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5편


1. 이스라엘이 어떤 어려움에 처했기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좋아할까?

    아마도 외적의 침입 아닐까? 아삽은 다윗과 동시대의 사람이다. 그러나 다윗의 시대에는 특별한 외적의 침입은 없었다. 시편의 저자 아삽은 그의 후손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훗날 히스기야 시대에 산헤립의 침공으로 고난을 당하던 때일 수도 있을 것이다.

2. 이름이 가깝다는 것은 이름에 걸맞은 일을 곧 하실 것이라는 고백이다. 주의 이름이 어떠하길래 그럴까?

    전능하신 자이기 때문: 여기서 ‘하나님’이라고 불린 이름은 ‘엘로힘’으로 전능하신 분이라는 의미다. 전능하신 분이 그 이름에 걸맞은 일을 하실 것이기에 감사하고 감사한다는 고백이다. 현실은 극도로 암담하지만 하나님께서 일어서는 순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산헤립의 군대가 하룻밤에 전멸한 사건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3. 전파하는 ‘주의 기이한 일들’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심판: 대적에 대한 심판은 자신들에게는 구원이다.

4.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 부분은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2-5절(NKJV, NIV): 한글 개역은 약간 헷갈릴 소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 2-3절의 ‘주의 말씀이... 하시도다’ 속에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4절의 ‘내가’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3절 끝의 ‘하시도다’는 5절 끝에 두어야 옳다.

5. 우리는 급할 때가 많다. 기도하면 바로 무슨 조치를 취해 주시면 좋은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 하실까?

    정한 때가 있다(2): 우리가 방방 거린다고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적합한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믿는다.

6. 3절을 다른 역본들과 비교해보자.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가?

    두 문장의 순서가 다르다: 대부분의 역본(한글과 영역본)이 개역과 역순이다. 개역이 원문의 순서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양쪽으로 번역이 가능하지만 원문의 순서는 그대로 따르는 것이 좋을텐데...

7. 인생이 까불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높이거나 낮추는 것이 하나님의 소관이기 때문(7): 잘난 사람이 거드름 좀 피우는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노하시는 걸까? 여기서 오만은 하나님을 향해서 오만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면서 자신이 하나님인양 떠드는 행위를 가리킨다(가령, 왕하 18:25의 산헤립).

8. 동쪽, 서쪽, 남쪽에 무엇이 있길래 그것이 높이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가?

    자연(=무의식, 무의지): 동, 서, 남쪽으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것은 저절로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연의 신비라고 말할 때 자연은 그야말로 조물주를 대치하는 말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쓰는, 실체가 없는 말이기도 하다. 동쪽은 해 뜨는 곳이며, 서쪽은 해가 지는 곳으로 온 세상을 가리킨다. 특히 이스라엘의 남쪽(미드바르)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란 뜻이기도 하다. 왜 북쪽이 없는가? 아마도 산헤립이 침공해온 지역이라서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 아닐까?

9. 8절 전체를 요약하면 여호와께서 무엇을 들고 계시는가?

    임박하고 독한 진노의 잔: 거품은 끓어오르듯이 넘친다는 의미다. 섞은 것이 많다는 것은 도수를 높이기 위해서 특별히 재료를 넣었다.

10. 찌꺼기를 왜 기울여 마실까?

    술잔에 남은 마지막 앙금까지 털어 마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조금도 거부 되거나 감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11.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왜 하필이면 야곱의 하나님일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장 많이 받은 조상이 야곱이라고 여기는 탓이다: 스스로 고백하듯이 험악한 세월(창 47:9)을 살았지만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처럼 비록 이스라엘이 고난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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