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6편


1. 완전하다고?(1, 3, 4, 5, 6, 11) 도대체 얼마나 완전한가?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이 있다(1-2):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나님 앞에 단 한 번도 ‘저 어때요?’ 해보지 못하고 날마다 울며 불며 죽는 시늉만 한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윗도 하나님 앞에 울며불며 회개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당당할 때도 있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완전하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서 가끔은 그럴 수 있는 것 아닐까? 정 아니면 그렇게 농담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말이다.

2. 어떻게 이렇게 완전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시편에 보면 죄인이라고 하던데?

    주의 인자하심 때문(3): 이 완전함이 자기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란 것을 아는한 그럴 수 있다. 자식이 그럴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당당하게 내놓으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기 때문인 것처럼. 그럼에도 하나님의 속량하심과 은혜가 필요한 존재인 것을 잊지 않는다(11). 절대적 완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허망한 자, 간사한 자, 행악자들과는 다르다는 주장인 셈이다.

3.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만 의지하는 일에 가능한가(1)?

    다윗은 분명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원문과 순서가 닮은 KJV을 참고하면(I have also trusted in the LORD: I shall not slip.)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비결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작심하고 그대로 행하면 흔들리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된다.

4. 뜻과 양심을 단련하소서(2)? 양심을 어떻게 단련해? 아무래도 어색하다. 2절에 사용된 세 동사는 거의 같은 류의 동사라는 점을 감안해서 고쳐 보자.

    살피고, 시험하고, 분석하소서: 영역본도 세 동사(test, try, examine, 혹은 prove)를 썼다. 아마도 점차 강도가 센 단어일 것이다. 단련의 본래 의미는 금속을 녹여서 분리해낸다는 의미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뜻과 양심이 깨끗하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5. 다윗의 주변에는 어떤 인간들이 들끓고 있는가?

    허망한 사람, 간사한 자, 행악자, 악한 자: 왕권이 안정되고 평화로운 때가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런 인간들과 동일하게 취급하시지 않기를 구하는 셈이다.

6. 어떻게 하면 주의 진리 중에 행할까? 아니, 주의 진리 중에 행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말씀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주의 진리는 주의 말씀을 의미한다. 진리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과거에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 않으며 악한 자와 같이 않지도 않을 것이다(4, 5).

7. 무죄한데 왜 손을 씻을까(6)? I wash my hands in innocence(NIV)와 비교해 보자. 영역이 원문에 더 가깝다.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닌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 6-7절의 여러 가지 의미를 하나씩 살피려면 쉽지가 않다. 전부를 간단하게 말하면 무엇을 가리킬까?

    하나님께 나오는 일련의 과정(=예배의 과정): 무죄한 모습으로 살려고 애를 쓰지만 제단에 나올 때는 정결례를 행하고 제물을 드리고 찬송하고 말씀을 전하고 ...

8. ‘감사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찬송이라고 한다면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할까?

    간증: 사실은 같은 것이다. 감사 찬송의 내용이 곧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일테니까.

9. 하나님께서 다윗의 생명을 죄인과 함께 거두지 않으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악인과 달리 완전하기 때문(1-8): 다윗이 자신이 악한 자들과 다를 뿐 아니라(10)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1-8, 11). 그러니 이런 자신을 악인과 동일하게 다루지 마시라고 간구하는 셈이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10.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야지 왜 하나님께서 계신 집을 사랑한다고 할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직설적이기보다는 다소 은근한 사랑고백이라고 할까?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말 대신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하기 원합니다’ 했다. 성전을 사모하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교회를 소중하게 여겨야 할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11. 하나님께서 속량하시면 평탄한 곳에 서게 된다(12). 그러면 악인들이 어디에 서게 될까?

    불안정한 곳: 다윗이 위기에 처했을 사용했던 표현들을 빌리면 흔들리거나, 넘어지거나, 미끄러지거나, 그물에 걸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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