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1편


1. 다윗이 오랫동안 사울에게 쫓기기도 자식에게 쫓겨나기도 했지만 바로 이 때가 가장 힘든 시기 아니었을까? 왜 그럴까?

    자신이 범죄한 탓(삼하 11:2-17): 다른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악함으로 인한 고통이기에 몸은 고달퍼도 하나님에게 기댈 수 있었다. 또 다른 측면으로 보면 다윗의 말년에 고통스런 많은 일들이 바로 이 일로 인해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2. 내용을 1-(3)4, (4)5-12, 13-19으로 대략 나눈다면 각 단락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1) 죄를 인정(1-4)
    2) 근본적인 죄인(5-12):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셔야 한다.
    3) 새롭게 해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다짐함(13-19): 다시는 죄를 범치 않고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3. 큰 죄를 지었으면 ‘잘못했습니다. 처분만 기다리겠습니다’ 해야지(2-3) 무슨 말이 이렇게 많나(1, 4-15)?

    죽을 죄를 지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과 관계마저 끊어지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죽을 죄를 지은 아들이 야단을 맞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격이다. 일반적인 왕과 신하라면 이럴 수 없고 일반적인 회사의 고용관계라도 이럴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용서해 주실 것, 변함없는 관계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 만큼 하나님을 잘 알았다. 이것이 다윗의 복이다.

4. 자신이 범죄했을지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1): 용서받을 수 있는 근거를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찾았다는 것이 신앙인 다윗의 위대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받을 근거보다는 핑계거리를 하나님에게서 찾는다.

5. 여기에 사용된 인자, 긍휼, 자비, 도말이라는 단어를 용서의 근거, 용서의 결과로 구분해 보자.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는 용서의 근거가 되고 긍휼과 도말은 용서의 결과다: 인자(헤세드)는 언약적 신실성(한번 아버지는 영원한 아버지다)을 의미하고(=자비), 도말은 페인트로 덮어버리는 것처럼 깨끗이 지워버린다는 말이다(=긍휼).

6. 죄를 범하기는 우리아에게 범한 것인데 왜 주께만 범죄하였다고 할까?

    우리아에게 행한 범죄를 넘어서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라는 고백이다: 우리아에게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짜 용서를 받아야 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면서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스도인이 범죄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다.

7.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하고 숨기려고 온갖 수단을 다 강구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이제야 정신이 들어서 하는 말이 무엇인가?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4):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하나님께서 훤히 보고 계시는 그 앞에서 이런 못된 짓을 저질렀다는 고백이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범죄할 때라도, 싸움을 할 때라도 하나님 앞에서 이러고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아야 한다.

8. 내가 범죄했으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 의로우시다는 것(4)은 누가 의롭다는 말인가?

    하나님: 우리말은 주어가 분명치 않은 점이 있다. 자신이 전적으로 잘못 했으니 하나님께서 야단을 치시든지 형벌을 선고하시든지 당연하다는 고백이다.

9.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다는 것이나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다는 말도 자신의 죄에 대해서 핑계를 대는 것 아닌가?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고백이다. 신약의 표현을 빌리면 성령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의에 이를 수 없는 존재라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다(11절 참조).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심이 진실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 그럴 수 있는 지혜마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6). ‘은밀히’는 은밀한 곳 즉, 앞의 ‘중심’과 대구를 이룬다. 중심으로부터 변화시켜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10. 왜 우슬초로 정결케 하는가? 피가 있어야 되는데?

    우슬초에 피를 묻혀 뿌리기 때문(출 12:22, 레 14:51, 민 19:18)! 우슬초는 정결 의식에서 피를 뿌리는 도구다. 우슬초를 사용하는 경우는(유월절, 나병에서 놓여나는 것, 붉은 암송아지를 태워서 만든 정결하게 하는 물) 일반적인 제사보다 더 특별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만큼 자신의 죄가 크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11. 주께서 꺾으신 뼈들로 즐거워하게 해달라는 것은 상당히 간이 큰 말이다. 죄인의 시체를 거두는 일도 자신이 죄인처럼 취급될 가능성이 높은 일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꺾으신 뼈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자신이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발언이다. 9절도 마찬가지다. 용서를 확신하는 것!

12. 용서 받은 자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일까?

    즐겁고 기쁜 것(8):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은 바로 이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중요한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 1번). 그러면 자원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이어야 한다.

13. 스스로 정직하고 정해질 수 없으니 어떻게 하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주셔야 한다(10, 12). 신약의 표현을 빌리면 중생보다는 중생 이후에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성령의 인도(충만)하심을 간구하는 셈이다.

14. 죄인치고는 참으로 간이 크다(13-17). 용서해주시면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약속이나 마찬가지인데 거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용서에 대한 확신: 용서를 확신하지 않고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15. 용서받은 죄인이 당연히 행할 일이 무엇일까?

    가르치는 것과 찬송하는 일: 자신의 겪은 바를 전하는 것이 가르치는 것이고, 자신의 감격을 드러내는 것이 찬송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제사를 드리겠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바로 이 기도가 훌륭한 것이다.

16. 입술을 열어달란다(15). 지금도 말을 잘 하고 있으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죄의식 없이 하나님께 찬송드릴 수 있도록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레위기의 제사 제도는 누가 가르쳐주신 것인가?

    제사라는 형식적인 절차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이다. 제물보다는 마음을 드리겠다는 것이다(17). 다윗은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을 잘 알았을까? 예수님 당대에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바리새인들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신기한 일이다. 구약에도 제사보다 마음을 드리라는 구절이 많이 있지만(삼상 15:22, 사 1:11-17, 렘 7:21-26, 호 6:6, 암 5:21-24, 미 6:6-8) 거의 대부분이 다윗의 시대보다 훨씬 뒤에 주어진 말씀이다.

18. 개인적인 문제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더니 갑자기 시온과 예루살렘에 대하여 간구할까?

    자신의 문제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 전체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로 백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를 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용서하시고 오히려 예루살렘을 굳건하게 지켜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왕의 신분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19. 하나님께서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더니(16) 또 제사를 드리겠단다(19)!

    마음을 드릴테니 받아주신다면 그 다음에 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다윗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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