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7편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거나 시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번성하기 때문: 악을 행하다가 망하는 경우라면 굳이 불평하고 시기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부정한 방법으로 살아가는데도 평안하고, 쉽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불평하지 말라는 말은 원어상으로 ‘뜨거워지지 말라’는 말이다. 악인의 번성을 보면서 심경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셈이다.

2. 풀을 왜 베지? 하필이면 푸른 채소일까?

    풀은 일시적, 금방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사 40:6, 마 6:30, 약 1:10). 푸른 채소도 마찬가지다. 반면에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땅에 거한다(3절의 동사는 전부 명령형이다). 땅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그 분의 성실을 먹으라는 것은 먹는 문제로 걱정할 것도 없다는 뜻이다. 풀이 베임을 당하는 것에 비하면 영원한 평안이다.

3. 욕을 많이 얻어먹은 자들이 오래 살고, 지독한 독재자가 오래 권력을 누리던데 악인의 형통이 그렇게 쉽게 쇠잔한다고?

    여하튼 풀의 베임같이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이다: 우리 눈에 길어 보여도 결코 긴 것이 아니며 무너질 때가 되면 순식간에 무너진다. 영원한 생명을 누릴 우리 눈에는 덧없고 일시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4.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으라는 것과 가장 비슷한 구절을 신명기에서 찾는다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신 8:3).

5. 악인의 잘 됨에 대해서 불평하는 대신에 무엇을 해야 할까?

    참고 기다려야(7): 억지로 참는 것도 아니다. 여호와를 기뻐해야 한다(4).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만이 참고 기다릴 수 있다.

6. 우리말 성경 3-7절에 ‘하라’는 것이 5가지인데(행하라, 삼을지어다, 기뻐하라, 맡기라, 기다리라, 원어상으로는 8개) 그 중에 제일은 무엇일까?

    기뻐하라: 하나님을 기뻐하면 나머지 모든 것을 다 행할 수 있다. 누군가를 정말 기뻐하면 스스로 종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스스로 죽을 길도 간다. 그 정도면 짜증도 나지 않는다.

7. ‘여호와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과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것은 모순 아닌가?

    소원을 두고 행하는 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니(빌 2:13) 하나님의 뜻에 따라 품은 소원이라면 모순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원을 품고 그것을 따르는 길을 하나님께 맡긴다면 모순이지만!

8. 8-20절은 불평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하는 셈이다. 다음의 각 구절은 불평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요약해 보자.

    8절: 자신도 악을 만듦: 불평은 악을 이기기 위해서 또 다른 악을 낳기 쉽다.
    9-11, 18-20절: 악인은 곧 사라지고 의인은 땅을 차지할 것: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마 5:5). 세상사가 그렇지 않은 듯이 보여도 결국은 그렇게 된다.
    12-17절: 하나님께서 의인의 편이 되심: 아무리 악인이 득세를 해도 ‘그의 날’이 온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 정직한 자를 향하여 휘두르던 칼이 오히려 자신을 찌를 날이 온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지만 결정적인 날에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9.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지고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이 땅을 차지하는’ 일이 이스라엘의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면 무슨 사건일까?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멸하고 땅을 차지한 것: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후 430년 만의 일이긴 하지만 결국 악인은 끊어지고 이스라엘은 땅을 차지했다.

10. 짐승이 이빨을 가는 것은 공격 무기를 다듬는 행위다. 그러면 악인은 의인을 보고 왜 이를 갈까?

    분노의 표시: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신을 섬긴다는 이유만으로 성도들을 대적하고, 까닭없이 미워하는 것이다(요 15:19).

11. ‘칼을 빼고 활을 당긴다’는 말(14)은 논리적이지 못한데? ‘차라리 칼을 빼서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활을 당겨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한다’고 하면 어떨까?

    사실적이기에 칼과 활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견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표현 방식은 역설적으로 은유적인 의미가 되어서 악인이 동원하는 모든 수단을 의미하게 된다. 은유를 통해서 악인의 모든 행위를 표현하는 시적 기법이다.

12. 악인은 잘 나가는 듯 싶어도 스스로 넘어진다(15). 반면에 의인이 누리는 복은 어떻게 대조적인지 간명하게 요약해 보자(16-31).

    효율(질)이 높고 영원하다(18, 27-29): 가진 것이 적어도 많은 것보다 낫고 힘이 없어도 부러지지 않는다. 그것도 영원히! 그러니까 악인은 질이 낮은 것만, 먹지도 못하는 음식만 잔뜩 가진 셈이다.

13. ‘어린 양의 기름’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은데?

    화려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질 만한 것: 다른 역본을 보면 ‘풀의 꽃, 목장의 풀’로 번역하기도 했다. 양쪽으로 다 번역이 가능하단다. 둘 다 ‘화려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질 만한 것’이다. 제물로서의 양이 아니라 ‘양 중에서 가장 비싼 양’ 즉 최고의 양이란 뜻이다.

14. 의인이 누릴 복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복이 무엇인가?

    땅을 차지함(9, 11, 22, 34): 개인에게는 삶의 근거, 왕에게는 통치 영역,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15. 악인은 많은 것을 가져도 가난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꾸고도 갚지를 않으니까(21): 악인은 결국 갚을 능력조차 잃어버릴 것이란 말이다. 많은 것을 가지고도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온갖 악을 행하는 것도 가난하다는 증거다.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가난한 마음이 아니라 욕심을 채우지 못해서 가난한 마음이다. 많이 가진 자가 부자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많이 줄 수 있는 사람이 부자다.

16.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신다(=원어상, 명령하다, 지도하다)고? 의인이라도 자기 생각이나 주관대로 가는 것 아닌가?

    그 분의 말씀대로, 그 분의 뜻을 따라 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이끄시는 것은 아니다. 자기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갈 때 그 길을 기뻐하신다. 그러면 넘어지더라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도록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신다(24).

17. 의인이 누릴 복 중에 가장 귀한 복이 뭘까?

    자식이 복을 받는 것(25-26): 자기가 복을 받는 것과 자식이 복을 받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복인가? 자식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복이 자식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당대에 끝날 수도 있다. 짧게 보면 의인이 고난을 당하지만 길게 보면 결코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28).

18. 의인이라고 반드시 지혜로우라는 법은 없을텐데(30)?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기 때문: 그 법이 실족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욕심에 이끌려 자신도 모른 채 실족한다. 그런데 자기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서 실족의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19. 여호와께서 의인을 악인의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는데 웬 재판이지?

    의인이 설령 재판을 받더라도, 아니 정죄를 당하더라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신다.

20. 의인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악인은 어떻게 되는가?

    사라진다(35-36). 끊어진다(34, 38): 악인의 번성이 그야말로 무성하게 자란 나무 같을지라도 그루터기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질 것이다. 악인의 형통은 아무리 번성하는 듯 싶어도 일시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하나님 없이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다려야 한다(고전 13:4, 7). 그것도 평안함으로(37, 고전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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