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6편 |
극도의 환난 가운데 있다: 피난처, 힘, 도움이 필요하다(1). 아마도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히스기야의 시대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2. 2-3절은 시인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위기 상태다. 이걸 4자 성어로 표현해 보자.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천지가 요동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지는 일은 창조 때나 종말의 때에나 있음직한 우주적인 소동이다. 이런 판국에 하늘인들 가만히 있었을까?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고백이다(롬 8:35). 3. 2-3절과 4절을 대조해 보자. 엄청난 이변과 잔잔함: 원수의 침략과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대조다. 현실은 외적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왕하 18:29-35) 하나님을 의지하고 평화로운 것이다(왕하 18:36). 4. 시내가 흘러서 하나님의 성소를 기쁘게 한다고? 무슨 의미일까? 생명수가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는 의미다: 다윗이 여부스 성을 점령할 때 물 긷는 구멍으로 올라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물을 공급하는 일이 중요했다. 예루살렘 주변의 여러 산이 있지만 유독 작고 낮은 시온성이 중심이 된 것은 물이 나는 샘이 있었기 때문이다. 샘의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바위굴을 파기도 했는데 이런 곳에 시내가 나뉘어 흐른다는 것은 환상적이다(겔 47장, 계 22장)! 5. 하나님의 도우심이 왜 새벽에 임할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임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겼다: 새벽에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탓이리라(출 14:27, 사 37:36). 새벽이라고 번역된 말의 정확한 의미는 ‘아침의 기점’이란 뜻이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광명한 낮이 찾아오듯이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을 고백하는 말이다. 6. 뭇 나라가 떠들어 왕국이 흔들려도 하나님께서 한 말씀 하시면 땅이 녹는다. 수 많은 적군이 와글거리는데 땅이 녹으면 어떻게 되나? 어떤 예가 생각이 나는가? 깨끗이 사라진다, 히스기야 시대에 산헤립의 군대(왕하 19:35, 사 37:36): 18만 5천이나 되는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기고만장 했지만 하루 밤에 몰사하고 말았다. 아무리 강한 대적이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상 녹아서 사라질 존재라는 것이다. 7.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은 모든 군대, 즉 만물의 주인이신 여호와란 말이다. 그렇다면 야곱의 하나님은 무슨 의미일까? 언약의 하나님: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을 하시고 끝내 그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이시다. 8. 4-7절이 시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8-11절은 어떻게 다른가? 시온을 지키시는 정도를 넘어서 온 세상을 평정하실 것이다: 모든 분쟁을 종식시키고 완전한 평화를 이루실 것이다. 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사 9: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9. 자라할만한 여호와의 행적이라면 멋진 광경을 만드셔야지 왜 황무지를 만드셨나? 대적을 치신 모습을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를 황무지로 만드신 것을 보라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말씀이 자신들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진다! 10. 가만히 있으라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열심히 섬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실 때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출 14:13-14, 삼상 12:16).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니 초조해 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만히 기다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11.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로 어떤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가? 크고 장엄한 이미지를 가진 단어들: 땅, 산, 바다, 열방, 세계. 12. 하나님을 의지하고 수 많은 대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배경으로 한 찬송가는 무엇일까?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보름스 종교회의에 소환을 받고 ‘비록 보름스에 있는 기왓장만큼 악마가 많아도 나는 가리라’고 용기를 냈던 루터가 지은 찬송이다. 우리 신학대학원 교가이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