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6편


1. 다윗이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가 언제지? 아니, 그런 적이 있기는 있었나?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던 초기 시절에 신분을 감추고 블레셋으로 망명했다가 들켰을 때(삼상 21:10-15): 미친 척 해서 빠져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시편을 보면 짧은 기간에 일어난 작은 해프닝 정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곰을 피하려다 사자굴에 들어간 셈이다.

2. 곤경에 빠진 다윗이 자신을 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고발하는데 그들을 어떻게 해달라기 보다는 자신의 각오를 피력할 뿐이다. 55장에서 원수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하던 태도와 왜 이렇게 다를까?

    이 사람들보다 이들에게 망명한 다윗의 잘못이 더 크다: 왕년에 자신들과 싸우며 엄청난 피해를 입힌 사람이 신분을 감추고 귀순을 했으니 환영할까, 미워할까? 미워할 수도 있지!

3. 원수들의 행위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보이려고 반복하는 표현이 무엇인가?

    종일, 삼키려(1, 2): 시간과 공간을 조합하여(시공간) 모든 것을 의미하듯이 악인들의 행태와 시간을 반복하여 악인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4. 두려운 날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겠단다(3). 무얼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일까?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것(4):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복적으로 표현하는데(6번, 3, 4, 10, 11)이게 말이 되나? 두려운데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서 두렵지 않게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두려운 마음을 제거해주시거나, 원수들을 제거해달라고 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에 주목하자.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두려운 날에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이다. 무서워하니까 겁이 나는 걸까, 겁을 내니까 무서운 걸까? 똑 같은 상황에서 겁을 내지 않으면 무섭지 않을 수도 있다. 슬프니까 눈물이 나는 걸까, 눈물이 나니까 슬픈 걸까? 상호연관이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에도 자신의 의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5.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근거가 하나님에게는 무엇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하나님에게는 말씀이 있고, 사람에게는 혈육이 있다(4):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될 것이며 육신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에 비해서 무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는 것이다(4).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 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다윗이 양을 치던 시절에 사무엘을 통해서 주셨던 말씀이 있고 조상들에게 주셨던 말씀도 있다.

6. 혈육의 본래 의미는 피와 살이다. 여기서 같은 피와 살을 나눈 형제라는 의미로 발전한다. 본문의 혈육을 가진 사람이란 무슨 뜻인가?

    육체를 가진 인간: 즉 영적인 하나님과 대조적인 존재다. 자신을 돕는 영원한 하나님에 비해서 일시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을 보이는 인간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이며 방법이다.

7.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해하려고 하는 것이 사악한 게(5) 맞나? 자기들 입장에서 보면 국가에 충성하는 것 아닌가?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사악한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국가에 충성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다윗의 편인 이상 다윗을 해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결국 선하고 악한 것은 하나님의 편에 서느냐 마느냐의 일이다. 망명 갔을 때의 다윗의 말을 믿지 않고 곡해한 사람들은 블레셋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길게 보면 장차 닥칠 불행의 싹을 자르는 일 아닌가! 그럼에도 다윗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그 지혜가 결국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대적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살자.

8. 악한 짐승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고 치면(창 37:33) 행위가 악하다. 짐승의 악한 행위는 본능에 따른 행동일 뿐이다. 반면에 사람은 행위 이전에 무엇이 악할까?

    말과 생각(5): 손을 대지 않았다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로도 얼마든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생각이 악한데서 이 모든 악한 행위가 발생한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곡해하는 말로 얼마나 곤경에 처했으면 미친 짓을 하면서 빠져 나왔을까?

9. 악한 자들의 습성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악한 자들이 잘 하는 행동이 무엇인가?)

    한 단어로 하면 ‘엿봄,’ 세 단어로 하면 ‘모여, 숨어, 지켜봄’(6): 악한 말과 생각이 이런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들이 이렇게 지켜보는 것이 다윗의 발자취다. 이런 용도로 쓰이는 발자취(=발꿈치)란 단어가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야곱의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에게 발꿈치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요 13:18). 이렇게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건수를 잡아서 블레셋 왕에게 밀고할 것이다.

10. 생명을 엿보고 발자취를 지켜보던 자(6)를 낮추라고(7)? 이렇게 표현이 약해서야?

    다른 번역을 보면, 멸하소서(공동, 표새), 던지소서(우리말)다. 하나님께서 분노해서 낮추시면 그게 바로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11. 지금 이 판국에 다윗이 유리한 게(8) 뭐지?

    방황이란 뜻이다: 有利가 아니라 遊離다. 사울에게 쫓겨 블레셋까지 오게 된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잘 아시지 않느냐는 것이다.

12. 누가 은밀하게 다윗을 살피는가?

    대적들(6)과 하나님(8): 모습은 비슷하지만 의도는 전혀 다르다. 아니, 하나님께서 계수하듯이 더 정밀하게 자신을 살피고 계신다고 믿는 것이다.

13. 눈물을 왜 병에 담으랄까? 병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가죽부대를 의미하는 것이란 점을 참고로 하자.

    반드시 기억해달라는 의미 아닐까? 책에 기록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병에 담으라고 하는 것이 더 운치는 있어 보이지만 원문은 기름이나 젖을 넣는 가죽부대란다. 그만큼 담아야 할 눈물이 많았던 셈이다.

14. 기도하면서 그 날에 원수들이 물러갈 것을 확신하는 것(9)이 올바른가? 안 들어주시는 기도도 있던데?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게 믿어야 한다, 다윗은 그렇게 믿었다: 만약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으면 다른 방식으로 들으시기 때문에 그렇게 믿어야 한다. 모세가 손들 들었을 때 아말렉 군대가 밀리고, 사무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큰 우레를 발하시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엘리야가 기도할 때 불로 응답하셨고, 히스기야가 눈물을 보였을 때 기적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이렇게 다급하거나 애절하지가 않다. 배가 부른 탓이다.

15. 어떤 사람이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적국에 가서 자칫 목숨을 잃을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사실은 죽을 때 죽더라도 이런 믿음으로 유다를 떠나지 말았어야 한다. 더 어려운 상황으로 들어갔지만 이런 믿음으로 위기를 견뎠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편에 서 있다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루터가 그랬고, 바울이 그랬다. 수 많은 순교자들, 믿음의 선조들이 그랬다. 그러면서 복음이 전진했다.

16. 10-11절은 4절을 반복하는 셈이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여호와란 하나님의 신명을 사용한 것: 하나님(엘로힘)은 전능하신 창조주란 의미다.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이 두 가지 표현을 교차해서 쓴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면서 감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7. 서원은 지난 날에 드린 것이다. 이것이 장차 무엇으로 변하는가?

    감사제: 자신의 서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는 의미다. 대적자들에게 둘러싸여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훗날의 영광스런 모습을 그리며 그 모든 아픔을 이겨냈다.

18. 블레셋 사람들의 손은 잡히는 것은 사망을 의미한다. 그 사망의 땅에서 다윗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생명의 빛 (속을 거니는 자신의 모습, 13): 생명의 빛 속을 걷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길이다!

19. 사람에게 실망하고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일 때 무슨 생각을 하면 좋을까?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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