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5편


1. 시편은 대체로 짧은데 간혹 긴 것도 있다. 어떤 시편은 꼭 22절로 되어 있다. 25편은 왜 22절까지 있을까? 참고로 34편도 22절이고 119장은 176(22×8)절이다.

    알파벳 시이기 때문이다: 히브리 알파벳이 22개인데 알파벳을 이용해서 시를 지었기 때문이다. 삼행시가 아니라 22행시다.

2. 우리 조상들도 열심히 기도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 해서 기도한다. 정성을 다 하는 열심과 자신의 간절한 소원이 기도의 핵심이다. 그런 기도가 다윗의 기도와 어떻게 다른가?

    다윗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기도한다. 1절을 직역하면 ‘나의 영혼이 여호와, 주만 바라보나이다.’가 된다.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고난의 때에 원수들을 바라보며 원망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복이다.

3.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다윗은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나님께 의지하였기 때문(2): 개인적으로 부끄러움 당하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행하는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4. 기도는 단순히 떼를 쓰는 것이 아니다. 기도의 전제조건이 뭘까? 아이들이 떼를 쓰는 것도 그 바탕에는 무엇이 깔려 있는지 생각해 보자.

    확신(3): 아이들이 떼를 쓴다고 아무에게나 떼를 쓰는 게 아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특정한 대상에게만 떼를 쓰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바른 자세다.

5. 주의 도는 무엇이며 주의 길은 무엇인가?

    같은 것: 道는 길 도자다. 5절의 진리도 마찬가지다.

6. 철없는 아이는 떼만 쓴다. 철이 조금 들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가를 알고 노력하면서 부모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법이다. 안 그런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해 보면 다윗은 제법 철이 든 아이와 같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으니(4-5a) 기도를 들어달라는 셈이다(2, 5b):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전혀 무시하고 자신의 욕심만 고집하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사람이 아니다. 모세나 솔로몬도 이렇게 철든 기도를 드렸다(출 33:13, 왕상 8:25).

7. 다윗이 종일 주를 기다릴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 분이 구원의 하나님이시요(5), 그 분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 날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망을 품는 것이다. 하나님을 일찍 체험하는 것이 신앙의 큰 유익이 된다. 이런 체험이 없는 신앙은 어딘가 공허하다.

8. 다윗이 자기가 잘 나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당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6-7절에서 어떻게 고백하는가?

    하나님에게는 긍휼과 인자가 있고 자신에게는 죄와 허물이 있다(6-7, 8 ↔11): 자신의 죄와 허물은 기억하지 마시고 이런 못난 자에게 긍휼과 인자를 베푸시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았기에 다윗은 위대한 신앙인이 된 것이다.

9.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기억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긍휼과 인자(6): 자기의 그 무엇을 기억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과 인자를 베푸시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인자는 원어로 ‘헤세드’라고 하는데 언약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이것을 영원토록 기억해달라는 것은 다윗의 기도가 바로 이 영원불변하는 언약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것만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자기의 그 어떤 것이 의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구약의 다윗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10. 자신을 돌아보면 죄와 허물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고백하다는 것은 회개를 의미한다. 회개만 하면 끝인가?

    제대로 배워야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달라고 아뢴다(8-9, 12).

11. 하나님의 성품 중에 ‘정직’은 아무래도 느낌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공의를 의미하는 말이다: ‘곧은’ 혹은 ‘굽지 않은’이란 뜻이니 정직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올바르시니’라고 하는 것이 나아보인다. 선하고 공의로우신 분만이 죄인을 교훈할 수 있다.

12. ‘여호와의 모든 길’은 어디로 가는 길인가?

    여호와의 도(8)를 가리키는 말이다. 길 도(道)자 아닌가!

13. 하나님은 선하고 의로우시며(8), 인자와 진리시다(10). 참 좋은 분이시니 우리 인생이 걱정할 것 없지 않은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10=12)에게만 그렇다: 신약의 표현을 빌린다면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에게만 그렇다. 인간의 최소한의 반응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하나님의 인자가 아무리 무한하다해도 그 분의 말씀에 제대로 반응하는 자에게 유효한 것이다. 구약시대와 비교해 보면 그 반응조차도 너무 너무 쉽고 간단하도록 개선해주셨다.

14. 하나님의 온갖 성품에 대해서 찬양하는 듯하더니(8-10) 왜 또 갑자기 자신의 죄악을 고백할까(11)?

    하나님의 모습을 바르게 알면 자신의 모습도 바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15. ‘나의 죄악을 주의 이름으로 사하소서’가 아니고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라고 한다(11). 왜 자신의 죄를 사해야 할 근거가 하나님의 이름인가?

    히브리인들에게 이름은 모든 성품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름을 붙이는 일과 이름을 바꾸는 내용이 많다.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든 성품(선하심, 정직함, 정의, 인자와 진리)을 한 마디로 압축한 것이 ‘이름’이다.

16. 하나님께서 주실 모든 복을 받아 누릴 자는 어떤 자인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12) =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10): 온유한 자도 마찬가지다. 어떤 성경은 겸손한 자라고 번역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반응하는 자를 가리킨다. 세상에는 나름대로 똑똑하고 지혜로운 자들이 정말 많다. 그러나 때로는 그 지혜가 자신을 덫에 가두어버린다. 똑똑한 사람들이 팔자가 사납더라. 그 지혜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결함이 없는 완벽한, 진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잠 1:7).

17.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길을 따라가면(12) 무슨 복이 있는가?

    영혼의 평안함과 땅(13): 영육간의 복을 자신과 후손이 누리는 셈이다. 땅, 특히 가나안 땅을 상속한다는 것은 신약의 개념으로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는 것이다.

18. ‘친밀하심’과 ‘언약을 보이시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친밀하면 비밀이 없다: 비밀이 없는 사이가 친밀한 사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에게 정말 보여주고 싶은 비밀이 바로 이 언약이다. 언약이 어떤 것인지 깨달아 알게 하시고 싶은 것이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신약에서도 이런 구원 역사를 가리켜 비밀, 신비라고 한다(마 13:11, 롬 11:25, 고전 4:1 엡 1:9...).

19.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확신하고 찬송하지만(8-14) 현실은 어떠한가?

    그물에 걸린 새(15): 외롭고 괴롭고(16), 근심이 많고, 고난과 곤고와 환난 가운데 있으며, 많은 원수들에게 둘러싸인(17-19) 자신을 그물에 걸린 새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그물에서 벗어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15, 3).

20. 다윗의 위대함은 하나님의 눈에 불쌍하게 보이려는 것이다(삼하 15:25, 16:12). 그런 마음이 이 시편의 어디에 드러나는가?

    18절: 자신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죄를 사해 달라는 것이다. 위대한 왕? 위대한 신앙이다. 정말 잘난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위대한 신앙이다.

21. 지금까지 개인적인 아픔을 토로하더니 마지막에 민족의 속량을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개인이든 민족이든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처신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스라엘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셈이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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