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4편


1. 이스라엘의 악한 자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악인들과 비교해서 그래도 나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7):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를 할망정 계시다는 것은 인정하는 셈이니 그래도 좀 나은 것 아닌가? 이렇게 오해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온갖 악이 만연하는 것은 아예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부모 없이 자라서 제 멋대로 행동하는 아이처럼!

2. 복수하는 것과 빛을 비추는 것이 어떻게 동일한 의미가 될까?

    악인을 심판하는 것이 곧 어둠을 물리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수한다는 것은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이고 빛을 비추는 것은 악인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세상을 바로 잡는 것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기고만장함을 빨리 끝내달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복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신 32:35).

3. 악의의 개가를 듣는 것은 힘 드는 일이다. 심지어 실족할 위험도 있다(73편). 이걸 어떻게 견디지?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1-2) 때를 기다린다: 스스로 능력이 있어서 악인들을 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성도의 바른 자세다. 악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자세를 오히려 조롱하기도 한다.

4. 악인들의 행위를 뜻하는 말 ‘개가, 마구 지껄임, 오만하게 떠듦, 자만(=자기 자랑)’(3-4)에서서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말로 하는 것: 악인들의 악한 행동도 문제겠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더 문제다(7절도). 악한 행동은 일시적이거나 실수로 인한 것일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마음속까지 악하다는 증거다.

5. 악한 자들이 짓밟는 주의 백성은 곧 주의 소유인데 왜 하필이면 그 중에서도 과부와 나그네와 고아들을 죽일까? 부자나 권력자를 털어야 나올 게 많을텐데?

    악을 행하는 자들이 부자요 권력자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외부의 적이었다면 부자나 권력자의 것을 빼앗았을 것이다. 가난하고 힘 없는 자들을 죽이고 빼앗는 짓은 백성의 악한 지도자들이 하는 짓이다. 주인을 우습게 여기니 주인의 소유를 마음대로 다루는 것이다.

6. 주의 백성을 짓밟는 자들은(5) 권력자인 것이 틀림없는데 8절에서는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스스로 백성들보다는 구별된 존재라고 여긴 것에 대한 비난: 백성들과는 다르다고 여기는 교만에 대해서 백성들 중에서도 어리석고 무지하다는 것이다. 이들을 향해서 ‘생각하라’는 것은 이들이 생각이 없는 짐승이라고 하는 셈이다.

7. 악인들이 여호와가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것에(7) 대하여 시인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나님은 듣고 보실 뿐만 아니라(9) 생각까지 아신다(11).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과 귀를 만드셨다는 것을 아는 자들에게는 이런 권면이 효력이 있을 것이다. 아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인간들은 어이할꼬?

8. 하나님은 왜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가(10)?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수단일 뿐이다(10, 12). 징벌하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교훈하시는 것이 목표다. 다만,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징벌하시는 분으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

9. 사람의 생각이 정말 허무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생각을 하나님께서 왜 주셨을까?

    악한 자들의 악한 생각을 의미하는 것: ‘생각’이라고 번역된 단어(하솨브)가 음모나 계교를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생각은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니다.

10. 징벌을 받는 것이 어떻게 복이 되는가(12)?

    징벌의 이유가 주의 법으로 교훈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징벌을 통해서 주의 교훈을 받는 것은 결국은 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11. 의인들이라도 환난의 날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악인들이 다 사라져야 평안을 누리는가?

    그 전에도 평안을 주신다: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라는 말은(계 20:1-3) ‘악인을 제하기 전에도’ 라는 뜻이다. 환난을 피하게도 하시지만 환난 가운데서도 평안을 허락하실 것이다.

12.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파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은 어떻게 하시는가?

    버리지도 외면하시지도 않는다(14): 버리신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외면하시는 듯 한 때도 있지만 그것이 징계일 수도 있고, 교훈일 수는 있으나 절대로 버리시지는 않는다.

13. 의로운 심판에 순종하는 세상이 곧 올 것이란다(15). 지금은 어떠하길래?

    악한 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3-6, 20): ‘심판이 의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은 지금은 타락한 지도자들에 의해 판결이 의롭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이루어질 날을 기대하는 것이다.

14. ‘누가 나를 위하여...?’ 라는 말은 나를 위하여 일을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탄식이다. 정말 의로운 백성을 위하여 일할 사람이 이 땅에는 아무도 없는가?

    자신의 고난을 해결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의 반영 아닐까?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 외에 어느 누구도 의지할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 외에는 자신을 도와줄 자가 없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도움이라고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치셨을 것이다(17).

15. 시인은 행악자들로 인하여 발이 미끄러질뻔 하였고 근심이 많았다(18-19). 어떻게 이런 위험에서 벗어났는가?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위안으로: ‘인자’는 언약에 기초한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인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위로를 주셨다는 고백이다.

16. 악한 재판장은 법을 잘 아는 사람이다. 알아서 어떻게 하는가?

    법대로 하지 않고 법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뿐이다(20).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법 위에 서서 법을 입맛대로 요리한다. 가장 악한 짓이다.

17. 악한 재판장 하나도 견디기 어려운데 이들은 서로 모여 작당을 하는 모양이다(21). 이들의 압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시인의 능력으로는 방법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다. 독재 정권에 항거한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 보기에는 참으로 나약해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악인들이 득세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확신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 전제 위에서 악한 권력에 저항하는(롬 13:4의 역)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18. 하나님의 징계 방식 중에는 ‘행한대로’(롬 2:6, 계 20:13) 혹은 ‘들린대로’(민 14:28) 라는 원칙이 있다. 악한 재판장들을 징계하시는 모습에서 그런 점을 찾아보자.

    되돌리시며(23): 하나님께서 친히 재판장이 되셔서 이들에게 선고를 내리실 것이다. 23절의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라는 표현이 그런 느낌을 준다. 이 시편이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묘사하고 있으므로(2, 15) 그런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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