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0편


90-106편(합계 17편)은 시편 제 4권으로 분류된다. 대체로 ‘유한하고 연약한 인생에게 여호와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사’라는 내용이다.

1. 시편의 저자는 다윗, 솔로몬, 고라, 아삽 등이다. 그런데 모세도 한 편을 남겼다. 그렇다면 시편과 관련된 퀴즈용 문제를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직설적으로 ‘모세가 지은 시편은 몇 편인가?’라고 묻기보다는 어떻게 묻는 것이 좋을까?

    ‘가장 오래 된 시편은 몇 편일까?’ 힌트는 ‘저자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모세가 지은 90편이 가장 오랜 것이다.

2. 1-2절은 하나님에 대해서, 3-11절은 인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 인생은 일시적인 존재: 인생은 티끌(3), 찰나의 삶(4), 홍수에 휩쓸린 것, 잠깐 자는 것, 아침에 돋는 풀과 같은 존재다. 영원에 비하면 아예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0/∞).

3. 하나님을 피난처, 요새라고는 해도 아예 거처라고 한 경우는 별로 없다. 하나님을 어떻게 거처(거할 곳)라고 했을까?(1)

    안전하게 거할 곳이라는 점에서 피난처나 거처는 같은 말이다. 신약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주 안에서’ 라는 말이다. 주님 안에서만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고백이다.

4. 어떤 이는 자연만물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기도 한다. 그것도 지혜로운 일이긴 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이유가 무엇인가?

    창조세계조차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의 극히 적은 일부이기 때문이다(2).

5. 하루살이와 80년을 사는 인생은 친구가 될 수 없다. 이보다 더 큰 간격은 누구와 누구 사이에 있는가?

    티끌인 우리 인생(3)과 영원하신 하나님(2): 이런 간격에도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6. 영원하신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왜 하필이면 천년인가, 만년이나 천만년이라고 하지 않고?

    조상들의 수명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최대한 오래 살아도 천년을 넘기지 못했으니 인생에게 가장 긴 시간이 천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천년이 하나님에게는 밤의 한 순간이었을 뿐이다. 시간이란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것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7. 하나님께서 사람을 홍수처럼 쓸어간다고?

    홍수 앞에 무력한 인생의 모습을 말하는 것뿐이다. 잠깐 자는 것이나 아침에 돋는 풀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8. 우리의 죄에 대하여 주께서 노하시면 어떻게 되나?

    홍수에 휩쓸린 인생이요, 일장춘몽이요, 풀의 꽃이다: 순식간에 사라질 뿐이다(9, 10).

9. 인생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면서 모세는 얼마나 살았는가?

    120: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는 나이까지 살았지만 몸이 쇠하지도 않았다. 그것도 조상들의 연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조상들의 연수보다 더 긴 것은 산, 땅과 세계이지만(2) 그것들조차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10. 이렇게 허무한 인생을 노래한 모세는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의 사람(1): 하나님과 유난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모세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우리 인생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해야한다는 것이다.

11.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노여워하시는가?(11)

    특별한 징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에덴 동산에 추방된 인생의 슬픔을 말하는 것이다.

12. 날을 계수할 줄 아는 것이 지혜다. 인생의 날을 계수해보면 무엇을 알게 되는가?

    빠르게 날아감(4-6, 9, 10): 인생이 너무나 짧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역으로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이 지혜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13. 13-17절의 핵심은 ‘속히 돌아오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디 가셨기에? 혹은 모세는 어떤 상황 속에 있었기에 이런 기도를 드릴까?

    하나님께서 인생들과 함께 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지리적인 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함께 하시며 인도해달라는 것이다. 모세의 인도 하에 있던 백성들이지만 하나님께 이런 저런 징계도 많이 받았다. 하나님께서 ‘함께 가지 않겠다’고도 하셨다. 이런 일이 당대의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문제임을 깨달은 것이다.

14. 풀의 꽃과 같이 허무한 인생이지만 즐겁고 기쁜 인생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주의 인자하심을 덧입는 것이다(14). 주의 인자하심이 주로 아침에 임하였던 모양이다(출 7:15, 9:13).

15.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는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의 모든 날(10): 우리 인생 자체가 수고와 슬픔 뿐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연수대로 기쁘게 해달라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인생으로 바꾸어 달라는 것이다. 구원 요청에 다름 아니다.

16. ‘주께서 행하신 일’이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에서 하신 일을 가리킨다. 이미 지난 일을 어떻게 나타내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보여달라는 것: 출애굽이 모형이라면 진짜 구원을 이루어달라는 의미가 된다. 애굽에서 탈출하듯이 죄악에서 탈출하여 대대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17. 17절의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은 원어상 시제가 없는 ‘우리 손의 일’이다(the work of our hands). 본문의 시제가 미래형이므로 미래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러면 모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가나안 점령: 실제로 이 땅에서 모세에게 남겨진 일이란 가나안을 점령하는 것 뿐이었다. 그 일을 분명하게 이루어달라는 간구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의 모형이라고 본다면 모세는 출애굽의 험난한 여정을 소재로 인간의 본질적 한계를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할 인생여정을 노래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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