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편


1. 이 시편의 주제를 8편과 대조해 보자.

    8편이 인간의 존엄을 다룬다면 14편은 어리석음을 다룬다: 망할 자는 왜 망하는지 보여준다. 반면에 53편과는 거의 같은 내용이다(여호와 ↔ 엘로힘).

2. 사람은 본능적으로 신을 찾는 존재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름대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계산이나 이해타산에 결코 어두운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어줍잖은 지혜겠지만 스스로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 이것이 모든 악의 기원이자 본질이다.

3.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왜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하게 될까? 우리 인간사에 비긴다면 어떤 사람과 닮았는가?

    어른 없이 자란 망나니와 같다: 이런 경우를 호로자식이라고 하던가? 어른들에게서 제대로 배울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어딘가에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부모를 부정하는 자식은 그 자체로 악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도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

4. 인생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지각이(지혜가) 무엇일까?

    하나님을 찾는 것(2): 다른 것 다 가져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근시안적 안목) 아는 것이 아니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알면(=거시적 안목) 모든 것을 가진 셈이다. 일시적인 것 다 가져도 영원한 것 한 조각에 비교할 수 없다. 곧 마를 저수지에서 붕어든, 잉어든 아무리 잘 나고 지혜로운들 그게 무슨 대수인가?

5. 하나님께서 자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다(신 5:32, 17:11, 17:20, 28:14, 수 1:7, 23:6, 잠 4:27). 치우치는 것(3)이 그렇게 문제인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말라는 뜻이다.

6.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이런 인생을 돌이켜 선택하시고 자녀로 삼으셨다.

7. 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단다. 도대체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게 무엇인지 본문의 표현을 이용해서 말해보자.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한 결과: 이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상상도 못한다. 하나님의 진노?

8. ‘하나님이 없다’고 하던 자들이 두려워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없다고 했는데 있으니 두렵고, 그 하나님이 자신들이 핍박하던 자들과 함께 하시니 원한을 어떻게 갚으실지 두렵다. 의인의 세대란 의인의 집단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9.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는 것’을 다른 방식을 표현한 말이 있다면?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는 것(6): ‘부끄럽게 하다’는 말은 ‘박살내다’란 뜻도 있다. 악한 자들에게서 벗어나려는 가난한 자의 노력을 무참하게 짓밟았지만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 즉 의인을 돌보실 것을 확신한다.

10. 다윗의 글에서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란 말은 바벨론 유수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럼 언제 백성들이 포로가 되었지?

    의인이 악인에게 억압당하는 것을 의미함: 다윗은 이런 경우를 많이 겪었다. 억울하게 사울에게 쫓긴 세월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셨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잘 안다.

11. 9-13편과 14편이 어떤 관계인지 생각해 보자.

    14편은 9-13편의 모든 기도와 확신의 신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인간을 압제하는 악인들은 결국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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