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5편


1. 구원자 하나님을 향하여 성도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1-5절에서 찾아보자.

    찬송, 서원이행, 기도, 용서구함, 하나님께 나아감, 만족함: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것이 마음이다. 그것도 만족한 마음! 하나님을 만족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섬기는, 믿는) 일이다.

2. 시온은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을 가리키며, 성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이후의 일이다. 다윗 시대에 시온은 무엇을 가리킬까?

    여부스 사람들에게 빼앗은 산성(삼하 5:7), 혹은 그 곳에 옮겨둔 성막(삼하 6:10-12): 크게 보면 큰 차이는 없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소 차이가 있다. 여호수아 이래로 점령하지 못했던 유다의 핵심지역을 다윗이 차지하고 얼마나 감사했을까? 평생 셋집에 살다가 말년에 자기 집을 장만하고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 비길 수 있을까? 시온에서 주를 기다린다는 다윗의 고백에는 이런 느낌을 들어있을 것이다.

3. 찬송 드릴 준비가 다 되었고 서원을 행할(서원제를 드릴)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1)은 예배 드릴 준비가 다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얼 하지?

    예배 드려야지: 2-5절은 예배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주께 나아와(2), 용서를 구하고(3)), 감사한다(4-5).

4. ‘죄악이 나를 이겼다’는 것은(4) 내가 죄를 지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스스로 죄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죄의 확신을 가지고(3) 하나님께 나아올 수밖에 없다(2).

5. 어떤 사람을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셨는가(4)?

    알 수 없음, 하나님의 마음에 달린 것: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린 것이다. 그렇게 불려온 것에 대해서 감사할 뿐이다. 숨어 살던 절름발이 므비보셋이 어느 날 왕의 부름을 받고 왕자처럼 왕궁에서 살게 된 것(삼하 9:6-11)이 어떤 기쁨이요, 횡재인지 생각해보자. 하나님과 친한 사이가 되었다?

6. 흔히 강청하는 기도라고 해서 하나님께 떼를 쓰듯이 기도하라고 가르치기도 하는데 이건 쓸데없는 짓이다. 왜 그럴까?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응답하시기(5) 때문이다: 아무리 떼를 써도 의롭지 못한 기도에 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응답하시지는 않는다.

7.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노래했다(1-5). 6절부터는 좀 달라진다. 어떤 하나님을 노래하는가?

    만물을 창조하시고(6-8) 운행하시는(9-13) 하나님에 대해서.

8. 자연 만물이 얽히고 설켜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오묘하기 이를 데 없다. 지구나 우주도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 연관된 모습에 감탄하면서 일반인들은 이것을 자연의 신비라고 한다. 인간이 무모한 짓을 해서 균형을 깨드리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 이것을 자연의 반격이란다. 이렇게 위대한 자연은 도대체 누구인가?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자연을 칭송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은 우연을 신봉하는 셈이다. 우연이 그렇게 위대하다고?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9. 고대에 높은 산은 신성한 곳이었고 신들의 거처로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산을 세우신다는 것은 최고의 능력자라는 뜻이다. 이 분이 ‘권능으로 띠를 띠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참고, 삼하 22:40)

    군대의 통솔자, 즉 왕이시라는 의미다: 산을 세우시는 것이 업적이라면 띠를 띠시는 것은 신분을 과시하는 것이다.

10. 바다가 뛰노는 것을 막을 자는 없다. 하나님만이 그럴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은 자연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이다. 그러면 만민의 소요를 진정하신다는 말은?

    인간의 삶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오 또 섭리하시는 분이시라는 고백이다.

11. 땅 끝에 사는 자(8)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분들이 주의 징조를 알기나 할까? 알지도 못하는데 왜 두려워하지? 주의 ‘징조’를 어떤 역본은 주님의 ‘손길’, your ‘wonders’ 라고 번역한 것을 참조하여 생각해보자.

    하나님을 몰라도 냉정한 눈으로 만물을 관찰하면 놀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는 않고 자연의 신비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도 일종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12. 하나님께서 만물을 주관하시는 결과는 무엇인가?

    기쁨(8, 12, 13): 자연 만물이 조화롭게 운행하며 우리에게 경의로움과 참된 기쁨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는 것이다.

13. 관을 씌운다는 것(11) 예쁘게 장식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하나님께서 한 해를 무엇으로 장식하셨는가?

    주의 은택으로(with your goodness(bounty):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일년내내 풍성한 수확을 얻었다는 고백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 비가 오고 강물이 흘러가는 이런 자연 현상을 보면서 만물을 예쁘게 장식하는 하나님의 손길로 느끼는 것이 복이다.

14.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글을 쓴다면 본문에서 알맞은 제목을 찾아보자.

    초장의 양 떼, 골짜기의 곡식! 혹은 ‘양 떼 초장과 곡식 골짜기’는 어떨까? 골짜기는 구릉과 구릉 사이의 평지를 뜻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곡식을 기르는 곳이 이런 곳이었으니 우리말에 적합한 표현으로 한다면 들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우리의 들판이라고 할만한 곳이 이스라엘에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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