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시편은 두 단락으로 나누는 것이 좋을까, 세 단락으로 나누는 것이 좋을까?
2. 새삼스럽게 하나님이 알려지셨다니(1)? 그 동안 몰랐다는 얘기일 수는 없는데?
3. 위대하신 그 분(1)이 살렘, 즉 시온에 계시다(2)는 것이 왜 감격스러운가?
4. 3절의 화살은 원어상으론 불화살이다. 적이 포위하고 있는 상태에서 예상되는 적의 불화살, 칼이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을까?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산산조각이 나도록 부숴버렸다. 앗수르의 위협이 제거 되고난 뒤의 고백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오늘 우리는 이런 염려가 전혀 없는가?
5. 하나님께서 영화롭고 존귀하신 것이 하필이면 약탈한 산에서? ‘산에서’라는 말은 ‘산보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산보다 더 영화롭고 위대하다는 말이 되는데 무슨 산보다 더 그러할까?
6. 대적이 아무리 강하고, 장사라고 한들 하나님 앞에서는 잠자는 자일 수밖에 없다. 잠 자는 자의 특징은 무엇인가(다른 역본 참조할 것)?
7. 경외 받을 분이시라는 것(7)은 두려운 분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두려우면 어떻게 가까이 할 수 있을까?
8. 하늘과 땅은 어떤 관계인가(8)?
9. 하나님께서 일어서시면 잠자는 자처럼 된다더니(5) 여기서는 왜 잠잠하였다고 할까(8)?
10. 결국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사람의 노여움’이란 무엇일까?
11. 대적으로부터 놀라운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당연히 감사해야한다. 누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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