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4편 |
하나님: 항상 그랬다. 하나님이라고 부른 말은 ‘엘로힘’ 즉 전능하신 분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대적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다. 2.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는 것’과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은 같은 내용의 반복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말에는 들으신 이후의 행동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듣고 흘려버리거나 못 들은 척 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들으시면 반드시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3. 다윗이 두려워하는 것은 악한 자들의 음모와 소동이다. 음모와 소동은 어떤 관계인가? 계획, 실천의 관계: 몰래 숨어서 음모를 꾸미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것이 소동이다. 목표는 왕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들과 가장 친한 친구 녀석이! 다윗의 위대함은 이런 인간들에 대한 비난보다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4. 악한 자들의 가장 큰 무기는 무엇인가? 혀(3): 악한 자들의 말은 칼과 같고, 화살과 같다. 말로 사람을 죽인다. 말로 음모를 꾀하고 소동을 일으킨다(2). 하나님께서 말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은 훨씬 더 평온하지 않았을까? 실은 그것을 악용하는 인간이 문제다. 결국은 그 혀로 망하게 된다(8). 좋은 데에 잘 써야지! 겁도 없이 숨어서 노린다(4). 5. 악한 자들이 악한 짓을 한다고 해서 자신은 온전한가(4)? 그들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 인생은 절대적으로 온전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감히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노력은 해야 한다. 돌아온 탕자의 얘기를 빌린다면 아들의 자격이 없지만 아들로 받아 주신 아버지 앞에 아들의 자격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6. 악한 자들은 악한 짓을 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용감한 자들이 결국은 어떻게 될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됨(9):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절에 그렇게 용감한 것이 무식한 탓이다. 결국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달으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7. 악한 자들이 악한 짓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무슨 잘못된 생각이 있을까?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생각(5): 사람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이런 인생은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8. 6절의 후반부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라는 말은 누구의 말인지 애매하다. 다윗의 말인지, 악한 자들의 말인지. 악한 자들의 말이라면 자화자찬이고 다윗의 말이라면 사람 속은 정말 모르겠다는 뜻이 된다. 결국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우스운 것(7-9): 악한 자들이 자화자찬을 하든, 다윗이 낙심을 하든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을 심판하신다. 9.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향하여 화살을 쏜다(7). 그런데 악한 자들이 어떻게 망하는가(8)? 자기들의 혀가 자기들을 해함(8): 스스로 멸망한다는 말이다. 화살을 쏘는 악한 자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화살을 쏘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께서 말로 까불던 놈들에게는 말로, 칼로 설치던 놈들에게는 칼로 심판하신다. 어떤 형태의 심판이 임하든 그것은 하나님께서 쏘신 활이다. 10. 악한 자들은 몰래 악한 짓을 꾸몄다(5).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어떻게 달라지는가? 만천하에 드러난다(8, 9):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묵상하게 된다. 좋은 예로, 다윗은 아무도 몰래 남의 부인을 빼앗아 왔지만 심판의 날에는 백주에 부인을 빼앗기게 된다. 악한 자들에게 임할 심판을 노래했는데 이것이 자신에게도 적용될 줄이야! 11. 악한 자들로 인하며 두려워하며 근심하던 의인의 결말은 어떠한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함(10):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근본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교리1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