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2편


1. 표제에 있는 ‘아얠렛샤할’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단다. 의미는 ‘도움의 새벽’ 혹은 ‘새벽의 사슴’이라고 한다. 음악적 기호나 곡조의 한 종류를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대체로 어떤 분위기에 맞춰 불렀을까?

    전반부는 애가처럼 후반부는 승리의 노래처럼: 박해받던 왕의 처지를 노래하다가 왕의 지위를 회복한 느낌으로 변한다. 곧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나타내는 두 종류의 곡조로 부른 것과 같았을 것이다.

2.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을 예수님 당시의 말(아람어)로 번역해 보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막 15:34):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말씀조차 구약을 인용하신 셈이다. 그러니 이 시편은 메시야가 고난 가운데서 외칠 말씀을 예언하는 것이다. 이 부르짖음은 완전한 절망인가? 아니라면 왜 아닌가? 절망 가운데서도 언약의 신실성을 잊어버리지 않은 표현이다. 여전히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렇다. 나를 버릴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신뢰가 담긴 표현이다.

3.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 같다. 어떻게 할까?

    낮에도 밤에도 부르짖는다: 포기란 없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한 끝이 아니다.

4.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다고 할까?

    여전히 찬송하겠다는 의도: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찬송 받으실 만큼 거룩한 분이시며 찬송하겠다는 고백이다.

5. 기도에 응답하시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고 여전히 찬송할 수 있을까?

    조상들에게 베푸신 구원을 알기 때문이다(4-5):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체험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셨다. 믿고 의뢰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다. 이런 체험이 없는, 이론적으로만 아는 신앙은 이 땅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에는 힘이 달린다.

6. 이 장에 예수님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것이 크게 보아 몇 가지나 있는가?

    4가지: ①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함(2, = 마 27:46, 막 1534), ②사람의 조롱(6-8 = 마 27:39, 43, 막 15:29), ③찔리고(16 = 요 19:34) 옷을 빼앗김(18 = 마 27:35, 요 19:23), ④말씀을 선포함(22 =히 2:12).

7. ‘사람마다 비방하고 조롱하며... 여호와께서 건져주시나 보자’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은 누구인가?

    다윗과 예수: 일차적으로는 다윗이겠지만(6-8)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다(마 27:39, 43, 사 53:3, 49:7).

8. 악인들이 말하는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이 말이 사실인가?

    악인들은 조롱하는 말로 했지만 하나님은 그 말을 현실화시켜 버렸다. 기절했을 걸!

9. 9-10절이 6-8절과 어떤 관계라고 해야 할까?

    모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손에 잡힌 내가 지금은 악인의 손에 잡혀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속히 이 모순된 상황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다.

10. 바산이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본문은 근거로 짐작을 한다면?

    목축을 하기에 좋은 장소: 황소들이 잘 먹고 잘 자라서 가장 힘이 세게 해주는 곳이다. 지금의 골란고원이다. 팔레스틴에서 가장 비옥한 목초지다. 바산의 암소들이란 표현도 있다(암 4:1).

11. 정신이 혼미하면 헛것이 보이기도 한다. 황소 무리 가운데 혼자 있으니 무엇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황소의 입이 사자의 입처럼 보인다(13): 황소가 사자처럼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일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을까?

12. 절망적인 자신의 상태를 쏟아진 물, 어그러진 뼈, 녹은 밀랍으로 묘사했다(14). 이게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보자. 시적 표현을 설명문으로 고쳐 보자.

    본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 뼈가 어그러지고 헝클어지면 본래의 모습을 알기 어렵다. 밀랍이 녹아버리면 원래의 형태는 더 더구나 알 수 없다. 다윗의 마음이 완전히 녹아버렸음을 묘사한 것이다. 처지는 너무나 어렵지만 표현력은 탁월하다.

13. 마음은 녹았다(14). 힘은(15)?

    혀를 놀릴 힘도 없다: 말하는 것이 힘드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죽을 때가 돼서 온 몸이 힘이 빠져나가면 말 한 마디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제야 안다. 같은 현상을 질그릇이라고 표현한 것은 철장에 맥없이 깨어지는 질그릇의 연약함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2:).

14. 죽음의 진토라면 진흙 구덩이에 빠졌다는 말인가?

    흙에서 나온 인생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성경 해석의 바탕은 성경이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 상식, 문화가 성경 이해의 바탕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15. 한국 사람들은 개를 참 좋아하면서(보신탕)도 욕을 할 때는 개를 들먹인다. 다윗(성경)은 왜 대적을 개라고 할까?

    죽은 고기나 썩은 고기를 먹으며 불결한 생활을 하는 탓이다. 그래서 사람을 개라고 하는 것은 모욕적인 언사다(삼상 17:43, 왕하 8:13)

16. 모든 뼈를 셀 수 있다고(17)? 어떤 경우에 뼈를 셀 수 있는가?

    살과 근육이 다 제거된 경우: 그러니까 뼈가 다 어그러졌다(14)는 표현과 마찬가지다.

17. 언제 대적들이 다윗의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았는가?

    그런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보아야 한다. 이 시편이 일부는 다윗의 상황이면서도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말씀(마 27:35, 요 19:24)이라고 보는 것이다.

18. 절체절명의 순간(12-18)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11, 19-21): 다윗의 위대함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은 것이다. 그 분을 신뢰하고 끝까지 그 분께 매달림으로 승리를 얻었다.

19. 칼(20)은 개의 세력으로 말미암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나의 ‘유일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명: 20절은 전형적인 평행대구법(반복)이다.

20. 자신을 둘러싸고 두렵게 하는 것들이 황소, 개, 사자들이라 하더니 웬 들소(21)인가?

    바산의 힘센 소(12)를 가리키는 말이다.

21.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면 얘기가 끝나는가?

    주의 이름을 선포하고 주를 찬송할 것이다(22) = 찬송하고 서원을 갚는다(25): 고난 가운데서 처절한 기도를 올렸고 그 기도가 응답된 후에 그 기쁨을 백성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히 2:12절은 예수의 성육신이 바로 그렇다고 설명한다. 죄악에 빠져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우리와 하나 되어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시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눈다(23).

22. 2절과 24절을 비교해 보자. 어떻게 다른가?

    2절에서는 기도의 응답이 없었으나 24절은 응답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체험이 있기에 응답이 없어도 듣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절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 성도는 2절의 단계를 넘어서 24절의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23. 찬송이 주께로부터 왔다고? 하나님을 찬송할 곡이나 내용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나?

    하나님께서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할 만큼 은혜를 베푸셨다는 의미다. 그래서 서원을 갚는다.

24. 하나님을 찬송하고 서원을 갚는다더니(25) 갑자기 ‘먹고 배부를 것’이라고(26)?

    먹고 배부른 것이 곧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겸손한 자’는 ‘여호와를 찾는 자’를 의미한다(평행대구). 그러니 먹고 배부를 것이란 여호와를 찬송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겸손한 자란 24절의 곤고한 자와 원어상 같은 말이다. 이 말은 가난한 자로 번역할 수 있다. 결국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는 말씀(마 5:6)과 마찬가지다. 그러면 ‘마음이 영원히 산다’. 결국 26절은 영적인 회복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도 대체로 영적인 회복에 관한 것이다.

25. 개인적인 고난을 토로하더니(1-21) 이제는 땅의 모든 족속이 하나님을 경배한다고(27-31)?

    이 시편이 다윗의 개인사가 아니란 증거다. 한 분이 고난을 당하고 승리함으로 온 세상이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얘기다. 메시야의 고난과 승리다!

26.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온다(27)? 이게 언제 가능한 일인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든 나라의 주재가 되시는 것(28)도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이루어질 때를 가리킨다.

27.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는 나라요(29), 모든 사람이 그의 백성이 되는(29) 나라다. 그러면 30-31절은 하나님 나라의 어떤 성격을 말하는가?

    영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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