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6편


1. 하나님께 즐거이 찬양해야 할(1-4) 이유(5-12)가 무엇인가?

    구원(5-7), 연단(9-12b), 회복(12c): 구체적으로는 어떤 사건과 관련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공동체 전체의 구원 다음에 개인적인 체험이 따라 나오는 것으로 보아 민족의 지도자가 민족 전체의 구원을 노래한 것으로 본다면, 출애굽 사건이나 앗수르의 침입을 물리친 히스기야 때의 사건일 수도 있을 것이다.

2. 무엇이라고 찬송해야 하는가(2-4)?

    하나님은 영광스럽고, 엄위하(놀라우)시므로 온 땅이 경배함이 마땅하다(2-4의 요약): 이름은 그 분의 존재뿐만 아니라 모든 속성을 의미하므로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라는 것은 그 분의 영광스러움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으므로 경배함이 마땅하다는 것이 찬양의 내용이어야 한다. 이런 찬송을 우리는 영광송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찬송 중에는 다른 류의 찬송도 많다.

3.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신 것을 어떻게 ‘와서 보라’고 하는가? 홍해가 합쳐진지가, 요단강이 다시 흐른지가 언젠데?

    비유다: 홍해와 요단강을 걸어서 건넌 사건은 한 번 있었던 일이지만 그 후에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이렇게 표현해도 잘못이 아니다. 찬양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일을 구체적인 예, 혹은 표본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확실한 체험을 한 사람이 ‘와 보라’고 하는 것이다(요 1:46).

4. 이스라엘이 홍해나 요단강을 건널 때 무얼 밟고 지나갔을까? 육지?

    마른 땅(출 14:21, 수 3:17): 단순하게 바다나 강을 가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쉽게 건널 수 있도록 마른 땅에 되게 하셨다. 은혜를 베푸시되 풍성하게 베푸셨다는 고백이 담긴 번역이다. 현장에서 그런 표현을 썼으니 여기서도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나을텐데...

5. 바다가 변하여 육지가 되었는데 왜 강을 건너지?

    번역상의 문제다: 6절은 상호 연관이 없는 세 개의 문장으로 번역되어야 한다(원문에 접속사가 없다). 영역본들은 그렇게 번역했다. [NKJV]He turned the sea into dry land: They went through the river on foot. There we will rejoice in Him. 한글 역본은 상호관련 지어서 번역하다보니 어색하거나(개역) 하나의 사건으로(표새, 공동) 취급해버렸다(해석상의 문제).

6. 홍해와 요단강을 걸어서 건넌 사람들은 수 백년 전의 조상들이다. 우리가 언제 거기서 기뻐하였는가(6)?

    수 백년 전 조상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우리의 것이라는 고백이다. 달리 말하면 그 조상들과 우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시공간, 인종, 빈부귀천을 초월하여 하나다.

7. 조상들에게 능력을 보이신 그 하나님을 오늘도 거역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전히 동일한 능력으로 살피시기 때문이다(7):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실 것이니 거역하지도 교만하지도 말자. 하나님을 알면 그럴 수밖에 없다.

8.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단련하셨는데(10) 왜 만민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8)?

    우리에게 행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만이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인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9. 실족케 하지 않으셨다는 말은 실족할만한 위험을 겪었다는 의미다. 시인은 자신이 겪은 시련을 어떤 비유로 표현하는가?

    제련(10, 사냥감(11), 노예(11), 패전(12): 머리를 타넘고 지나갔다는 것은 패전을 했거나 폭군의 압제 아래 있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허리에 맨 것도 정상적인 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달리 표현하면 불과 물이다(12). 치명적인 위험을 통과하게 하셨다(사 43:2)는 고백이다.

10. 연단과 시련의 결과는 무엇인가?

    풍성한 은혜: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이런 저런 잔소리도 하고 어려운 일도 시키겠지만 결국은 자식이 잘 되라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식 백성을 징계하시더라도 결국은 잘 되게 하신다(신 8:2, 3 → 16, 시 23:5, 롬 8:28).

11. 민족의 구원을 노래하더니 갑자기 왜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가?

    (고대에) 민족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왕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고대 왕국에서 왕의 개인사라면 민족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12.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성도의 반응 두 가지는 무엇인가?

    하나님께 감사(13-15),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에게 선포(16-20):

13. 강청하는 기도란 말이 있다. 떼를 쓰듯이 매달리면 어떤 기도라도 다 들어주실까?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18): 열심히 기도하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이다. 죄악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들이시겠는가? ‘너희는 먼저...’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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