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2 장 |
나이 많은 남자들, 나이 많은 여자들, 젊은 남자들, 종들: 젊은 여자들은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맡겼다. 젊은 디도가 직접 가르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바울이 신뢰하는 디도라도 젊은 여자들을 직접 상대하는 것은 조심하라는 뜻 아닐까? 남자와 여자가 특별한 관계로 발전할 위험이 항상 존재하고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2. 바른(건전한)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라고? 설마 자기가 파송한 디도가 엉뚱한 교훈을 가르칠 거라고 예상하고 하는 말일까? 앞장의 ‘거짓 교사들과는 다르게’라는 뜻이다: ‘오직 너는’이란 말은 ‘그러나 너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3. 바른 교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초대 교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초대 교회 시대에서 바른 교훈이란 하나님의 말씀(구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이것을 전한 사도들의 가르침(후대에 신약으로 집대성 됨)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바른(건전한) 교훈이란 성경 말씀이다. 성경 말씀과 합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자(이단)가 적지 않다. 복음과는 상관없는 설교(윤리적인 차원에 머무는 설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불과한 이름만 설교)도 많다. 4. 남자들이 나이가 많이 들면 특히 어떤 것에 주의해야 하는가? 왜 그럴까?
절제: 젊은 날에는 잘 참고 인내하던 분도 나이가 들면 방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욕이라고 하던가? 나이가 들수록 매사에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 5. 여자들이 나이가 많이 들면 특히 어떤 것에 주의해야 하는가? 왜 그럴까?
행실: 거룩한 행실이란 나이 많은 남자들이 주의해야 할 절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6. 젊은 여자들에게 요긴한 가르침은 무엇인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는 것: 이것이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의 핵심이다. 어떻게 사랑하느냐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기본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남편을 하나님께서 가정의 대표자로 세웠음을 인정하라는 말이다. 7. 젊은 남자들에게는 할 말이 왜 별로 없지? 근신: 앞에서 언급한 것들이 젊은이들에게도 다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 아닐까? 특히 젊은이들은 힘이나 의욕이 넘쳐나기 때문에 더더욱 근신을 배워야 한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8. 거의 모든 대상자들에게 공통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근신: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해서는 안된다. 9. 가르치는 디도에게 권면하는 것을 두 가지 말한다면? 본을 보이는 것(7)과 근면하며 권위를 지키는 것(15). 10. 목회자에게는 항상 대적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에게 흠을 잡히지 않도록 유의할 것은 무엇인가?
교훈이 부패치 않게 해야 함: 교훈 자체가 부패할 리는 없다.
거짓 교사들처럼 불순한 동기로 말씀을 전하면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며 그렇게 되면 그 동안 가르쳤던 올바른 말씀조차 버림을 받게 된다. 결국 부패해서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1. 종들에게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라’고 가르치면 주인이야 좋아하겠지만 인권론자들은 성경이 노예제도를 찬성한다고 비난하지 않을까?
당대의 체제를 뜯어고치는 것이 사도들의 목적이 아니었다. 노예해방을 전혀 말하지 않는 성경이 들어가는 곳마다 노예해방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성경은 제도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고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도를 고쳐서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꾸어서 필요하다면 제도를 고치는 것이다. 12. 성도들에게 가르치라고 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성도의 희생적인 삶을 요구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그렇게 살 때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 (본문에 언급된 것만)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아니함,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 하나님의 교훈이 빛나게 됨 13. 사도 바울은 디도를 통하여 여러 종류의 성도들에게 성도다운 삶을 살도록 권면하였다. 성도가 성도다운 삶을 살게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바울의 권면? 디도의 가르침? 성도들의 희생적인 순종? 하나님의 은혜(11-14):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구원과 양육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이 없다면 사도들의 노력이나 성도들의 헌신적인 순종도 아무런 유익이나 효과가 있을 수 없다. 14.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두 가지 결과는 무엇인가? 구원(11)과 양육(12): 14절의 ‘구속’과 ‘깨끗하게 하사’도 같은 맥락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지만 동시에 목회자나 전도자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믿으면 만사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믿음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 전도, 선교를 강조하되 양육도 필수 과정이어야 한다.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믿으라고 외치기만 하는 것은 그야말로 복음의 황무지(전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 것을 함부로 전도나 선교라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애를 낳기만 하고 버리거나 혹은 기를 능력이 없는 여자에게 임신만 시키고 떠나면 어떻게 되나? 15. 더러운 그릇에는 아무리 깨끗한 음식을 담아도 제대로 상을 차릴 수 없다. 먼저 그릇을 깨끗하게 닦은 다음에 맛있는 음식을 담아야 하는 법이다. 이 비유에 나타난 다음의 예들은 본문의 무엇과 내용이 일치하는가?
1) 그릇: 우리들 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왕이나 귀족이 특별한 아끼는 보물(히, 세굴라)’처럼 여기셨다. 이 말을 개역은 주로 ‘내 소유’(출 19:5), ‘보배로운 백성’(신 26:18), ‘자기 기업의 백성’(신 7:6, his treasured possession NIV)으로 번역하였다. 같은 표현을 본문에서는 무엇이라고 할까? 친 백성: 특별히 아끼고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 이 단어의 본래 의미이다. |