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8편 |
자신의 범죄로 인한 고통과 용서받음: 범죄로 인한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잊을 수 있는 것이 복이기도 하지만 기억할 것을 기억하는 것도 복이다. 다윗은 이 아픔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꼭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셈이다. 2. 다윗의 고통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육체의 질병(1-8)과 사람으로 인한 고통(9-20) 3. 1-3절을 아버지에게 매 맞는 아이의 말로 간단하게 바꾼다면(10자 이내)? 아빠! 그만, 아퍼! 살살!: 잘못해 놓고도 징계하지 말라고?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할 때도 있지만 자비로우신 아버지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극심한 고통이라도 이것이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희망이 있다. 4. 다윗은 육체의 질병이 왜 왔다고 하는가? 자신의 죄(4), 우매함(5): 다윗이 이렇게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고백하는 죄라면 밧세바로 인한 것일 것이다. 그로 인해 아들이 죽고, 다른 아들에게 쫓기는 것 외에 이런 육체적인 아픔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것을 우매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내가 왜 그런 바보짓을 했을까?’라는 자책이다. 5. 어디가 그렇게 아픈가? 온 몸에 뼈까지(3, 7): 아래 질문을 참고하면 마음까지(8) 아프다! 6. 화살에 찔리면 많이 아플까? 원어의 화살은 복수다. 한 개만 찔린 게 아니다. 화살 여러 개가 깊이 박힌 형국이다. 많이 아플 것이다. 주의 손이 누른다는 것은 무슨 고통일까? 심리적 압박감: 화살은 육체의 아픔을 의미하고 주의 손이 누르는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의미한다. 몸과 마음이 견디지 못할만큼 아프다. 7. 모델은 가슴을 쫙 펴고 당당하게 걷는다. 범죄한 자는 어떤가? 심히 구부러져 슬프게 다닌다(6):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다는 것은 허리에 중병이 들었다는 뜻이다. 허리가 아픈데 구부러지지 않을 수 있나? 8.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다윗에게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고통의 원인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았음을 알고(3, 4) 회개하는 것: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징계는 회복을 위한 전단계, 사랑의 매다. 그래서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다(9). 9. 극심한 고통만 바라보며 신음하던 다윗이 시선을 어디로 돌리는가? 주님께로(9): 칠흑같은 어둠 속에 있던 다윗에게 한 줄기 빛이 비취는 것과 같다. 새로운 희망이 싹튼다. 그럼에도 고통은 여전하다(10). 10. 심장이 뛰는 거야(10) 정상 아닌가? 이어지는 표현을 참고하면 분명히 비정상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두근거리거나 맥박이 빨라진다는 뜻이다. 눈의 빛이 밝아진다는 것은 기력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하니까(삼상 14:29) 눈의 빛이 떠났다는 것(10c)은 기력이 쇠하여진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그러니까 심장이 뛴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11. 도대체 어떤 병이었기에 가까운 사람들이 전부 멀어졌을까(11)? 현대의 에볼라 정도?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라면 고대에는 문둥병이 제격이다. 실제로 문둥병을 앓았다기보다는 압살롬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쫓기던 자신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12. 가까운 사람들이 멀어진 것 외에 또 무슨 어려운 일이? 원수들이 나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민다(12):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왕이라고 해도 홀로 왕의 권위를 지킬 수는 없다. 가까운 친구들이 떠나고 대신 악한 무리들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은 아무래도 압살롬의 반란 때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13. 가까운 사람들이 떠나고 원수들이 자신을 노리는데 다윗이 할 말이 없다고13-14)?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것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시므이가 애매한 비난을 퍼부어도 대적하지 않았다(삼하 16:10). 대신에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15). 쉬운 일이 아니다. 14. 이제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16-20)? 응답하지 않으시면 원수들이 기뻐할 것(16), 내 병이 거의 절망적인 것(17), 회개한 것(18), 원수들이 강한 것(19), 선한 자가 핍박을 받는 것(20). 15. 반드시 응답하셔야 할 이유를 말한 후에 직설적으로 간구한다. 버리지 마시고, 멀리하지 마시고, 도우소서! 이렇게 간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기 때문인가? 자신의 구원자(22):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이것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하나님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알기에 절망 가운데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