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7편


1.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었던 시절은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억울하고 참담하고, 하나님도 원망스러울 때다. 누가 왕을 시켜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서 왕으로 삼겠다고 하시더니 이렇게 생고생을 시킨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원망하는가?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잘 나갈 때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믿음 아니겠는가! 적어도 10년 가까운 세월을 이렇게 지내면서도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이(2) 보통 믿음인가? 이 시편을 비탄시라고 분류하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비탄의 분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구원을 확신하고 찬송하는 분위기다.

2. 하나님께 무슨 날개가 있다고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겠다고 하는가?

    암탉이 병아리를 품는 것에 대한 비유다: 매나 솔개가 뜨면 어미 닭은 병아리를 불러 모아 날개 밑으로 숨긴다. 다윗은 영리한 병아리다. 자기가 알아서 먼저 어미 품으로 뛰어들어간다.

3. 다윗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하는가?

    지존하신 하나님,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2): 너무 자기중심적인 사고 아닌가? 위기에 빠지면 그럴 수밖에 없는가? 지존하시다는 것과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 분께 기댈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다. 자기중심적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4.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하늘에서 사자를 보내서: 그 사자의 이름은 인자와 진리다. 인자와 진리라는 하나님의 사자는 누구를 가리킬까(다음 질문에 계속)?

5.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자를 보낸다면 그 사자의 이름은 ‘천하무적’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이름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인자와 진리는 하나님의 근본 속성이다(출 34:6).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하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해서 잘 가르쳐주신 신약시대에 이렇게 말하는 것도 쉽지 않던데 하물며 하나님을 두렵게만 여기던 구약시대에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6. 다윗은 대적자들에게 쫓기는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비유하는가?

    사자들 가운데(4), 불 가운데(4), 그물에 걸린 짐승(6), 웅덩이에 빠진 짐승(6): 스스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위기상황이다. 그러니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7.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사자나 불사르는 자는 다 사람의 아들들이란다(4). 이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혀는 날카로운 칼 같다고 하면서 굳이 사람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자신을 구원하실 인자와 진리, 곧 하나님과 대비시키는 것 아닐까? 아무리 위협적이라고 해도 어차피 하나님께서 나서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 아닐까? 바로 이어지는 구절이 하나님의 높아지심을 노래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8. 자신의 고통(1-4)과 하나님의 높아지심(5)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나님의 통치 앞에는 악인들이 설 자리가 없을 것이기에: 자신의 모든 고통이 사라질 날이 바로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날이다. 하늘과 온 땅(세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날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6절의 ‘억울’). 그런 마음으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해야 한다.

9. 하나님께서 도우실 때에는 악인들의 행위를 이용하시기도 한다. 어떻게?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지게 하심으로(6):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높은 장대를 세웠다고 자기가 달린 하만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사울도 다윗을 죽이려고 미갈, 요나단을 이용했지만 결국은 다윗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하나님의 편에 서면 악인들이 설치한 그물이 오히려 나를 도울 수도 있다.

10.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이 확실하다는 고백이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찬양함(7-9):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어도 기쁘다는 뜻이다. 옥에 갇혀서도 찬송하던 바울과 실라처럼!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확신하면 나의 영혼(영광), 비파, 수금, 새벽, 모조리 다 깨워버린다. 잠잠할 수 없다.

11. 8절의 ‘내 영광’이란 표현은 여러 번역본들을 비교해보면 ‘내 영혼’이라고도 한다. 문맥을 살펴보면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가?

    찬송의 문맥에서 나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보다는 나의 영혼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것(영혼의 각성과 분발 촉구)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리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이기고 영광스런 자신의 모습을 회복할 것을 확신하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다(영광으로 번역하는 경우).

12. 새벽을 깨우면 어떻게 되지?

    태양이 뜨지: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새로운 세상이 다가온다! 논리적으로는 자기가 새벽을 깨울 수 없다.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문맥을 따르면 새벽부터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13. 고통 가운데서 건져주시기를 간구하던 다윗이 드디어 힘차게 찬송을 부른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굴속이다. 자신의 어떤 모습을 그려보면서 찬송을 하는가?

    만민 중에, 뭇 나라 가운데(9) 우뚝 서서 찬송하는 모습: 현실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베푸실 은혜를 미리 그려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믿음으로 다윗은 그 어렵던 시절을 견뎠다.

14. 엄청난 고난 가운데에 처한 이 판국에 주의 영광이 높아지기를 바라는가?

    자신의 고난을 통해서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중심의 삶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당면한 현실만 바라보고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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