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3편 |
자신을 가리켜 왕이라고 함(11): 그렇다면 압살롬에게 쫓겨가던 때라고 봐야 한다. 유대광야 중 사해의 서편 지역을 거쳐서(삼하 15:23) 마하나임으로 피난을 갔으니 그 중의 어느 한 곳일 것이다. 그렇다면 굉장히 다급한 시점인데? 2. 위기의 때에 하나님을 찾는 것(1)은 당연하면서도 가장 요긴한 일이다. 다윗의 위대함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런 다윗의 모습에 조금 유감스러운 점은 없을까?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더라면 이런 위기가 오지 않았을 것 아닌가! 꼭 일이 터져야 하나님을 찾는가! 압살롬의 반역에 다윗이 일정한 부분 책임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3. 1절에 생략된 말을 삽입해보자. (땅에서 다음에 삽입) 물을 찾듯이: 마르고 황폐한 땅의 물이란 생명 그 자체다. 자신의 형편이 바로 이 마르고 황폐한 땅과 같다.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물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 뿐이라는 고백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며, 앙모한다. 4.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는데 ‘이와 같이’ 바라보았단다. 무엇과 같이? 앞 절의 ‘찾고, 갈망하며, 앙모하는 것과 같이’라는 말이다. 성소에서 주를 갈망하는 것이나 유대광야에서 주를 찾는 것이나 동일한 이유와 동일한 간절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소에서 주를 섬길 때와 동일한 마음으로 사모한다고? 단순한 과거의 일이 아니라 장차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아닐까? 5. 하나님을 그렇게도 간절히 사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2):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일지라도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요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라면 나머지 것들은 다 저절로 해결될 것임을 알기에 하는 말이다. 아버지의 현찰을 노리더라도 티를 너무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6. 주의 인자하심이 어떻게 생명보다 나을까? 모든 생명은 주의 인자하심 때문에 존재한다는 고백이다. 바로 그 주의 인자하심 때문에 자신의 생명도 안전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한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생명이 유지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대하고 찬송하며 기도하는 것(3-4)이다. 우리의 생명이 길어야 백년이다. 하나님의 인자는 영원한 것이다. 7.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1) 어떻게 영혼이 만족할(5)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초월하는 복이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다. 아는 자만이 아는 기쁨이다. 이런 기쁨 때문에 죽음도 불사한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들에게 쫓겨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이런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의지할 때 뿐이다. 더구나 골수와 기름진 것이란 최고의 음식을 말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제대로 된 맛을 보았을 때의 만족감을 이런 광야에서 누린다고? 8. 정말 어려운 때에는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 유일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전제가 필요한가? 주님께서 도우심이 된 기억(7, 8): 지난날의 이런 도우심을 기억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다윗은 극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도우신 생생한 기억이 있다.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영혼의 만족을 누리는 것이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런 체험이 있어야 위기의 때를 편하게 넘길 수 있다. 9. 주님에게 날개가 있다고? 하나님을 어미 새가 새끼를 날개로 보호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오른 손도 힘이나 권능에 대한 비유고. 10. 하나님을 따르는 시인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 안연히 거하겠지만 악인들은 매장되나(9), 짐승의 먹이가 되나(10)? 둘 다: 같은 의미다. 땅 깊은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죽은 자들이 가는 음부라는 뜻이니 간단히 말하면 죽는다는 뜻이다. 땅 깊은 곳에 들어간다는 표현은 비유적이고 짐승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실제적이다. 11. 결국 원수들은 멸망하겠지만 왕(자신)은 어떻게 되나?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 즐거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적이 사라진 것이나 왕권이 회복되어서 기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12. 본문을 시인의 현재 모습, 해결 방법, 결과로 요약해보자. 현재: 물을 찾듯이 갈급하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