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0편 |
1, 5, 11절: 2. 주께서 나를 끌어내신다고? 내가 짐승이가? 스올에서 끌어내심을 의미한다: 끌어내시든 건져내시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지옥에서 빠져나오기만 한다면! 원어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듯이 끌어올린다는 말인데 우리 번역이 좀 거칠긴 하다. 3. 다윗이 여기서 하나님을 높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중병: 스올에 빠질 뻔 했다고 말하는 것이 죽을 병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셨고 원수들이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다. 4. 하나님의 노염과 저녁의 울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했음을 말한다. 이럴 때 범죄한 인생이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돌이키면 평생의 은총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가룟 유다나 베드로의 잘못을 비교하면 오십보 백보다. 그러나 돌이키느냐 않느냐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복이다. 5. 하나님의 성품의 한 단면을 ‘노염은 잠깐, 은총은 평생’이라는 말이 잘 나타내고 있다. 이 표현에 십계명에는 어떻게 나타날까? 징계는 삼사 대까지, 은혜는 천 대(출 20:5-6): 부모의 죄가 삼사대까지 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굳이 징계하지 않으셔도 저절로 악영향이 미치는 범위다. 반면에 우리 인생에게 천대라는 말은 영원을 의미한다. 6. 사람이 형통할 때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무엇인가? 자만, 교만: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 하리라는 것이 하나님을 말미암은 것이면 좋으련만 자신의 형통함을 근거로 하는 말이라면 교만한 말이다. 7절을 참고하면 교만한 말이다. 7. 하나님은 왜 산 같이 굳게 세우셨다가 얼굴을 가리시는가? 교만한 꼴이 보기 싫어서: 은혜 베푸셨을 때 오히려 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텐데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신다. 그러면 근심할 일이 생긴다. 3, 9절을 보면 죽을 병에 걸렸던 모양이다. 8. 무덤에 내려가서 진토가 되는 것이 왜 불행한가? 더 이상 하나님을 찬송할 수도 증거 할 수도 없으니까(9): ‘무덤에 내러가는 것’이나 ‘내 피’는 같은 의미다. 내가 죽는 것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살아서 찬송하고 증거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이런 말인데 죄를 짓고도 간이 크다.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다. 9. 11-12절은 어느 절의 구체적인 반복이라고 할까? 5절: 슬픔과 춤은 몸부림이 닮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베옷은 슬픔을 상징하는 것인데 기쁨을 띠로 상징하여 대비시킨 것을 문학적 능력이다. 전혀 관계없는 두 가지를 옷과 띠라는 상징으로 대비시킨 것이다. 10. 은혜 받은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일까? 잠잠하지 아니함(12): 구원을 기쁨을 아는 성도는 춤 추고, 기뻐하고, 감사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잠잠하지 아니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표정이 굳어 있거나 항상 심각한 것은 문제가 있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삼자가 보기에는 술 취한 것 같았던 모양이다(행 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