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0편


1.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1): 세 가지 명칭(엘, 여호와, 엘로힘)을 한꺼번에 썼다. 여호와가 참 신이라는 의미다.

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도 아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신 이유가 뭘까?

    자기 백성에 대한 판결(4)의 증인으로 삼으시려고: 이런 판결을 보고 이들이 교훈을 얻는다면 좋겠지만 이들이 반드시 필요한 증인도 아닐뿐더러 죄가 더 크다. 공개재판처럼 공정하게 판결하겠다는 의미다.

3. 시온은 바위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루살렘이 원래 바위 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 시온이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예루살렘과 하늘의 처소를 동시에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온전히 아름다운 곳이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멸망 받을 죄라고 한다(고전 3:16-17).

4. 세상을 부르시고 빛을 비추신(1-2)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시는가?

    자기 백성에 대한 재판(3-7).

5. 하나님께서 왜 자기 백성만 따로 재판을 하시는가?

    형식적인 제사를 꾸짖기 위함이다: 최후의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킬 기회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제사를 드리면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책망하려는 것이다.

6. 재판에는 재판관, 원고, 피고, 검사, 변호사, 증인이 있다. 하나님의 재판에도 그럴까?

    재판관, 피고, 증인만 있다. 피고는 온 세상 사람들(1)인데 그 중에는 자기 백성도 있다(4). 증인은 하늘과 땅이다(4, 신 32:1, 사 1:2).

7.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무엇이라고 부르시는가?

    제사로 언약한 자(5):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을 때 제사를 드리고 피를 뿌렸다(출 24:4-8). 언약을 어기면 그 짐승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의미다.

8. 이스라엘이 제사를 잘 드렸는가?

    책망할 것이 없다니까 잘 드렸다는 말이다(8).

9. 제물 때문에 책망하지는 않겠다고 하시면서 네 수소나 숫염소를 가져가지 않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런 제사가 기쁘지 않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제사를 부지런히 드렸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는 못했다. 진리와 생명을 등한히 하고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의식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율법주의, 외형주의, 형식주의)를 비난하는 것이다. 외적 화려함이 있으되 내적 성결함이 없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10. 모든 짐승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10-12) 왜 소나 양으로 제사를 드리라고 했는가?

    짐승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을 달라는 것(14, 요 4:24): 그래야 환난 날에 네 기도를 들을 것이다(15). 진정한 제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원을 지키는 것이다.

11. 악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율례를 전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입에 두었을까(16)?

    입에만 두었다는 책망이다: 실제로는 하나님의 율례와 언약을 미워하고 무시한다(17). 그러면서 하나님의 율례를 전하는 이유는 돈이나 명예, 이기적인 탐욕 때문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위선자다.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외치는 목사를 생각해보라!

12.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어떻게 도둑과 연합할까? 함께 도둑질을 하나?

    돈에만 눈이 팔려 있으면 도둑이 바치는 십일조마저 기뻐하지 않았을까? 그런 식으로 간음하는 자들을 축복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도둑과 연합하는 것이요, 간음하는 자들의 짝이 되는 방법이다.

13. 경상도 말로 ‘가마이(가만히) 있으니 가마이떼긴(가마니의 낮춤말) 줄 아나?’란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서 꼭 이런 심경이 어디에 나타나 있는가?

    잠잠하였더니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다(21): 하나님께서 왜 악인들의 악한 소행을 가만히 두고 보시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기다리신다고 추측할 뿐이다(참고, 롬 3:25, 벧후 3:7). 그러나 끝까지 기다리시기만 하는 분은 아니시다.

14. 형제와 어머니의 아들은 다른가(20)?

    다 같은 형제로 보아도 될 일인데 굳이 구별한다면 ‘어머니의 아들’은 ‘배다른 형제’를 의미한다.

15. 설마 하나님을 잊어버리기야(22) 했을까?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 것은 하나님을 잊은 것이다: 단순히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름만 아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16. 하나님의 보시기에 그 정도로 악하다면 끝을 내야 하는 것 아닐까?

    지금이라도 돌이킬 기회를 주신다(22):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돌이키라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감사로 드리는 제사(23, 14 ↔ 7-13): 제물보다는 드리는 이의 감사하는 마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제물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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