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편 |
죽기 일보 직전: 사망의 잠이 들려는(3) 상태다.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비유다. 2. 하나님께 바라는 소원이 무엇인가? 주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내게!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다. 이런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 복이다. 3. 시인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에게 잊혀지는 것(1): 좋은 예를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의 가장 큰 고통은 잠시라도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당하는 것이었다. 며칠만 지나면 회복될 것인데? 그럼에도 견딜 수 없는 비명을 질러야했던 점을 생각해 보자. 주의 얼굴을 숨기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버림받는다는 뜻이다. 4. 이 시의 구성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을 한 단어로 요약해 보자. 1-2) 애통, 3-4) 기도, 5-6) 감사. 5. 이 시인의 어느 말이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동감을 불러일으킬까? 어느 때까지...?(1-2): 네 번이나 반복된다. 우리의 입장으로 표현을 바꾸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가 된다. 우리가 보기에는 하나님의 동작이 참 느리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아도 참고 인내해야 하는 일이 한 둘이 아니거든 하물며 하나님께서 내 생각에 맞추시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휴∼! 6. 하나님께서 시인을 잊어버리면 결과적으로 어떤 두려운 일이 생기는가? 죽는 것과 원수의 승리: 죽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원수의 승리는 왜 두려운가? 둘 다 같은 의미로 본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되기 때문 아닐까?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따르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까 두려워서 죽지도 못한다. 죽는 것보다 더 큰 두려움일 수도 있다. 7. 일종의 삼각관계다. 원수, 나, 하나님이 어떤 관계로 얽혀 있는가?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인은 죽을 지경인데 하나님은 시인을 잊은 것 같고, 원수는 기고만장하여 시인을 괴롭히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형편을 아시고 저 놈을 한 대 치셔야 하는데... 8. 하나님께서 눈만 뜨게 해주면 되는가(3)? 하긴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뜨면?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는 말이다: 일차적인 의미는 건강을 회복한다는 것이겠지만(신 34:7). 얼굴을 숨겨버린 하나님을 보게 해달라는 의미도 될 것이다. 결국은 다 같은 의미다! 9. 끔찍한 고통 가운데 있던 시인이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6) 돌변할 수 있을까? 달라진 상황이 무엇일까?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다(하박국, 기도하던 바울). 다만 자신만 바라보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자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 인자하심을 번역하는 것이 낫다. 개정은 이것을 사랑으로 번역했는데 언약적인 사랑이다)이 생각난(확신한) 것이다. 상황은 변함이 없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사람이 바뀔 수 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이며(롬 4:18),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복을 확신하는 것이다(히 11:1).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자신이 먼저 변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