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8편


1. 이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말도 안 되는 듯한 표현을 찾아보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19): 주인이 종을 위하여 짐을 져주는 법이 있는가? 절대로 없다. 하나님만 그렇다. 이게 얼마만한 감격일까?

2.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을 두 종류로 구분해보자(1-6).

    망해야 할 인간(1-4)과 형통케 될 인간(5-6):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 마느냐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 우리 인생이다. 어중간한 상태는 없다. 연옥도 없다. 양다리도 불가하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만이 살 길이다.

3. 악인의 모습과 의인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가?

    악인은 연기나 불 앞의 밀 같고(2), 의인은 기뻐하고 즐거워함(3-4): 연기나 밀(초)은 위세를 발할 때는 대단한 존재 같아 보이지만 사라질 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반면에 성도의 본질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힘든 세상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성도의 삶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4.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1년간 머무르면서 행진을 위한 준비를 끝내고 가나안 땅으로 출발했다. 하나님의 궤가 사흘 길을 앞서 가면서 길을 찾았다. 궤가 떠날 때 모세가 부른 찬송이 1절이다(민 10:35). 그렇다면 1절에는 성도의 어떤 고백이 담겨있는가?

    하나님만 따라 가겠다는 고백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가시적인 하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이끌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대적과 싸우겠다는 고백을 하는 셈이다.

5. 하나님은 이상한 분이시다. 하늘을 타시는 분이 왜 광야에 행하시며 대로가 필요한가(4)?

    하늘을 타신다는 표현은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란 의미다. 이런 분이 광야의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광야로 오셔서 길을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생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그래서 고아의 아버지가 되시고 과부의 재판장이 되셨다(5절을 ‘거룩한 처소로부터’ 로 번역할 수 있음).

6.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다음 자연법칙을 따라 운행하도록 버려두셨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자연은 위대하다고 외친다.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도 계시지만 또 어디에 계시는가?

    고아와 과부의 처소에도 계시고(5), 고독한 자들과 갇힌 자들의 처소에도(6) 계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직접 나타나실 수 없어서 숨어 계실 뿐(사 45:15), 결코 멀리 계시는 분은 아니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약 1:27).

7. 악인은 망하고 의인은 흥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스라엘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잊을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은 무엇인가?

    출애굽 사건(7-8)과 가나안의 승리(11-18): 출애굽을 간단하게,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7, 출 13:21-22)과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현현(8, 출 1:16-25)으로 묘사하고 있다. 훗날 하나님의 은혜를 회고할 때 이 장면은 또 되풀이 된다(삿 5:4-5). 가나안 땅에서 주신 승리의 대표적인 경우로 드보라의 노래를 인용하고 있다.

8. 9-10절은 광야의 일일까, 가나안에서의 일일까?

    양쪽을 다 포함하는 것으로 보면 어떨까? 하나님께서 흡족하게 주신 비를 비유로 본다면 양쪽이 다 가능하고 사실로만 본다면 가나안에서 주신 은혜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두 가지 사건 사이에 끼여 있으니 양쪽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보면 광야에서 주신 풍성한 은혜를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표현한 셈이다.

9. 11-18절은 가나안에서의 승리를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면 11절의 소식을 공포(선포)하는 여자들이 누구지?

    드보라와 바락이 승리했을 때 노래를 부른 여자들(삿 5:1-3): 사사 시대의 승리를 노래한 대표적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식이란 승리의 소식을 의미한다. 홍해를 건넜을 때 미리암의 인도로 찬양했고(출 15:20),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쳤을 때에도(삼상 18:7) 여인들이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10. 전쟁에서 탈취물(전리품)은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나누는 법이다. 그런데 왜 집에 있던 여자들이 탈취물을 나누는가(12)?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큰 승리를 거뒀다는 표현이다.

11. 승리한 이스라엘은 무엇과 같은가?

    은 날개와 황금 깃을 가진 비둘기: 화려하고 찬란할 뿐만 아니라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게 휘황찬란한 비둘기와 양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다(13). 갑자기 너무 큰 성공을 거두어 자신의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12. 힘 없이 사라지는 것을 가리켜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하는데(욥 21:18, 시 1:4, 83:13, 단 2:35...)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물리치신 대적이 무엇과 같은가?

    살몬에 날리는 눈과 같다(14): 높은 산비탈에 쌓인 눈이 바람에 날리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흩날리다가 때로는 눈사태가 되어 쏟아지기도 한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나 꽃잎은 운치라도 있지만!

13. 하나님은 어느 산에 계시는가? 바산(16)? 성경에 그런 말씀은 없었는데?

    하나님은 산에 계시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 말하라면 시온산이겠지만(16절의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 그것도 산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전이라는 의미다(17절의 ‘시내 산’과 ‘성소’는 동격이 아니라 단순한 병렬일 수도 있다. 영역본 참조). 로마 그리스 신화에는 신들의 처소가 주로 산이다. 높은 산의 웅장한 모습이 신의 성품과 닮았다고 생각한 탓일까? 바산의 산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산이라고 불릴만큼 높은(장엄한) 산이라는 의미다. 15절의 원문을 직역하면 ‘여호와의 산 바산의 산, 높은 산 바산의 산이다.

    참고로, 바산은 요단 동편의 산악지대다. 북쪽은 헤르몬 산, 서쪽은 갈릴리 바다와 상 요단 강, 남쪽은 야르묵 강, 동쪽은 야울란 산으로 경계되는 광대한 지역을 가리킨다. 남부는 비옥한 평원으로서 목초가 풍부하고, 물도 넉넉하여 가축을 치는데 아주 좋은 목초지였다(신 32:14, 암 4:1, 미 7:14, 렘 50:19, 겔 39:18, 시22:12).

14. 16절의 ‘높은 산들’이란 바산의 높은 봉우리들을 가리킨다. 이 산들이 어느 산을 시기하는가?

    하나님께서 계시려 하는 산은 시온 산을 가리킨다: 그래서 15절의 바산의 산을 하나님의 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산이라 불릴만한 산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시온 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주변에 더 높은 봉우리가 많다. 그렇게 장엄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계시기에 더 높은 산들이 시기한다고 하는 것이다. 잘 나가는 이방의 왕들보다 초라하더라도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유다의 왕이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15. 18절은 일종의 개선행진이다. 승리한 군대가 개선할 때 포로들을 끌고 왔다. 높은 곳이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시온 산을 가리킨다. 시온 산이 그리 높지 않은데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반역자들로부터도 선물을 받으신다는 것은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각설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선행진은 무엇일까? (힌트, 관주를 잘 살펴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이 구절이 엡 4:8에 인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예표라는 것이다.

16. 사람이 과거만 파먹고 살 수는 없다. 과거의 승리와 찬송에 대한 기억(11-18)이 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19-23)?

    미래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 어느 전쟁인지는 확실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은 분명하다. 이제는 미래를 향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승리를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다(19-23).

17. 종을 위하여 주인이 짐을 지는 법은 없다. 종은 사람으로 취급도 않던 시절에 이런 주인은 그야말로 사랑이 넘치는 주인이다. 그러고 보니 성경에 비슷한 예가 더러 보이는데 어떤 경우인가?

    마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8:5-13, 눅 7:1-10)예수님께 엄청난 칭찬을 들은 백부장:

18. 구원은 사망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20). 다른 의미는 더 없을까(19)?

    짐을 대신 져 주는 것: 원어상 구원이란 단어는 ‘도움’ ‘승리’ ‘번영’ ‘건강’ 등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짐을 대신 져주신다는 의미는 죽음에서 건져낼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도우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19.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면 원수의 머리를 깨뜨리실 것이다. 철저하게 심판하신다는 의미다. 그 전에 원수들이 도망가서 숨어버리면 어떡하지?

    반드시 찾아내신다(22): 험악한 산맥 바산이나, 바다 깊은 곳에 숨더라도(22) 스스로 기어나오게 해서 심판하신다.

20. 하나님의 심판 날에 누가 호강을 하는가?

    개(23): 개마저 분깃을 얻는다. 앞에서는 여자들이 얻었는데(12).

21. 하나님께서 성소로 행차하신다고? 다윗이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로 행차하신다’고 소리를 높이는 경우는 어떤 때일까?

    아마도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오던 때일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을 이 시의 배경으로 보기도 한다.

22. 이스라엘의 근원이란 누구일까?

    야곱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다: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름도 이름이지만 모든 자녀들이 상속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시작은 야곱부터라고 보아야 한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선택과 무한한 복을 받았다.

23. 언약궤를 옮기는 행사에 12지파가 아니라 4지파만 등장하는 셈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 지파들이 차지한 땅이 어디인지 확인해보자.

    베냐민과 유다는 제일 남쪽, 스불론과 납달리는 제일 북쪽이다. 그렇다면 양 끝에 있는 지파를 전체의 대표로 내세운 셈이다. 다만, 유다의 경우에만 ‘그들의 무리’란 말이 있어서 이 행사의 주도적인 역할이 유다지파였음을 드러낸다. ‘주관하는 작은 베냐민’이란 초대 왕 사울을 기억하는 것과 작은 지파이었음을 감안한 표현으로 보인다.

24. 다윗은 성소의 하나님을 찬양한다(24-28). 결론은 무엇인가(28)?

    예전처럼 능력을 보여주십시오.

25. 하나님은 성소의 하나님(24-28)만이 아니라, 어떤 하나님이신가(29-31)?

    열방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신 것은 그들만을 위함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과정일 뿐이다. 장차 모든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계 11:15). 열방을 세 종류의 짐승으로 표현한다. 갈밭의 들짐승은 애굽의 나일강변의 야생동물로 제일 사나운 무리를 가리키고, 그 다음은 수소, 제일 약한 것이 송아지다. 30절의 ‘은 조각’은 29절의 주께 드리는 ‘예물’의 낮춤말이다. 모든 열방들, 대적하는 무리들을 제압하는 의미에 포함된 말이다. 그 결과로 애굽인, 구스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나올 것이며, 손을 들 것이다.

26.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고 회상하며, 또 장차 하실 일을 기대하는 사람의 최종 결론은 무엇인가?

    열방을 향하여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고 선포하게 된다(32): 성도가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최종적인 것은 감사 찬송이다. 여기에 땅의 왕국들이 동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특히 32절의 ‘찬송’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자마르)다. 온 세상이 악기를 동원하고 목소리를 높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을 염두에 두고 있는 셈이다.

27. 하나님은 얼마나 능력이 있으신가?

    하늘의 하늘을 타셨을 정도로: 끝도 없는 하늘을 타셨다는 것은 하늘을 마음대로 주관하신다는 의미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의미다. 한 발짝도 뛰어오르지 못하는 인생에게 하늘을 타고 천둥 소리를 내시는 분은 얼마나 위엄 있는 분이신가!

28. 찬송해야 할 이유는 단순히 그 분이 위엄에 찬 분이시기 때문이 아니다. 능력과 위엄을 갖추신 분을 찬송해야 할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기 때문이다(34-35). 온 세상을 품으신 하나님께서 낮고 천한 자리에 성소를 마련하라고 하셨고 거기에 찾아오셔서 머무르시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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