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1편


1. 시인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

    부끄러움(1), 고난(7), 고통과 근심(9)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다급하다(2절의 속히). 결국은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21).

2. 하나님을 왜 반석과 산성이라고 하는가?

    가장 안전한 피난처의 대명사다: 거대한 바위산 위에 세워진 산성에 거한다면 누가 공격을 해와도 두려울 것이 없다. 반면에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라는 것(3)은 하나님을 목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양의 운명은 목자에게 달린 것이니 목자만 제대로 만나면 양이 걱정할 것이 없다. 나를 잡으려고 그물을 치는 대적은 사냥꾼에 비유하는 것이다.

3. 시인은 무슨 일로 이렇게 힘들어 하는가?

    대적들이 많은 탓이다(1-8, 13-18): 결과적으로 육체도 쇠약해졌다(9-12).

4.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원수들이 다윗을 노리고 있을 때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5-6, 1): 기도라고 할 수 있으나 자신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간구하는 것이니 믿음(신뢰)이 먼저다. 이런 기도는 아무런 대책이 없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식의 기도가 아니다.

5.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7)은 대적들에게서 구원받았기 때문인가?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그를 변화시켰을 뿐이다.

6.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말은 어디선가 본 듯한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눅 23:46): 스데반도 비슷하게 그랬다(행 7:59). 죽을 때만 그럴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이렇게 맡긴다면 얼마나 복된 삶일까?

7.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이라고 하지만(7-8) 현실은 고통과 근심 중에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9-13)?

    영육의 쇠약(9-10), 인간적 소외(11-13): 이런 아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쁨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기쁨이다. 마치 기쁨이라는 깊은 강물 위에 이런 저런 쓰레기같은 고통과 근심이 떠내려가는 형국이다. 시간이 문제지 조만간 깨끗한 강으로 변할 것이다.

8. 대적으로 인한 고통이 어느 정도인가?

    죽음을 예상하는 정도(10, 12): 이런 일이 임한 것이 다윗이 범한 죄 때문으로 보인다(10). 그러나 10절의 ‘죄악’은 ‘고통’이라는 의미로 번역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다윗이 여기서 당하는 고통이 범죄로 말미암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탓도 있지만(14) 이 단어의 원어가 지닌 의미 중에는 그렇게 번역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9. 절망의 나락 속에 빠진 것 같아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다시 일어선다. 이런 신앙을 어떤 신앙이라고 할까? 가령, 다윗의 친구들이라면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신앙’이라고 하듯이.

    그래도(그러하여도) 신앙(14): ‘사람들이 무슨 짓을 어떻게 한다 해도 나는 여전히 주를 의지하리이다’라는 고백이다.

10. 일이 잘 되어갈 때 하나님을 잘 섬기기가 쉽지 않단다. 그러면 일이 엉망진창으로 꼬일 때는 어떨까?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시인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일어설 수 있는 바탕이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앞날(times)이 주의 손에 있는 것(15): 원수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내 인생이 그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란 것을 안다. 대적들이 노리고 있는 눈 앞에서 태연히 창문을 열고 기도하던 다니엘의 태도가 그렇다(단 6:10-11).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인간의 무능함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예전 수련회 표제를 쓰였던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란 말은 개역성경의 표현이다. 이제는 ‘내 앞날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해야 되나? 격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다.

11. 주의 얼굴을 자신에게 비추시고 구원해달라면서 대적하는 무리들은 어떻게 해달라는가?

    부끄럽게 해서 입이 다물어지도록(17-18): 대적자들이 정말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남을 헐뜯는 사람들은 말도 잘 한다. 이런 자들을 부끄럽게 하셔서 말이 없는 귀신(사람과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라는 의미로 = 스올의 거주자)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12. 시인이 소리 높여 찬송하는 것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인가?

    아직은 아니다(20, 24). 그냥 확신에 차서 그럴 뿐이다: 기도가 이루어지기 전에 놀라운 사랑과 풍성한 은혜를 확신하고 기뻐하는 것(19, 7-8)이 신앙인이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일이 이루어진 다음에 기뻐하는 것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13. 큰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신뢰하던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모양이다. 어떤 은혜를 베푸시는가?

    쌓아두신 은혜(19): 많다는 뜻과 미리 예비하신 은혜라는 뜻이다. ‘쌓아두다’는 원어에 ‘숨겨놓다’란 뜻도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 그것이 그제서야 준비된 것이 아니라 오래 전에 준비하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떤 은혜를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준비한 것임을 알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예비하신다.

14.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기는 것이다(20). 무슨 은혜가 이렇지?

    악한 자들의 꾀를 무산시켜 달라는 뜻이다: 가령, 모르드개를 달려고 높은 장대를 세웠는데 모르드개가 사라져버렸다면 이걸 어떡해? 하만의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했을까? 악한 자들의 꾀를 이렇게 허무하게 해달라는 기도다. 듣고 있는 줄 알고 열심히 흉을 봤는데 없네?

15. 쌓아두신 은혜(19), 감추시는 은혜(20) 외에 또 어떤 은혜가 있는가(21)?

    지키시는 은혜: 견고한 성의 가장 큰 역할은 대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는 하나님의 은혜다.

16. 한 때 죽는 줄 알았다가(22) 이런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할 말이 무엇인가?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24): 도대체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는데 대적들이 아무리 설치고 다닌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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