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2편


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임재의 상징으로 성전을 주셨다. 그 성전에 나아가기를 그렇게 갈망한다는 뜻이다.

2. 시인이 왜 이렇게 목이 마른가?

    성전예배에 참석할 수 없어서(4): 예배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갈급한가? 실제로 마음껏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아픔이 어떤 것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복이다. 예배 드릴 수 있는 교회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른다. 이 시인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적자들에게 조롱까지 받고 있다(3).

3. 성전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른 고라 자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레위인으로 성전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이며 찬양대원이었다(대상 9:17-): 자랑스러웠던 직분을 어떤 연유에서인지 잃어버리고 객지를 떠도는 상황이다. 그래서 어쩌면 포로로 잡혀간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4. 사슴과 이 시인의 같은 점은 무엇이며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같은 점은 갈급하다는 것, 다른 점은 사슴은 목이 마르고 시인은 영혼이 갈급하다는 것과 사슴에게는 조롱하는 자가 없다는 것.

5.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당할 수 있는 가장 모욕적인 말이 뭘까?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3):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가장 비참한 처지가 된 상태다. 당당하게 대답할 구실이 없어서 이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니 눈물만 흘릴 뿐이다.

6. 5절과 11절은 똑 같은 내용의 반복이다. 이런 것을 우리는 뭐하고 하는가?

    후렴(後斂): 노래 곡조 끝에 붙여, 반복해 부르는 짧은 가사(refrain).

7.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난 날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것은 도움이 될까?

    마음만 더 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추억이 나를 회복시킬 능력이 있는 자와 관련이 있다면 회복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이 시인에게는 그 추억이 하나님께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런 추억을 많이 쌓게 하는 것은 그래서 유용하다.

8.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5):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외부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의 도움이 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복일까?

9. 예전 번역(개역)에는 ‘그의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라는 표현이 있었다. 개정은 이것을 풀어서 번역을 했다. 어느 표현일까?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5): 얼굴의 도우심이란 ‘하나님께서 얼굴빛을 비추신다’는 표현인데 이렇게 의역을 해서 쉽기는 하지만 아쉽다.

10. 요단 땅이란 잡목과 빽빽한 숲이 우거진 요단 계곡을 일컫는 말이다. 미살 산(=작은 언덕)은 위치를 잘 알 수는 없으나 헤르몬 산의 어느 한 부분으로 추정한다. 높은 산과 작은 언덕, 그리고 요단 계곡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될까?

    도피처: 아마도 도피 중에 성전을 그리워하는 장면 같아 보인다.

11. 폭포 소리, 파도와 물결은 전부 주의 것이다(7). 무엇에 대한 상징인가?

    자신에게 닥친 고난: 끔찍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12. 폭포 소리, 파도와 물결이 휩쓸면 끝장이 난 것이다(7). 그런 가운데서 시인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낮의 인자와 밤의 찬송(=기도):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것이다. 매를 맞더라도 하나님께 매달리는 자는 곧 회복이 된다. 낮의 인자는 언젠가 번성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고, 밤의 찬송은 역경 가운데서도 찬송을 끊이지 않겠다는 각오를 의미한다.

13.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하는 것이 자신의 처지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반석은 폭포 소리, 파도와 물결이 휩쓸어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쏟아지는 재앙 가운데서도 안전할 것이라는 고백이다. 이런 하나님께 나의 어려움을 다 고백하겠다는 것이다.

14.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원수의 비방이 얼마나 아픈가?

    뼈를 찌르는 것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먹칠 당하는 것을 전혀 생각도 않는 하나님의 백성도 적지 않던데? 자신의 재력으로 교회를 짓고 비밀스러운 곳에 비밀창고를 만들고 비밀장부를 숨긴 장로가 있던데? 왜 일이 터지기만 하면 장로, 권사, 목사냐? 이들에게는 이 시인의 이런 아픔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걸까?

15. 5절과 11절은 똑 같은가?

    좀 더 강한 확신을 보인다: 내용은 동일하지만 ‘나는’ ‘내 하나님을’이란 말이 첨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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