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편


1. 20편이 21편과 어떻게 대조를 이루는지 살펴보자.

    기도(20)와 감사(21): 20편은 이기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인데 21편은 그 기도가 이루어진 것에 대한 감사다.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20:5)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셨다(21:2).

2. 이 시편에서 독특하게 강조(반복)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1, 5, 7): 이 짧은 시편에서 이 표현이 3번이나 등장하는 것은 아주 강하게 강조하는 셈이다. 아마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던 법궤(삼하 6:2)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법궤를 시온성(2)으로 옮긴 직후에 벌어진 전쟁을 앞두고 드리는 기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삼하 6장에 법궤를 옮기고 7장에 감사기도를 드린 다음에 8장에 아람군대와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들에게 사로잡은 마병만 1,700명이었다(삼하 8:4)고 하는데 본문에도 병거나 말을 의지한다는 표현(7)이 나오는 걸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3. ‘너, 우리, 나’는 누구인가?

    너는 다윗, 우리는 회중, 나는 제사장(왕이 직접 이런 제의에 나서기보다는 왕의 역할을 맡은 제사장이나 혹은 다른 인도자가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전하기에 앞서 왕이 제사를 드릴 때 백성들은 이렇게 기도하면서 제사에 동참했을 것이다. 온 회중이 전쟁을 앞둔 왕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예의가 없는 나라(?)에서 쓰는 you를 ‘너’라고 번역하는 것은 동방예의지국의 언어로는 적합지 않다. ‘너’를 ‘왕’으로 바꾸어 읽으면 되겠다.

4.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지 왜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가?

    야곱이 곧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다: 더구나 브엘세바의 사기꾼이라고 불리던 자연인 야곱에게 주신 언약(창 28:15)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신 하나님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5. 왕은 전쟁터로 가야 할텐데 왜 성소에서 도와주시라고 하는가?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서’라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만 한다면 다윗이 있는 장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씀만으로도 고칠 수 있다고 고백했던 백부장의 믿음(눅 7:7)이나 마찬가지다. 다윗 시대의 성소는 시온 성에 임시로 법궤를 모신 장소를 의미한다.

6. 승리를 간구하는 표현(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전부 몇 개인가(1-4)?

    8개: 응답하다, 들다, 돕다, 붙들다, 기억하다, 받아주다, 허락하다, 이루어주다: 이 8개의 동사를 종합하는 단어가 구원(6)이다. 참고로 이렇게 비슷한 의미를 대조시키는 표현방식을 동의적 대구법(synonymous parallelism)이라고 하고 병거와 하나님, 엎드러지는 것과 일어나는 것을 대조시킨 7-8절은 대조적 대구법(antithetic parallelism)이라고 한다.

7.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승리를 얻은 후에는 무엇을 하는가?

    개가를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세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세운다는 것은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뜻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누린다.

8.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신앙적인 때가 별로 없었다. 여기서는 어떻게 이렇게 신앙적일까?

    다윗 왕의 경건에 의한 것: 왕이 그러니까 백성들이 따라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지도자의 역할이 지대한 것이다. 왕이 타락하면 온 백성이 타락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9. 도중에 갑자기 주어가 바뀌었다(6). 왜 그럴까?

    백성들의 기도에 대한 화답이다: 이 역할을 제사를 드린 제사장이 했을 수도 있고 다윗이 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염려가 승리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10. 병거와 말을 의지하는 군대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군대, 어느 쪽이 강할까?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답이 다르다: 성도는 매 순간 이런 결단을 요구받는다.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다. 믿는 자에게만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군대가 승리한다. 전쟁의 승패가 신앙의 문제라고? 믿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믿는 자에게만 일어나는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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