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1편


1. 이 시편에는 표제가 없다. 그래서 저자가 예레미야라고 하는 의견도 있으나 전후의 배치나 내용상으로도 다윗이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각설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시편이 적지 않다. 다윗을 괴롭히는 자들이 왜 이렇게 많나?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이 짧지 않았고 노년에는 압살롬과 아도니야의 반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 몇 년 다녀온 것만으로도 평생 얘깃거리가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다윗도 아픈 기억이 비교적 많은 셈이라고 하겠다.

2.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1)은 건지는 것, 풀어주시는 것, 구원하시는 것(2)이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상황은 어떤 경우인가?

    대적에게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아마도 반역을 일으킨 무리에게 사로잡힐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간구일 것이다.

3. 의로 건지시라고(2)? 자신을 구원하시는 방법이 왜 의인가?

    자신이 의롭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대적자들과 비교해서(4) 그렇다는 말이다. 까닭 없이 미워하는(69:4) 핍박에서 구원해달라는 말과 같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다.

4. 하나님을 바위, 반석, 요새(=산성)라고 하는 것은 다윗의 어떤 경험과 관련이 있는가?

    그리로 피하였던 경험: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에 자신의 안전을 보장 받았던 곳이었다. 사람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정도나 방식이 자신의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자신의 체험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계시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5. 1절과 4절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같은 점은 구원해 달라는 것이며 다른 점은 1절은 구원자를 향한 요청이고, 4절은 박해자로 부터의 구원 요청이다. 1절이 목적지라면(to the Lord) 4절은 출발지다(from the wicked).

6. 하나님께서 시인을 구원하실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를 5-6절에서 찾아보자.

    친밀한 관계 때문: 하나님을 주라고 하면(5) 자신은 종일 수밖에 없지만 단순한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긴밀한, 오랫동안 신뢰해온 관계라는 것이다. 과거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간구하는 것이다. 친구도 어릴 적부터 관계를 이어온 친구는 친구 중에서도 특별한 친구 아닌가!

7. 시인이 어릴 적부터 하나님과 서로 신뢰하는 사이가 된 것은 누구 탓인가?

    하나님의 선택에 따른 것(6): 6절 전반부의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개정)를 개역에서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라고 번역했었다. 양쪽이 다 가능한 번역이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신뢰하였다(5)고 말할 수는 있어도 모태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였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 같아 보인다.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감사를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8. 다윗을 핍박하는 무리들은 다윗을 이상한 존재로 여겼단다. 다윗을 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누가 있는가?

    시므이(삼하 6:5-8): 물론 시므이의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스스로 고백하게 되지만 사람은 자기의 이권에 따라 이렇게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잘 보여준다. 동일한 인물이나 현상에 대해서 사람마다 생각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7) 쉬운 일이 아니다.

9. ‘늙을 때’란 미래의 일일까?

    현재의 일이다. 시인이 이런 아픔을 당한 것이 노년이었다는 의미다. 노년에다 힘마저 쇠약한 형편이오니 하나님께서 꼭 도와주셔야 한다는 뜻이다. 쇠약한 이유는 이어지는 원수들, 영혼을 엿보는 자들 때문이니(10-11) 반드시 육체의 쇠약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0. 원수들이 뭘 보고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고 말할까?

    자기들이 시인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악한 자들은 악한 탓에 그렇다 치지만 부주의하거나 무식해서 그러는 경우도 적지 않다.

11.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원수들과 나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원수들에게는 수치와 멸망, 욕과 수욕이 덮이고(13) 나에게는 소망과 찬송이 넘친다(14). 찬송의 핵심은 주의 공의와 구원이다(15-16).

12. 18절에서 ‘늙어 백발이 될 때’는 미래일까?

    미래다: 앞에서 늙을 때(9)는 현재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여기서는 장래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이다. 과거의 체험에 근거를 두고 이렇게 확신을 하는 것은 동일하다.

13. 의롭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19) 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실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시 살리시고, 다시 이끌어 올리시는 것’이다(20). 여러 가지 고난이 닥친 것은 불합리한 이 땅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아담 이후 범죄하고 내어쫓긴 땅이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14. 21절에 사용된 ‘창대’란 말은 하나님의 사역이나 왕의 일과 관련되어 사용된다(삼하 7:21, 23의 ‘큰 일’, 대상 29:11의 ‘광대하심’, 에 1:4의 ‘위엄’, 6:3의 ‘관직’, 10:2의 ‘존귀’). 다른 곳에서 사용된 ‘창대’와(창 12:2, 레 26:9...) 원문상으로는 다르다. 그래서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라’는 말은 왕의 위엄을 되찾게 해달라는 의미가 된다. 이게 뭐 그렇게 중요할까?

    이 시편의 저자가 왕(다윗)이라는 것을 추측케 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다윗이 즐겨 쓰던 문구나(나의 반석, 나의 산성, 나의 원수, 속히 도우소서), 다윗이 다루던 악기(22)가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노년에 어려움을 겪은 것과 부합되는 점도 그렇다.

15. 고난 가운데서 울부짖던 시인이 회복되면 무슨 일을 가장 많이 하겠다고 하는가?

    찬양(22절×3, 23절×2, 24절×1):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23). 무슨 제사나 일을 하는 것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선이요, 전제조건이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문).

16. 찬양을 하려면 큰 소리로 해야지 왜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

    작은 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의미를 깊이 묵상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흥분해서 의미도 모른 채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깊이 새기며 온 종일 찬양하겠다는 의미다.

17. 시인의 대적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짓을 했는가?

    모해(13, 24):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대적자들의 행위보다 자신을 구원하실 하나님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대적자들의 행위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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