떤 짐승까지 돌보시는가?

    들나귀(11), 산양, 너구리(18): 들나귀는 경멸의 대상으로 여겨진 짐승으로 황폐한 곳에 사는 버려진 짐승으로 여겼다. 산양이나 너구리(오소리)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사는 짐승이다. 이런 짐승들까지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해와 달을 창조하신 중요한 목적이 무엇인가?

    절기와 때를 알게 하려고(19-20, 창 1:4): 계절과 날과 해(year)의 기준은 해(sun)와 달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에게는 이런 것이 필요 없지만 시간의 제약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굉장히 유용한 장치다. 땅에 지번을, 성경에 장절을,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비슷한 유형이다(컴퓨터의 포맷도 땅에 줄을 그어 지역을 나누고 지번을 붙이는 것과 비슷한 현상). 주소나 이름이 없다면, 성경에 장절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지 생각해보라. 우리 인생의 편의를 위하여 밑도 끝도 없이 흐르는 시간에 해와 달을 사용해서 이정표를 붙인 셈이다.

18. 사람과 삼림의 짐승의 차이점이 있다면?

    삼림의 짐승들은 밤에 활동하고 사람은 낮에 활동한다(20-23): 모든 동물이 하나님의 섭리(창조 질서)에 따라 살아간다는 의미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야행성 인간이 많아진 것은 인간에게 결코 유익한 것이 아니다. 밤에는 자야 하는데...

19. 만물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어떤 특성을 찬양하게 되는가?

    지혜(24): 장인(匠人)이 뛰어난 작품을 만든 것을 보면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더러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보면 수천, 수만의 장인이 한꺼번에 작품을 만든 셈이다. 이런 놀라운 일을 하신 것을 ‘지혜’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놀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지혜가 보인다. 이것을 사람들은 자연의 신비란다. 저절로((=자연) 이렇게 신비로운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더 믿기 어려운 믿음 아닌가? 아니면 무식한 건가?

20. 크고 넓은 바다에 대한 묘사가(25-26) 어떤 느낌을 주는가?

    놀이터? 정원의 호수? 고대인들에게 크고 넓은 바다는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의 세계였다. 멀리 나가면 폭포처럼 떨어진다고도 생각했다. 반면에 시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귀여운 세상일 뿐이라고 말한다(31-32 참조). 지금도 천둥소리를 들으면 무서운 사람이 적지 않다. 그냥 ‘하나님께서 만드신 건데?’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게 쉽지 않던데 바다에 전혀 익숙지 않았을 시인이 어떻게 바다를 이렇게 생각할까? 창조주를 믿는 믿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21. 하나님께서 지으신 땅과 바다를 보면서 시인은 공통으로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땅에도 바다에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로 가득하다(24-25). 그런데 이것들을 하나님께서 다 돌보신다(27-29): 각 생물마다 먹이나 거주지가 특정되어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작품이다. 저절로 그렇게 진화되었다고? 그렇게 믿는 것이 더 큰(?) 믿음이다.

22.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29) 이 표현을 신약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 참새 한 마리, 머리털 한 올까지도 다 기억하신다(눅 12:6-7).
    죽고(29) 태어나는(30) 문제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다.

23. 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관리하시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실까?

    즐겁기 때문이다: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창 1:21, 25, 31). 섭리하시면서도 당연히 즐거우실 것이다(31). 이것이 하나님이 안식이다. 그 하나님을 기억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나의 삶이라(34)고 고백하는 것이다.

24.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하기를 소망하며(31) 그 분을 찬양하는 것은 그 분의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분의 능력을 32절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쳐다보기만 해도 지진이 일어나고 손만 대도 화산이 터진다: 땅이 진동하는 것은 지진을, 산에서 연기가 나는 것은 화산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능력을 지닌 분 앞에 서면 나는 어떻게 될까? 위험천만? 그러나 시인은 대단한 능력을 지니신 그 분이(32) 내 기도를 들으신다고(34) 고백한다. 엄청난 괴력을 지닌 킹콩이 장난감같이 작고 약한 여자 주인공을 사랑했다고?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죽어버릴텐데? 이야기니까 가능하지 그게 가능할까? 사람이 하루살이를 돌보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런 이야기 같은 사랑이 실존하고 있다는 고백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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