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0편


1.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적인 태도는 무엇인가? 왜 그런가?

    기쁨(1-2): 감사에서(4) 우러나오는 즐거운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을 섬긴다. 우리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이다(5).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이런 저런 시련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은 기쁨이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 중의 하나다.

2. 누가 여호와를 찬송해야 하는가?

    온 땅(1): 즉 온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 나아가 모든 피조물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당연하다. 인간들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만물이 신음하고 있지만 온전히 회복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롬 8:18-23).

3.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는 번역(1)은 조금 약해 보인다. 다른 역본들은 ‘환호하라’ ‘기뻐 외치라’ ‘Make a joyful shout’라는 식이다. 고대에 일반적으로 누구에게 어떨 때 이렇게 외쳤을까?

    승리하고 개선하는 왕을 맞이할 때: 하나님을 그렇게 맞으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예배할 때 찬송하는 정도의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약한 표현이다. 온 땅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환호하고 감격하여 외치라는 것이다. 2절의 ‘노래’도 마찬가지로 ‘환호’ ‘함성’으로 번역할 수 있다(표새).

4. 섬긴다는 표현은 노예가 주인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인데 ‘기쁨으로 섬기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주인을 잘 알아야 가능하다(3): 일반적인 주인은 강한 자로서 약자를 억압하고 학대하지만 성도가 섬기는 하나님은 선한 왕, 선한 목자이시며(3), 인자하시고, 성실하시기(5)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인정되는 영원한 종은 자원하는 종 밖에 없다(출 21:5-6, 신 15:16-17). 자원하지 않는 한 때가 되면 해방시켜야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면 영원히 그의 집에 거하기를 소원하게 된다(시 23:6).

5. 원문을 직역한 NKJV은 3절을 Know that the Lord, He is God라고 했다. 개역개정판과 비교하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우리’란 말이 없다: 원문은 여호와가 참 신이라는 점이 강조된 반면에 개역개정은 하나님과 친밀함이 강조되었다. 원문과 다소 거리가 있다.

6. 하나님의 문,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는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본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인생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던 길동이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준 것만 해도 엄청난 은혜던데?

7. 선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이 인자(헤세드)와 성실(에무나)이다.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인자는 언약에 기초한 변함없는 사랑이다. 한번 맺은 언약을 결코 취소하거나 변경하시지 않는다. 징계를 하실지언정 버리시지는 않는다. 성실(에무나)은 신뢰해도 될만큼 진실하고 신실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성실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그들을 돌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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