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7편


1. 이 시편은 다윗이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박해를 받던 시절에(9)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하루 중에는 어느 때에 드린 기도일까?

    아침에(3, 15): 하나님께서 밤에 나를 감찰하셨고(3) 깰 때에 만족하리라(15)는 구절이 그렇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잘 자고 일어나 오늘 하루도 지켜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아마 이런 기도였을 것이다.

2. 다윗의 이 시편에서 기도의 중요한 요소 두 가지를 찾아보자.

    자신을 돌아보는 것(1-5)과 응답의 확신(6, 15): 다윗은 자신이 의롭고, 공평하고, 흠이 없으며, 범죄하지 않고 주의 길을 굳게 지켰다고 고백한다. 절대적인 의로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10-14절과 대조적임을 말하는 것). 자신이 당하는 핍박이 정당한 핍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리라는 확신이다. 자기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으시리라는 확신에 근거해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3. 다윗은 의롭게 살기 위해서 전인적인 노력을 다 한 셈이다(3). 어떻게 노력하였는지 세 개의 단어로 정리해 보자.

    마음(3), 결심(=의지, 3), 걸음(행사 = 행동, 4-5): 다윗은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다.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범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롭게 살기 위해서 결심하고 노력했다. 이런 의로운 노력이 기도응답의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는 것을 다윗은 확신했다.

4. 시편 1편에는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이 있었다. 여기서는 무슨 길이 있는가?

    포악한 자의 길과 주의 길: 사람의 이기적인 욕심을 따라는 길이 포악한 길이며 악인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길이 주의 길이다. 적극적으로 말씀을 따라가야 포악한 자의 길을 피할 수 있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더라.

5. 기도 응답의 세 가지 형태는 무엇인가?

    듣는 것(6), 구원하시는 것(7), 보호하시는 것(8): 9절은 이 세 가지의 종합인 셈이다.

6. 다윗이 기대하는, 혹은 반드시 응답될 하나님의 구원(7)을 간단하게 ‘오른손으로 기이한 사랑을!’이라고 묘사할 수 있겠다. ‘오른손’은 능력을 의미하고 ‘기이한’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사랑’은 헤세드라는 말로 ‘인자’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언약에 근거한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언약 때문에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행하셔서 자신의 사랑을 보여준 일’이 이전에 있었던가?

    출애굽: 다윗이 이런 표현을 쓸 때 모세의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출 15:11-13과 비교해 보자. 거기에 중요한 이 세 단어(기이한, 오른손, 인자)가 다 들어있다.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해내신 하나님께서 자기도 그렇게 구원해 주시리라는 확신을 노래하는 셈이다.

7.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아래 감추신다’는 표현도 다윗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인용한 것이다. 출애굽과 관련이 있는 말인데 어느 책에 이런 말씀이 있을까?

    신명기(신 32:10-11의 인용): 이 기록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아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고 다닐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니까 다윗도 하나님의 그런 은혜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8. 마음이 기름에 잠긴 것과 교만하게 말하는 것은 같은 의미의 반복이 틀림없다(평행대구법). 그렇다면 ‘기름’이 무엇을 의미할까?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신 32:15): 악인들이 교만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이 기름에 잠긴 것도 하나님을 모른다는 뜻이다. 배가 부르면 교만해지고 결국은 하나님도 잊어버리는 것이 인생이다.

9. 사자가 어떻게 사냥하는지 다윗의 표현을 빌려보자.

    은밀한 곳에서 노려보고, 넘어뜨리고, 움키고, 찢는다(11-12): 우리는 그냥 걸어가고 있을뿐인데(11) 원수들은 사자들처럼 노리고 있다. 얼마나 잔인하게 노리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런 인생길을 하나님 없이 걷는다? 다윗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10. 사자처럼 다윗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만) 분깃을 받는 것(14): 신약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다. 배를 채우는 일과 자기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이 세상에서 번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오직 이 세상에서만 번영한다는 것, 한시적이며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만 번영하는 것이 지극히 악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면서도 그것이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모른다.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한시적인 번영은 유치한 것이다.

11. 악인들은 무엇을 보고 다윗은 무엇을 보는가?

    악인들은 배와 자녀를, 다윗은 주의 얼굴을! 다윗이 귀가하는 아버지를 반기는 것이라면 악인들은 아버지는 보지도 않고 아버지 손에 들린 과자봉지만 노리는 격이다. 그래도 아버지라면 이런 아이들을 반기겠지만 악인들은 아예 아버지로 여기지도 않으니 희망이 없다.

12. 부조리한 세상을 보면서도 성도가 낙심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조상들을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날개 그늘 아래 보호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인자)을 확신하기 때문: 세상이 아무리 부조리해도, 애매하게 고난을 받아도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이다.

처음으로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