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3편 |
나(1—5) → 이스라엘 자손(6-18) → 모든 피조물과 천사들(19-22): 송축의 대상은 하나님이신데 본 시편에서는 여호와란 명칭만 사용하고 있다. 이 이름은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다윗이 여호와를 송축하는 중요한 이유를 말없이 증언하는 셈이다. 일찍이 자신을 택하시고 온갖 어려움 가운데서도 자신을 지키시고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그 분의 신실하심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2. 내 속에 영혼 외에 또 무엇이 있는가(1)? 영혼의 동의어일 뿐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고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의 문학적 기술이다. 3. 송축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받은 은택(2)과, 받을 은택(3-5)이 있고, 인자하시기(8, 11) 때문이다. 단순한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절대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잘 안다는 고백이다. 4. 예수 믿는다는 것은 이 땅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을 각오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덕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인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그 과정에서 때로는 인간적인 어려움을 견뎌야 할 수도 있으나 결국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 분으로 말미암아 만족스럽게 사는 것이다(5). 무조건 이 땅의 모든 즐거움을 버리고 금욕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5.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신다는 말(6)이 무서운 말이 아닌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면 무서울 이유가 없다: 대적을 향하여 하는 말이다. 죄 없는 사람이 경찰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민간인은 헌병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지만 군인들은 헌병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무신경하다. 6.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모세를 통해서 계시하셨기 때문이다(7):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갈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그래서 자신을 계시하신 길(성경)을 따라 그 분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번역의 ‘행위’와 ‘행사’는 같은 말의 반복처럼 여겨지지만 원어상으로는 전혀 다르다. 영어는 주로 ways와 acts로 번역했다. 모세를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알리셨고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케 하셨다는 뜻이다. 7.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하더니 8-18절은 공의와 거리가 멀다. 누구에게 어떻게 대하시는가? 경외하는 자(이스라엘 자손)에게 인자로! 8.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8)을 4개의 단어로 정리해보자. 긍휼, 은혜, 인내, 인자: 이 네 가지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다 같은 것인데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날 뿐이다. 죄지은 자를 불쌍하게(긍휼)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되 바로 심판하지 않고(인내) 끝내 인자를 베푸신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은 고대 신들의 개념이나 권력자의 개념으로 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신이나 권력자의 성품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두려움으로 권위를 세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처음 만날 때는 무게를 잡으려고 하는데? 9. 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신다는 말(9)의 속뜻은 무엇일까? 빨리 회개해라: 노를 전혀 발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냥 침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가 노를 발하실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전에 돌이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무골호인이 아니시다. 10. 죄를 지은 그대로 갚으시지 않는(10) 이유가 무엇인가? 자식이기 때문(13): 인자하시기 때문이라는 대답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것 때문에 정확하다고 할 수 없다. 대적에게는 공의로, 자식에게는 인자로 대하신다. 불공평? 편애? 자식에게 그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자식이 되는(믿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우리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게 된다. 11. 하나님은 용서하시면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확실히 용서하신다. 그렇다고 무조건 용서하시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징계하실 때 사람들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신다(9): 잘못할 때마다 책망하거나 지난 일을 자주 되씹거나 끝까지 잊지 않는다면 자식을 망칠 가능성이 크다. 우리네 인생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다. 12. 하늘과 땅이 얼마나 멀고, 동이 서에서 얼마나 멀까? 붙어 있는 것 아닌가?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하늘이나 땅이나 그게 그거다. 지구 밖에서 본다면 지구의 동과 서도 그렇다. 이렇게 공간을 초월한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 동과 서의 가운데에 존재하는 인생의 관점에서 나온 표현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두 쌍의 존재는 도저히 합쳐질 수 없다. 다만, 오늘날 우리의 관점이 많이 확대된 탓에 질문처럼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13. 하나님께서 아시는 우리의 체질은 어떠한가? 우리는 먼지, 풀, 꽃이다(14-15):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무가치할 뿐 아니라 일시적이다. 여기서, 바람은 인생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였다. 바람이 지나가면 그 흔적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끼리야 잘 났다고 자랑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 서면 이런 존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 안다. 반면에 그의 인자하심과 의는 영원하다! 컴퓨터나 자동차가 아무리 놀랍다고 해도 만든 사람은 그 기능의 한계와 능력을 잘 아는 것처럼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서는 만드신 분이 잘 아는 것은 당연하다. 14. 영원하신 그 분이 곧 사라지고 말 인생에게 무슨 관심이 그렇게 많으실까? 사라져도 이 땅에서의 일일뿐,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존재로 거듭나게 하신다(17). 결과적으로 인생도 그렇게 허무한 존재가 아니다. 15. 하나님의 주권은 어디까지 미치는가? 하늘(19): 온 우주(=만유)뿐만 아니라 영계(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고대에는 천사숭배자들도 있었단다. 능력자에게 직접 나아가지 못하니 능력자의 하인에게 손을 내밀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능력자에게는 하인일지라도 연약한 백성에게는 쳐다보기도 어려운 권력자다. 그런 하늘의 능력자들(여호와의 천사들)이라도 여호와를 송축해야 한다(20-21). 하물며 이 땅의 무능한 자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21절의 ‘그의 뜻’을 NKJV은 ‘His pleasure’로 번역했다. ‘하나님의 뜻’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란 의미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