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7편


1. 남자들이 흔히 하는 말에 ‘죽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전쟁놀이’란다. 그래서 서바이벌 게임이 그렇게 유행하나보다. 다윗의 인생이 어떻게 이런 전쟁놀이와 닮았는가?

    악인들이 군대를 동원했으나 자기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계시니: 두려울 것도 없고 죽을 염려도 없다. 태연하게 ‘뭐 하지? 심심한데 싸워나 볼까?’ 이러는 걸까? 후반부를 보면 다윗의 확신은 이런 류(장난끼 어린)의 확신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2. 여호와는 왜 빛인가?

    원수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앞을 볼 수 없는 어두움인 반면에 자신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앞길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호와는 빛 가운데 계시지만 여기서는 비유다. 수많은 악인들은 소경인 반면에 자신만이 눈을 뜨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3.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이와 비슷한 확신을 말한 분이 또 누구더라?

    바울: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5-39)?

4. 여호와는 생명의 능력(혹은 피난처)이라는 이 고백은 다윗에게 ‘다윗의 생명은 생명싸개에 들어있다’고 한 사람을 기억나게 했을 것이다. 누가 그런 말을 했지?

    아비가일(삼상 25:29): 이 때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한 말은 참으로 신앙적이다. 이 일이 결국은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5. 악인들이 식인종인가(2)?

    악인들을 맹수에 비유한 셈이다: 그런데 짐승들이 실족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스스로 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 하셨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6. 대적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나를 치려하는데도 나의 소원은 성전을 사모하는 것이라? 이런 말도 되지 않는...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하신 적이 있네! 누가 하나님께 그런 명령을 받았지?

    여호수아: 새로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고 하셨다(수 1:8). 싸울 준비를 해야 할 때인데?
    후반부를 감안해 보면 여기서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이 어쩌면 다윗의 회복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군대가 대적하는 가운데 성전에서 멀어진 때가 이 시의 배경일 수도 있겠다.

7. 초막이나 장막은 숨기는 곳이다. 높은 바위 위는 어떤 곳인가?

    견고한 곳: 사막의 모래밭과 대조적이다. 어떤 비바람이나 폭풍우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불변하심과 영원하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8. 머리가 원수 위에 들린다는 것은 승리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다윗은 이런 느낌을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표현했더라?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23:5): 이 표현이 승리 후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라고 한다면 머리가 들리는 것은 승리한 자의 당당함을 연상케 한다. 다윗은 이 승리의 영광을 여호와께 돌린다(6).

9. 27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왜 그렇게 구분이 될까?

    1-6절과 7-14절: 전반부는 여호와를 3인칭으로, 전적으로 신뢰하는 반면에, 후반부는 여호와를 2인칭으로, 탄식과 기도가 주를 이룬다. 이런 차이 때문에 어떤 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시를 합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 시각에 익숙한 학자들의 습관일 뿐 인생의 연약함을 알면 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다윗이라 해도 인생에게는 이런 두 가지 요소가 있는 법이다. 신뢰하면서도 불안한 마음 말이다. 우리 인생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10. 확신에 찼던 다윗(1-6)이 갑자기 하나님께 부르짖는다(7). 상황이 다급하게 바뀌었는지 모른다. 이런 순간에 다윗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8): 이렇게 다급한 순간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이런 순종이 있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이나 헌신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지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순종 없이 무조건 매달리는 철부지도 많다.

11. 생명에 대해서 자신을 갖고 있더니 왜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나(9-12)?

    위대한 신앙인도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인생이 100%의 확신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척 해야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불안한 마음이 완전하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12. 다윗에게도 부모에게 버림받는 이런 아픔이 있었나(10)?

    비유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한들 하나님의 사랑에 비길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말하려는 것이다.

13. 지금 원수들이 이 난리를 쳐대는 판에 ‘주의 도를 내게 가르쳐 달라’고? 당장 급한 게 호구지책인데 공부할 겨를이 어디 있다고?

    ‘도’라고 번역된 말은 ‘길’이란 뜻이다. 가야 할 바른 길을 가르쳐달라는 뜻이다. 원수들이 들끓는 길이 아닌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길 말이다.

14. 13절의 원문은 Unless로 시작하는 문장이다. 그러면 어떤 문장인지 이 단어를 넣어서 고쳐보자.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것을 믿지 않았더라면...: 조건절 + 귀결절의 형태에서 귀결절이 생략된 문장이다. 다음의 KJV에서 (     ) 부분을 생략한 형태다. (I would have lost heart,) unless I had believed That I would see the goodness of the LORD In the land of the living. 느낌이 많이 다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적어도 다윗은 그게 끔찍했다는 말이다.

15.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호와를 기다리며 마음을 강하게 해야 한다: 전부 우리의 노력을 뜻하는가? ‘강하고 담대하며’를 KJV는 ‘Be of good courage, And He shall strengthen your heart’라고 번역했다. 원문에서는 두 가지 동사의 형태(명령, 사역명령)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리라는 의미다. 다윗은 평생 전쟁을 치르면서 이런 사실을 잘 깨달았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해야할 것을 하면서도 그 일이 제대로 되게 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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